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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함초롬하다’ - 젖거나 서려 있는 모습이 가지런하고 차분하다최명희문학관, 초등학생도 알면 좋을 「혼불」 속 우리말(20/20)_ 함초롬하다
김미영 기자  |  jjtoro@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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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7.01  17: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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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초롬하다’는 젖거나 서려 있는 모습이 가지런하고 차분하다는 뜻이다. 컴퓨터 ‘한글’ 글자체에 ‘함초롬돋움’과 ‘함초롬바탕’이 깔리면서 더 친근한 단어가 되고 있다.

소설 「혼불」에서 ‘함초롬하다’는 세 번 나온다. 첫 번째는 오류골댁은 강실이를 앞세우고 사립문을 나서면서다.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그으며 오류골댁 초가지붕 귀퉁이로 진다.

①별이 스러져 숨은 자리에 박꽃이 하얗게 피어나 있어 소담하게 보인다. 그 함초롬한 모양이 어쩌면 청승스럽기조차 하다. (「혼불」)

흰 박꽃 때문에 그런지 살구나무 둥치와 무너질 듯한 잎사귀의 무성함이 더욱 검은 것 같다. 가뭄이라 제대로 물도 못 먹었을 나무가 그래도 뿌리 덕으로 저렇게 우거진 것이 신통하였다.

두 번째는 이헌의가 병풍과 족자에 대해서도 말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말을 인용하면서다. 다산은 “반드시 품격 있는 서화의 가품(佳品)으로 꾸미는 것이 옳은즉, 진채(眞彩)는 담채(淡彩)만 같지 못하고, 담채는 또 단묵(單墨)만 같지 못하니, 마땅히 상격(上格)의 것으로 항상 머리맡에 풀냄새 그윽한 병풍과 족자를 갖추어 두면, 능히 안목을 기른다.”라고 하였다.

②과연 알록달록 빛깔이 짙은 진채화나 청록산수 물감을 입힌 그림보다는 붓 한 자루에 검은 먹의 짙고 옅음만으로, 허리가 휘어지게 부는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정연하게 꿋꿋한 풍죽의 기세와, 비를 맞아 아래로 촉촉히 처진 우죽(雨竹), 맑은 날 볕발에 명랑하고 깨끗한 청죽(晴竹),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어 젖은 만추의 노죽(露竹), 오래 눈이 쌓여 가지가 눌린 비백(飛白)의 설죽(雪竹), 그리고 달빛 아래 전아한 봉죽(鳳竹)이며, 연기에 잠긴 대, 구름에 쌓인 대, 빙설의 한고(寒苦)에 초연한 기개를 떨치는 노죽(老竹)과, 용손(龍孫)이라 하는 죽순에서 이제 막 껍질을 벗고 혀를 내미는 유죽(幼竹)이 뻗치고, 뒤집어지고, 나지막이 처지거나 높이 솟아 소슬한 자태와 기분과 빛깔을 절묘하고 역력하게 그리어, 그 마디와 가지와 모든 잎을 다 살아나게 하는 묵죽(墨竹)이야말로 선비의 방에 맞다 할 것이었다. (「혼불」)

이징의는, 서화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궁거(窮居)한 벽학(僻學)이라.” 이렇게 이르곤 하였다.

그저 파적(跛寂)으로 대나 한 폭 치고, 배운 글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글씨를 쓰는 것이지, 아는 것도 없고 깨친 바도 없는데 남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양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밀고 들어와 화선지를 펼치는 사람이 생기고, 그가 선서자(善書者, 글씨를 아주 잘 쓰는 사람)라는 소문이 인근에 널리 퍼지면서 문중에서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의 서화 한 점 얻기를 원하게 되었지만, 막상 그 자신은 족자 하나 반듯하게 걸어 놓을 자리도 없을 만큼 살림이 곤궁하였다.

세 번째는 장독대에 선 강실이가 효원과 율촌댁, 그리고 어머니 오류골댁을 먼 세상의 그림자처럼 바라보며 독백처럼 뱉는 말에 있다.

③여자로 태어나서 한 남자를 지아비로 맞이하여, 밥을 짓고 장을 담그는 여인들. 이른 새벽,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미명에 푸르스름한 공기의 결을 걷으며 돋아나는, 서리 같은 이슬이 함초롬히 맺힌 장독들의 정결함. 그리고 그 뚜껑 위에 바치는 정화수 한 그릇. (「혼불」)

그런 새벽을 나는 누리는 일 없으리라. 저와 같이 장중 우람하면서 아기자기한 장독들의 세월과 무리를 나는 거둘 일 없으리라.

강실이는 가슴 밑바닥이 허전하고 서늘하게 빠지는 것을 느꼈다.

앙가슴에서 등판까지 맞바로 꿰뚫어 대못을 친다 해도 다섯 치가 채 못될 가슴이 과연 얼마나 깊은 것이기에, 이토록 무섭고 까마득한 허방을 품고 있단 말인가. 아아. “강실아.”

○ 20명의 시인·작가가 예문으로 소개하는 「혼불」 속 우리말 20개는 최명희문학관 마당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④봄비 내리는 오후 경기전 돌담길을 걷는다. 담뿍 젖은 꽃잎 붉은 얼굴이 나를 노려본다. 발을 멈춘다. 그 가지런하고 고운 함초롬한 매화의 얼굴에 나는 입술을 묻는다. (글: 진창윤·시인)

*진창윤_ 201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달 칼라 현상소』를 냈다.

*이미지 글씨는 윤여준(전주온빛초 1년)이 썼으며,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2022년을 기준으로 정혜인(교열가)이 고쳤다. 

 

∥글·사진_ 최명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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