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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옴시레기’ - 건드리지 아니하여 조금도 축이 나거나 변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온전한 상태최명희문학관, 초등학생도 알면 좋을 「혼불」 속 우리말(14/20)_ 옴시레기
김미영 기자  |  jjtoro@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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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26  09: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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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시레기’는 건드리지 아니하여 조금도 축이 나거나 변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온전한 상태로, ‘고스란히’의 전라도 사투리다.

소설 「혼불」에서 ‘옴시레기’는 일곱 번 찾아진다.

첫 번째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무오사화의 주동자인 유자광(?∼1512)의 태몽 이야기다.

①“근디 그 태몽 말이여, 임서방, 그 태몽 어뜬 거이 맞능가. 유자광이 아부지가 꿈을 꾼디, 낮잠을 자다가. 근디 누구는 남원산성 그 거창헌 거이 입 안으로 옴시레기 들왔다고 허고이, 누구는 또 호랭이, 집채맹이로 큰 백호가 입 속으로 쑥 들왔다고도 허고, 또 하나 있어. 내가 고리배미 솔밭 삼거리 주막에 앉었다가 운봉(雲峰) 권포리 덧멀[加里]서 산다는 붓장시를 만났는디, 그 사람은 그러등만. 그 아부지가 밤에 꿈을 꿍게, 달이, 아니 해가 훤허니 뜨더니 문구녁으로 후르를 들어온단 말이여. 하, 그거 요상허다, 허고는 다시 잼이 들었드리야. 근디 아 해가 또 훤히 자기 목구녁으로 스르르 넘어와. 머이 맞능 거잉가?” (「혼불」)

소설에서 ‘옴시레기’를 넣은 문장은 어감에서 주는 절절함과 고고함이 깃들어 있다.

②그렇지, 이것이 종이 아니고 무엇이랴. 조선 팔도 삼천리 고고샅샅 강토가 땅덩어리째 옴시레기 일본의 것이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남녀노소 몇 천만 인구 전원이 모두 일본에 매인 종이 되어, 풀뿌리 나무 껍질로 여물 먹으며, 오직 일본이라는 상전을 위하여 개 · 돼지 · 짐승처럼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이 조선 백성이었다. (「혼불」)

③이렇게 옴시레기 비어 버린, 제 숨소리가 메아리로 울릴 지경인, 괴괴한 마을은 상상도 해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네는 왈칵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혼불」)

④한 나라의 마지막 중추들이 옴시레기 옮겨간 것이다. (「혼불」)

⑤그토록이나 절절히 파고들던 역사선생 심진학의 말씀들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상감(象嵌)하여 옴시레기 보듬고 온 까닭이었는지도 모른다. (「혼불」)

⑥오늘 밤에 안 죽을라먼 그래도 그 지하돈가 머잉가 그리 기어들으가능 거이 낫을랑가, 거그는 암만해도 저 바람닫이보돔은 좀 갠찮을 거이여. 아이고. 그러다가 떼로 죽으면 어쩌 꺼잉고. 묏동 속으가 옴시레기 도레도레 찌고 앉었는 꼴이 될랑가 어쩔랑가. (「혼불」)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된 문장은 방패연을 설명하는 곳에 있다.

하늘에 뜬 연의 투명하게 뚫린 가슴.

연이야 무슨 생각이 있을까마는, 그렇게 제 가슴을 아프게 도려낸 애를 곱게 곱게 물들이어 이마빼기에 붙이고, 그 어느 연보다 더 휘황한 빛깔로 자태를 자랑하며, 이름까지 지어 받아, 소원을 싣고 악귀를 쫒으면서, 높고 높은 하늘의 먼 곳으로 나는 것이다.

얼마나 서럽고도 아름다운 일이리.

사람도 그러하랴.

한 생애를 두고, 그 무슨 못 견딜 일 당하여서, 순결한 눈밭처럼 희고 깨끗한 백지의 인생을, 무참하게 달려들어 반으로 꺾은 허리, 다시 한 번 접어서 또 반으로 꺾은 종이, 이제는 도려내어 구멍 뚫는데. 죄도 없이 운명에게 폭행당하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폐장이 다 썩어 내려 텅 비어 버린 가슴, 혹은 삶의 고비 막다른 곳에서 피할 길 없는 비수를 들이댄 누구인가에게 난자당한 가슴, 그 비수같이 꽂힌 어느 이름이, 밤마다 흘리는 눈물에 녹아서 이제는 흔적마저 희미한데, 그 이름에 함께 녹아 썩은 물이 되어 버린 애.

그 애 녹은 자리의 쓰라린 공동(空洞). 이 상실과 상처와 상심이 버린 가슴은 오히려, 해 같고 달 같은 꼭지로 물들어서, 한숨과 눈물의 풀로 한 생애의 이마에 곱게 붙여질 것인가.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비어 버린 것의 힘으로 가벼이 되며, 또 그 비어 버린 것의 힘으로 강하게 되어, 바람이 불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것인가.

⑦옴시레기 도려내어 가시만 남은 가슴이 없었더라면, 무엇으로 저 연의 오채 찬란한 꼭지를 장식할 수 있었을까. (「혼불」)

참으로 모양 없고 무미 건조한 종잇장 하나, 그저 날고 싶은 욕망으로 떠다니고 있을 뿐이리라.

○ 20명의 시인·작가가 예문으로 소개하는 「혼불」 속 우리말 20개는 최명희문학관 마당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⑧후드득, 밤새 비가 내렸어요. 일어나자마자 뛰쳐나가 보니 연분홍 꽃잎들이 가지 끝에 옴시레기 남아 활짝 웃어요. 나도 덩달아 웃어요. (글: 이경옥·동화작가)

*이경옥_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19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에 선정, 장편동화 『달려라, 달구』(아이앤북)를 냈다.

∥글·사진_ 최명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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