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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읽은 시> 9. 져 줍시다 - 손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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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3.27  07: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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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져 줍시다 / 손동연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면 하늘에 달이 나타난다. 변함없는 자연의 이치이다. 하지만 시인은 달을 위해 해가 져주는 것으로 또랑또랑한 별을 위해 해가 사라져 주는 것으로 표현한다. 우리가 겪는 시장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한 치의 양보 없이 시간 전쟁, 눈치 전쟁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이니 누구에게 져준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에게 진다는 것은 내가 밀려난다는 것이므로.

 

해가

집니다

아니, 져줍니다

 

그래서

달이 돋거든요

별들도 또랑또랑 눈 뜨거든요

 

-손동연, 「져 줍시다」, 전문.

 

경제이론은 이기심을 기반으로 한다. 경제인(economic man)이란 말 자체가 이기심에 근거하며 합리적 선택을 하는 개인을 말한다. 따라서 ‘져줍니다.’등의 말을 나올 수 없다. 우리 삶이나 경제활동이 늘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형제간 사랑, 친구의 우정을 논외로 해도 이타심에서 발생하는 행동이 많다는 것이다. 후학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선배 또는 스승, 젊은 목회자에게 길을 터주고 명예롭게 퇴직하는 목사, 내 돈으로 구입한 자산(資産)이며 심지어 내가 번 돈을 남들과 나누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이기심의 관점에서 보면 남을 위해 ‘자리’나 물건을 베푸는 것은 나의 효용상실이니 바람직스럽지 못한 행위이다. 그러나 남을 위해 기꺼이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의 눈이나 입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들처럼 맑은 눈, 그들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맑은 눈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을 수 있다면 남을 위한 행동이 결국은 자신에게 엄청난 이득으로 돌아온 것과 다름없다.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니, 틀이 크고 행복의 바로미터 자체가 다를지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 달을 위해 또랑또랑한 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내 것을 남에게 주어 행복(또는 효용)을 느낄 수 있다면 나누어 내 것이 작아지는 게 오히려 더 큰 만족이다. 이런 경우 경제학 교과서 효용함수도 바뀌어야 한다. “내가 소비하는 재화의 수량이 많을수록 효용이 커진다.”에서 “남과 나누는 것이, 남이 내 것으로 행복함을 느낄 때 나의 효용도 함께 증가할 수 있다.”라는 내용으로 말이다. 욕심이라는 ‘괴물’을 걷어내면 남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리라. / 최영한 전 웅지세무대 총장

 

   
글쓴이 최영한 전 총장은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사범대를 졸업했다. 경제학 박사이며 웅지세무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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