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롬조롬’은 잔주름이 고르게 많이 잡힌 모양으로, ‘조록조록’의 전라도 사투리다.

소설 「혼불」에서 ‘조롬조롬’은 두 번 모두 절과 관련돼 있다. 하나는 연등이며, 도하나는 사천왕의 의복이다.

나나니벌이 비파줄에 날개를 비비며 노는 북방천왕전에도 연등이 드리워져 있다.

①정교한 솜씨를 다하여 곱게 물들인 한지를 접어서, 실금까지 조롬조롬 잡은 꽃잎이 비늘인 양 낱낱이 층을 이루며 박히어, 동그랗고 소담스러운 숭어리로 피어오른 연꽃등은 진분홍·연분홍·병아리색, 선연도 하다. (「혼불」)

초파일에 못 미처 불을 켜지 않은 빈 등이었지만, 어디 사는 누구라고 적은 이름표가 꽁지에 매달려 미리부터 소원을 빌고 있는 천왕전. 그 연등 뒤에서 북방천왕은 비파를 탄다.

단청 물린 오색 구름, 연화머리초, 천장을 찌르도록 솟구친 키. 높고 큰 천왕은 태산 같은 몸을 장중하게 앉히고 비파를 끌어안았다.

사천왕의 갑옷은 견고하고 찬란했다.

수미산 산악같이 떡벌어진 어깨를 적갈색으로 덮은 어깨갑옷에는 구슬 같은 쇠징이 동글동글 조밀하게 박혀 있고, 그 어떤 화살이나 창검도 결코 뚫지 못할 황금비늘 가슴 갑옷, 귀면(鬼面) 장식이 날카로운 이빨을 허옇게 드러낸 배 갑옷, 철판으로 만든 토시처럼 단단하게 넓적다리를 휘감아 싼 넙적다리 갑옷, 청룡과 황룡 · 적룡의 비늘이 광채 찬란한 켜를 이룬 팔뚝 갑옷, 그리고 뚱그런 두 눈을 이글거리며 송곳 이빨 우아랫니 앙다물어 거품이 일어나는 귀신의 사나운 낯바닥으로 무릎덮개를 한 소삼, 그 아래, 철기둥이 무색한 다리 갑옷.

이 무장(武裝)만으로도 이미 천하에 다시 보기는 어려운 장수의 용강(勇剛) 무쌍한 위용이 아닌가.

갑옷 속에 입었으나 겉으로 살짝살짝 드러난 녹옥색 속옷은 아마도 사천왕의 평상복이리라

②안에다 받쳐입은 옷들은 복잡하고 엄장하고 현란한 갑옷에 비하여 아주 얇은 비단이나 명주 같은 느낌을 주면서, 단순한 곡선으로 간결하게 벋어내리는가 하면 뭉게구름의 끝자락인 듯 소매끝에 비치기도 하고, 다리갑옷 대님 맨 발목에 조롬조롬 주름잡힌 물결처럼 흘러내리다가 바람을 받아 나붓 뒤집히기도 한다. (「혼불」)

속옷 끝은 손등에도 살폿 덮인다.

그러니까 사천왕은 부드러운 평상복 위에 견고한 갑옷을 입고, 또 그 위에 오색 끈이나 띠를 둘러 갑옷을 고정시키며, 권위에 넘치는 온갖 치레들을 화려 장엄하게 하는 것이다.

○ 20명의 시인·작가가 예문으로 소개하는 「혼불」 속 우리말 20개는 최명희문학관 마당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③벚꽃 잎이 하얗게 흩날리는 날 아침, 블라우스에 조롬조롬 주름진 치마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여자애를 본 소년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글: 신재순·시인)

*신재순_ 2013년 제5회 천강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대상을 받으며 등단해 시와 동시를 쓰고 있다.

∥글·사진_ 최명희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