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발길 돌렸던 일이 떠올랐다. 그땐 황방산 우암송계비 옆에 산성암으로 빠지는 샛길이 있었다. 그 길을 타다가 보면 산성암(현재 일원사) 밑을 지나서 효자동 공동묘지가 나왔고 화장터가 나왔다. 나무하러 가거나 칡을 캐러 자주 들락거리던 길이었는데 어른들과 나무하러 갈 때는 화장터 근처를 얼씬도 못하게 했다. 

  왜 어른들이 꼬맹이들 앞을 가로막는지 당시엔 몰랐지만 아제 얘기를 듣다 보니 짐작이 갔다. 1950년 7월 20일께 사흘 동안 경찰이 전주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사상범들과 보도연맹원 수백 명을 학살, 떼죽음당한 시체들을 묻었던 곳이 거기였던 것이다.

▲ 1950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벌어진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 및 보도연맹원 집단 학살 장면. 미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사무소 총책임자인 에버트 소령이 촬영했다. 이 사진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50년간 비밀문서로 분류돼 묶여 있다가 지난 1999년 말 해제됐다.

  아제는 컴퓨터를 켜더니 2014년 1월 24일자 연합뉴스 기사와 경남도민일보 기사를 보여줬다.“창원지법 제5민사부(재판장 이일염 부장판사)는 23일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민간인 집단 학살사건 희생자 유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6건에 대해 원고 승소나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니가 알고 싶었던 것이 이거 아니여?”

  술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아제 눈두덩이 붉어지고 있었다. 

  악력握力이 좋아서 누구든 손에 잡히면 그것으로 끝을 냈다는 아제, 건달 생활을 청산하고 논밭 일이며 산일에 절여져서 얼굴이 더 이산 하얘질 가망이 없는 노인이 보도연맹 사건을 알고 있었고 컴퓨터를 다룰 줄 안단 말인가. 먹고사는 일에 평생을 쪼들렸을 터인데도 짚을 것은 확실하게 짚고 살아왔단 말인가. 초저녁술에 불과한 내 주량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신은 더 말짱해지고 있었다. 그는 흙에, 묏자리일에 묻혀서 사는 농투성이가 아니었다. 소나무 껍데기같이 우둘투둘한 손등이며 움푹 꺼진 눈을 가졌을지언정 그는 세상의 굴곡을 꿰뚫어보고 늘 거기에 관심을 쏟는, 살아 있는 시대정신인지도 몰랐다.

  “아제, 저는 이런 것에 좀 어설퍼요. 보도연맹 사건을 알고는 있었지만 기사를 스크랩해두고 인터넷 상에 올라온 기사를 눈여겨 볼 만큼 관심도 없어요. 그저 명당에 관한 제 호기심을 풀어보자고 온 것이었는데 정말로 드릴 말씀이 없네요.”

▲ 진실화해위원회 국민보도연맹사건 직권조사 결정 기자회견.(진실화해위원회 3주년 활동현황).

  나는 정신과 육신을 스스로 가지치기해버린 필부匹夫의 소심증을 꺼냈다. 분단과 떼죽음의 역사,경제적 불평등 구조- 이런 현실을 아주 모른다고는 할 수 없지만 행동하지 않는 앎은 목숨 걸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출렁이는 사람들에겐 모독일 것이므로, 나는 아는 것도 모르쇠했다. 그러나 세상이 가진 모순을 비껴갈수록 마음은 텅 비어가는 것 같았다. 

  어째서 이 땅의 월급봉투는 평등하지 못한가를 내 삶의 정면에 놓고 고민한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분단의 이유가 무엇이고 왜 아직도 분단인지, 어떤 세력이 통일의 앞을 꽉 가로막는지를 무릎에 꾸덕살 박히도록 캐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 허기를 감추느라고 명당 핑계대고 황방산 자락을 헤맸는지도 몰랐다. 

  이 산자락 어딘가에는 돈을 신앙 삼은 자본주의가 모르는 진실 - 가난할지라도 사람답게 살았던, 정이 두터웠던 삶이 눈알 쓰리게 꿈틀거릴 것 같다고 짐작했는지도 몰랐다. 아제는 흰털이 섞인 송충이눈썹을 꿈틀거리며 내 말을 막아버렸다.

  “너, 그런 소리 말어라잉. 산 밑에 버러지맹이로 산다고 사람을 바지저고리로 알면 안 된다잉. 근디 말이다, 암만 생각혀봐도 요상허단 말이다. 남한의 천지에 이런 떼죽음이 있었다네... 허고 2003년 당시 ‘말'지에서 다뤘드라만 금방 또 잊어버리더란 말이다. 이 세상에 사람 목숨같이 귀헌 게 또 있겄냐? 그렇게 떼죽음당헌 사람덜이 빨갱인지 파랭인지는 잘 몰라도 그들은 어쩌먼 저만 잘 먹고 잘 살것다고 핏대 세우는 것덜허고는 차원이 다른 목숨덜인지도 모른다. 돈을 하늘님 삼은 요따우 세상 맹글 것자고 목숨 걸었던 사람덜은 아닐 것이다 이 말여. 설사 빨갱이였다고 허드라도 그렇게 참혹허게 떼죽음을 시켰으먼 왜 그랬는지 진실은 밝혀야 쓰지 않것냐. 인자 저승 갈 날만 기다리는 영감탱이가 되어버렸다만, 그래서 그런지 좀 전에 일은 금방 잊어버린다만, 이상허게도 옛날일은 또록또록 떠오른단 말이다. 그리서 용천엔 그렇게 굿이 많었던 개비다”

  용천涌泉은 황방산 정상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는 샘이다.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말도 있지만 산꼭대기에서 샘이 솟는다 하여 솟을 용 자를 쓴 용천일 터였다. 집채 같은 바위와 바위가 몸을 엇걸어서 그늘을 만든 깊숙한 곳에 맑고 정결한 샘물이 솟았다. 

  여기엔 점집이 있었는데 사이다랑 뽀빠이 소주 등을 팔았다. 옥계동 사는 할매가 점을 했고 굿을 했는데 바루산 근처만 와도 깽매기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 할매는 사납기가 이를 데 없었다. 산에 놀러 왔다가 목이 말라서 물 한 모금 먹으려고 하면 갖은 욕을 퍼붓곤 했다.

  “옛날 같으면 느그덜 겉은 쌍것들이 올 곳이 아니다. 구렝이가 나와서 물을 못 먹게 큰 대가리로 시암을 막었다 이놈덜아. 굿상도 돌라처먹은 저 개잡것들이 언제나 안 온디야, 물 처먹고 썩 꺼지거라 이 빌어처먹다 디질 놈덜아!”

▲ 영화 '레드툼'은  6.25 전쟁 당시 일어 났던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다큐 형식의 이 작품은 보도연맹 사건 피해자 가족과 목격자들의 진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나와 친구들은 용천을 오갔던 것이다. 굿판이 벌어질 때엔 이런 사연도 섞였을 거란 게 아제의 생각 같았다. 보도연맹이란 말조차 담기 어려운 시대를 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빨갱이교육 반공교육에 오갈 안 들었던 사람이 몇이나 되랴. 군인들 경찰들의 총질에 떼죽음을 당한 이들의 후손들이 여기에 남 몰래 찾아와서 굿판을 벌이기도 했을 것이었다. 집식구에게조차 쉬쉬했던 말, 가슴 속에 꽁꽁 묻어둔 말, 뼈에 사무쳤을 사연을 굿판에 끄집어내어 원혼을 달래고 자신의 원怨도 삭혔을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여기서 총살을 당했는지는 몰라도, 제주도 출신의 여성들까지 떼죽음을 당했다는 말을 확인할 수는 없어도, 보도연맹과 관계되어 무참히 학살당한 이들의 후손은 이 사실에 평생을 짓눌려 살았을 것이었다.

  아제 집을 빠져나오는데 겨울달이 휘황하게 밝다. 전주 시내에서 바라봤을 때 서북쪽으로 나쁜 기운이 새어들 것 같으므로 옛어른들은 땅두둑 방榜 자를 삽살개 방尨 자로 바꿔서 황방산黃尨山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했다. 산의 원래 이름은 황방산黃榜山이었던 것이다. 

  전주를 지키겠다는 바람과 명당이란 헛입맛에 매여 황방폐월黃尨吠月 즉 누런 삽살개가 달을 보고 짖는다는 지형적 의미도 생겼을 것이었다. 하지만 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일 뿐이었다. 산의 이름과 지형은 액厄을 막아내기는 커녕 전주형무소에 수감된 수백의 목숨이 학살당하여 묻힌 참담한 장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 산에서 자행된 참살慘殺을 예견하지 못했고, 그 떼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주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 사람도 없었다. “하고 많은 산자락 중에 삽살개 주둥이 겉은 산 그림자 하나가 달을 꽉 깨물 디끼 허는 거그가 명당”일 것이라고 떠도는 말, 내 증조부가 꺼냈다는 그 말도 결국 남들은 다 굶어죽어도 제 혈족만큼은 잘 되어야 한다는 이기심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명당에 관한 궁금증을 캐러 왔다가 허망하게 밤길을 내려간다. 사회역사적 삶에 두루 이롭게 작동되기를 바랐을 풍수문화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를 바라지만 문득, 액 중엔 사람이 만들어낸 액이 사람을 가장 불행하게 만들 거란 생각이 든다. 

  호랑이도 코끼리도 개미도 독사도 제 종족을 학살하지는 않는다. 자기들의 배가 부르면 절대로 남을 해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사람을 수십만 명씩 또는 수백만 명씩 떼죽음시켰던 예를 역사시간에 자주 만났다. 전쟁과 관계된 영화는 아직도 흥행의 보증수표처럼 여긴다고 들었다. 

  전쟁 액을 막을 길은 정말로 없는 것이냐. 절이며 교회가 성당과 굿당과 명당이 이 땅 어디든 안 들어찬 데가 없다는데, 신령님도 부처님도 하나님도 미륵님도 조상님도 조선 천지에 찍찍 깔렸다는데도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만고에 저주받을 이 액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냐.

  아제의 어투를 흉내 내면서 뒤를 돌아보니 황방산이 길게 누워서 나를 내려다본다. 제 품에 묻힌 원혼들을 어르고 달래면서도 그 아픔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앞발께를 흔드는 것 같다. 고개를 흔드는 것도 같다. 역사의 어디가 작신 비틀렸길래 인간사는 아직도 이 모양인지 그것이 궁금해서 누런 삽살개가 달을 보고 짖는 것일 터였다. <다음편에 계속>

이병초 시인.

► 이병초 약력

전주에서 태어나 우석대,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수학했다. 1998년 문예 계간지《시안(詩眼)》에 연작시「황방산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밤비』(2003년, 모아드림),『살구꽃 피고』(2009년,작가),『까치독사』(2016년, 창비) 등이 있고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