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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별 기고> 죽음의 일상화 문명과 지구행성에서 인간의 거주 조건- 강주영 편집위원
본지 편집위원이자 전주동학혁명기념관 부설 동학연구소장인 강주영이 이태원 압사참사와 관련해 긴급 칼럼을 보내왔다. 그는 글에서 죽음의 일상화는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닌 문명적 고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생산문명에서 생성문명으로 개벽해야 한다고 한다. 본
전북포스트   2022-11-04
[이병초의 역사소설] '노량의 바다' 연재를 마치며
'노량의 바다' -연재를 마치며 글을 쓰는 내내 나는 행복했다. 글줄이 잡힐 때도 글줄이 영 잡히지 않을 때도 마음이 설렜다. 책을 너무 안 읽는 시절에, 문명과 자본이 제공하는 눈요깃감들과 유튜브 또는 동영상이 사람의 눈길을 잡아채는
전북포스트   2022-07-13
[이병초의 역사소설] 10. 전주의 아침-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10. 전주의 아침 순옥의 가슴에 비수가 꽂혔다. 노량의 싸움에 나간 남편이 전사(戰死)했다는 소식이었다. 순옥은 귀를 의심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이었다. 태산을 무너뜨릴 것 같은 기세와 기백을 가진 이가 이영남이었다. 칼을 함부로 뽑는 사나이
전북포스트   2022-07-09
[이병초의 역사소설] 9. 길을 터다오, 바다여-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09. 길을 터다오, 바다여 이영남 장군은 왜선의 갑판에 나동그라졌다. 이제 와키자카의 칼날이 정확하게 이영남의 숨통을 찍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왜 이럴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다니. 눈앞이 문득
전북포스트   2022-07-06
[이병초의 역사소설] 8. 바다에 떨어진 겨울 햇살(2)-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08. 바다에 떨어진 겨울 햇살 이영남이 위태롭다. 새 세상, 평등 세상을 그리워하는 이영남이 저기 적선의 갑판에서 혼자 위태롭게 싸우고 있다. 누가 눈앞이 천 리라고 했던가, 천 리가 눈앞이라고도 했던가. 눈앞에 이영남을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북포스트   2022-06-29
[오피니언] <특별기고-시론> 남민가(南民歌) - 강주영 편집위원
강주영 동학연구소(전주동학혁명기념관 부설) 소장이 글을 보내 왔다. 그는 전북포스트 편집위원이다. 호남의 지명에 옛일을 엮었다. 평소 호남론을 주창하던 그가 호남천지인문을 4•4조 가락에 실었다. 그의 호남론이 폐쇄적인 지역색은 아니다. 전해
전북포스트   2022-06-28
[이병초의 역사소설] 8. 바다에 떨어진 겨울 햇살(1)-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08. 바다에 떨어진 겨울 햇살이순신 장군의 눈에 이영남이 보였다. 왜선의 갑판에 우뚝 선 조선의 장수, 거침없는 그의 칼춤이 왜군의 목을 베며 와키자카가 서 있는 망루로 나가고 있었다. 일기당천, 그를 가리켜 남이 장군의 환생이라고도 했던가. 이영남
전북포스트   2022-06-26
[이병초의 역사소설] 7. 이영남, 그가 꿈꾸었던 세상(<3>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07. 이영남, 그가 꿈꾸었던 세상이영남 장군은 두 아들을 돌아보았다. 내일 아침 자신은 다시 고금도 통제영에 돌아가야 했다. 이 전쟁도 곧 끝날 것이었다. 통제사 이순신 장군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짰다. 통제사는 조선의 무인이자 조선의 바른
전북포스트   2022-06-21
[이병초의 역사소설] 7. 이영남, 그가 꿈꾸었던 세상(<2>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07. 이영남, 그가 꿈꾸었던 세상영남은 짬이 나면 김 씨가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초가에 들렀다. 임진년, 그러니까 1592년 여름에 영남은 순옥을 만났고 아들 둘을 얻었다. 집에 들어오면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어떤 일에든 선봉에 서서 일기
전북포스트   2022-06-20
[이병초의 역사소설] 7. 이영남, 그가 꿈꾸었던 세상(<1>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07. 이영남, 그가 꿈꾸었던 세상조선군은 계사년(1593년) 1월 6일에 평양성을 공격하여 9일에 평양성을 탈환했다. 2월 22일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승리했고, 4월 19일 왜적은 한양에서 철수를 시작하여 5월 2일에 부산에 주둔했다. 이후 명
전북포스트   2022-06-16
[이병초의 역사소설] 6. 능금빛 노을이 물들 때(3)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6. 능금빛 노을이 물들 때(3) 오빠 김대수는 김제군 공덕 땅의 외가에 가 있어서 변을 면했고 아버지는 잡혀간 뒤 이틀도 되지 않아서 시체로 돌아왔다. 김제에 있던 오빠도 결국은 붙잡혀 천민으로 격하되어 좌수영의 노꾼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그 뒤로
전북포스트   2022-06-10
[이병초의 역사소설] 6. 능금빛 노을이 물들 때(2)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6. 능금빛 노을이 물들 때(2) 권관이 되기 전의 김대수는 어떠했던가. 군졸이었지만 전투 상황에서 보여준 그의 지혜는 이영남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처음에 김대수는 노꾼이었다. 임진년 5월에 이순신 장군과 1차 출정했을 때 이영남은 협선 한 척을
전북포스트   2022-06-07
[이병초의 역사소설] 6. 능금빛 노을이 물들 때(1)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6. 능금빛 노을이 물들 때(1) 김해김씨 순옥은 박꽃을 뒤집어쓴 것처럼 살결이 고왔다. 이영남과 차마 눈길을 마주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약간 비낀 순옥의 턱선은 붓으로 그린 것처럼 아름다웠다.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고 수줍게 포개진 손에도 박꽃
전북포스트   2022-06-02
[이병초의 역사소설] 5. 아침 노을의 기억<1-2>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명량해전 승리 후 고화도에 통제영을 두었을 때 병사들이 더 많이 모여들었다. 산으로 피난을 갔던 백성들도 모여들었다. 13척이던 판옥선은 50여 척이 되었고 수군도 4000명이나 증강되었다. 이순신 장군은 통제영을 고금도(현재 완도)로 옮겼다. 이 소
전북포스트   2022-05-28
[이병초의 역사소설] 5. 아침 노을의 기억<1-1>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5. 아침노을의 기억 이순신 장군은 이영남을 똑똑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영남과 그의 무사들이 적선의 갑판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있었다. 자신이 탄 배, 즉 대장선이 돌격선이 되어 왜적의 무리를 무찌르고 있을 때 와키자카가 이끄는 왜선 몇 척이 자신의
전북포스트   2022-05-25
[이병초의 역사소설] 4. 새벽어둠이 걷히다 <3-2>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4. 새벽어둠이 걷히다. 이영남은 자신을 포함한 정예병 28명을 추렸다. 28은 사방(四方) 7성(星)의 우두머리 별을 합한 28숙(宿)을 적용하여 선발한 것이었다. 이영남은 27명의 무사와 함께 특수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육상에서의 검법과 활쏘기,
전북포스트   2022-05-21
[이병초의 역사소설] 4. 새벽어둠이 걷히다 <3-1>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4. 새벽어둠이 걷히다. 이영남은 7년 전에 원균의 경상우수영에 소속되어 있다가 한산도대첩 후 전라좌수영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소비포권관이었던 이영남은 고지식한 인물이었다. 훈련은 훈련일 뿐이라는 말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옥포해전에서 부상당했
전북포스트   2022-05-19
[이병초의 역사소설] 4. 새벽어둠이 걷히다 <2-3>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4. 새벽어둠이 걷히다 이러는 사이 일본 수군은 속속 결집하고 있었다. 왜수군을 대표하는 와키자카, 도도, 고니시, 시마즈 등의 함선이 칠천량의 앞과 뒤에 들어차고 있었다. 칠천도와 거제도 사이에 낀 칠천량은 좁은 해협이었다. 조선의 함선 전체를 노려
전북포스트   2022-05-14
[이병초의 역사소설] 4. 새벽어둠이 걷히다 <2-2>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4. 새벽어둠이 걷히다 < 2-2 >부산 앞바다의 파도가 평소에도 2미터 이상을 넘나든다는 것, 조선의 군함 판옥선은 평저선이므로 파도에 약하다는 것, 1592년 9월 1일에 조선 수군이 부산을 쳤을 때는 파도가 제일 잔잔한 날이었고 도처의 섬이나 육
전북포스트   2022-05-13
[이병초의 역사소설] 4. 새벽어둠이 걷히다 <2-1>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
4. 새벽어둠이 걷히다< 2-1 >1597년 2월 26일, 이순신 장군이 한양으로 압송된 후 원균은 새 통제사가 되었다. 새로 부임한 원균은 술만 먹었다. 이순신 장군은 ‘운주당’이란 집을 짓고 여기서 전략회의를 했다. 전략과 전술에 관계된 내용이라면
전북포스트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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