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14일 밤 전북 지역 경선 결과를 놓고 많은 분들이 놀란 거 같습니다. 신예가 현역을 눌렀으니까요. 엊그제까지 발표된 언론기관 여론조사와는 판이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론조사를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부실할 수는 있어도 조작은 안했을 겁니다. 그건 조사기관이나 의뢰 기관이나 죽을 짓입니다.

강찬구 전북포스트 발행인

한 뉴스통신사가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에 대해서는 <정치잡담 8편 - 여론조사의 허와 실( 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85 )에서 세세히 짚었습니다. 조사 결과를 믿지는 말되 참고는 하라고... 표본수가 너무 적고, 표본 추출도 한계가 있고, 유선전화로 이뤄진 맹점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번 더민주당의 여론조사 결과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인 ‘침묵 나선의 이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침묵 나선의 이론’에 대해서는 어제 쓰다가 마무리를 못한 것인데, 오늘 경선 결과를 보면서 더욱 확실해 진 거 같습니다.

‘침묵 나선의 이론’은 특정 여론이 주류를 이룰 때 여기에 상반되는 여론은 침묵하게 된다는 미디어 효과 이론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강화되면서 여론은 더욱 세를 불리고, 침묵은 더욱 가라앉는다는 논리입니다. 실제 여론과는 다르게 겉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겁니다.

술자리를 예로 들겠습니다. 몇몇이 모인 술자리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우호적인 얘기들이 오가고 그 의견이 대세가 되면, 반대되는 의견은 끼어 들 자리가 없습니다. 특정 여론이 주류가 됐을 때 거기에 반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은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실례로, 전북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저번 총선에서 37%를 얻은 후보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중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말 꺼내기 곤혹스러우니까 침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구멍’이 달린 일이라면 죽기 살기로 덤비겠지만 이게 그럴 일도 아니고...

독일의 여성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이 주장한 이론입니다. 그녀는 신문기자도 했고 여론조사기관에서 일한 바도 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항간의 여론과 여론조사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현상을 연구하다 ‘침묵’하는 다수를 발견하게 된 겁니다.

‘침묵 나선 이론’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다수 의견에 속하면 자신 있게 겉으로 표명하지만 소수 의견에 속하면 침묵한다.”라는 가설에서 출발합니다. 나선 형태의 모형도를 놓고 볼 때 다수 의견은 나선의 바깥쪽으로 돌면서 점점 세력이 커지는 반면 소수 의견은 나선 안쪽으로 돌면서 움추러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노이만은 “다수 의견에 동조하라는 압력에 사람들이 끝내 순응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사회로부터 거부, 배척, 소외, 고립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프랑스 정치학자인 토크빌도 “사람은 실수하는 것보다 고립되는 것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수의 정서에 공감하는 척한다.”고 말했습니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은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체적으로 약한 동물인 인간은 강한 적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뭉쳐 살았습니다. 이 공감대가 그 사회를 유지시키는 골격이 됐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언도 나왔을 겁니다. 각 개인은 생존 차원에서 조직화된 것이고, ‘침묵 나선의 이론’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특정 여론에 둘러싸여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 것이고, 그래서 여론조사 결과가 판이하게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말이 없다고 속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모든 동물이 마찬가지고요. 말을 못한다고 속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더민주당의 경선 결과는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우선 이번 선거를 앞두고 침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대세 여론보다는 소수 여론이 더 침묵할 것이고, 그렇다면 실제 선거 결과는 시중 여론과도 다를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옵니다.

이는 전북 유권자들이 거의 처음으로 갖게 되는 능동적 선택권과 관련돼 있다고 봅니다. 전북 사람들은 민주당 일변도의 선거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욕하면서도 찍었습니다. 야권이 이원화되면서 이제 선택을 할 수 있게 됐고, 그래서 유권자들이 신중해 졌다고 봅니다.

여론조사에서 흔히 ‘역(逆)선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번 경선 결과를 놓고도 ‘역선택’이 있었다는 반발이 일고 있습니다. ‘역선택’이란 조사 대상이 어떤 의도를 갖고 답변을 왜곡한 것으로, 조사 결과의 오류가 커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가령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를 결정하는 여론 조사 전화를 받았을 때 자신은 제 3자를 지지하는 데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하는 겁니다. 그러고 후보를 선택할 때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본선에서 유리한,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약한 후보를 선택하는 겁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유력한 후보가 난립해 있고, 응답률이 낮은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전주시을은 도내에서 3당이 격돌하는 최대 격전지로 예상되고 있으며, 이번 경선 여론조사 응답률도 5.5%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역선택’이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언하기 어렵고, ‘역선택’을 가려내기란 불가능합니다. 이게 사람의 마음이라서... / 강찬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