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이병초의 성장통
<이병초의 '성장통'> 2. 백합 한 송이(1,2)
전북포스트  |  jbpost2014@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1.09  15:12:5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1

교련복 홑 것만 입은 채 그녀를 기다렸다. 눈이 펑펑펑 쏟아진 뒤였다. 눈 위의 눈을 쓸며 바람이 소매 속으로 가슴팍으로 끈질기게 파고 들었다. 들판은 끝간 데 없이 하얗기만 했다. 뒷머리 단정히 따내린 가시내가 쥐색 코트를 입고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았다.

시간 약속이 따로 없었지만 가시내는 눈 덮인 들판에 소리개처럼 나타나 지체 없이 내 뒷덜미를 나꿔 챌 것이다. 소매 끝에 드러난 손목이 벌개지기 시작했다.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딴 데만 보던 가시내 눈길은 발가벗은 나뭇가지를 끌어당기고 있었을까. 눈밭에 종종종 난 참새 발자국을 편지지처럼 접었다 폈다 하면서 밤새도록 적어 내린 어떤 속내를 달래고 있었을까.

 

바람이 등줄기를 되작거릴 때마다 내 키가 1센티씩 줄어드는 것 같았다. 이가 닥닥 떨렸다. 불을 피워야겠다. 교련복 윗주머니에서 달각거리는 성냥알을 꺼내어 내 속이 불덩이 같으니 어서 와서 쥐색 코트로 불길을 덮어달라고 신호를 보내야겠다.

그러나 나는 눈 속에 파묻힌 억새다발을 끄집어내지 않았다. 기다림은 형벌이니 불이 필요하지 않다. 내 몸속에 똬리 튼 가시내의 자리가 몸속의 구석구석을 찔러대며 그녀를 만난 시간보다도 더 오래, 더 지독하게 천천히 오장육부를 빠져나가더라도 꽁꽁 언 채로 기꺼이 나는 이 들판에 남을 것이다.

 

   
'교련복 홑 것만 입은 채 그녀를 기다렸다. 눈이 펑펑펑 쏟아진 뒤였다. 눈 위의 눈을 쓸며 바람이 소매 속으로 가슴팍으로 끈질기게 파고 들었다.' -본문중에서...

새벽 머리맡에 바짝 다가앉는 새소리며 아침 햇살을 촘촘히 엮던 가시내의 손길, 가시내 웃음소리를 친친 감고 나는 이 들판에서 몇 번이고 이마빡을 쓸어 올릴 것이다. 산도 들판도 지붕도 꼭 그만큼씩 평등하게 눈에 덮여 햇살에 반짝이는 눈부신 아침, 날이 풀리면 백목련 꽃망울 속에서 희디흰 잎을 젖니처럼 드러낼 그녀이니...

끝간 데 없이 하얗기만 한 들판. 눈 위의 눈을 쓸며 몰려다니는 바람, 교련복 홑 것에 사정없이 엉기는 바람은 표독스럽게 매웠다. 무릎에서 뚝뚝 관절 꺾이는 소리가 났다.

 

2

친구들은 내 삶의 찰떡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아니 야간 강제학습을 빼먹고 만화방에 가거나 호떡을 사먹으면서 이것저것을 씨워릴 줄 아는 친구들. 쉬는 시간마다 짤짤이로 우정을 키울 줄 아는 급우들이 내 옆에는 드글거렸다.

영어 단어는 외우기 바쁘게 까먹었고, 수학 시간에 배운 문제풀이 비법은 끝 종 소리에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내 성적의 주 종목은 국어와 국사, 농업 등 한국인으로서 분명히 알아야 할 과목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중 1때부터 나는 친구들과 말타기, 씨름, 짓고땡 등을 두루 섭렵했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표어가 학교 건물에 걸려 있었으니 이 즐김은 애국가를 열 번 부르는 것보다, 영어 수학 100점 맞는 것보다 강도가 훨씬 높은 애국심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 애국심은 성적과 영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시인 연합고사에 합격하기에는 성적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담임선생님께 맡아 놓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서로를 존중해 줄줄 아는 신실한 친구들과 시간을 아끼며 말타기와 씨름, 짓고땡에 주력했다. 더러는 아예 학교를 안 가고 가람 선생님 시비가 있는 다가공원을 얼쩡거리거나 외국영화와 한국영화를 번갈아가면서 두 편씩이나 틀어주는 '빈대극장'에서 하루를 죽치기도 했다.

우리는 장가가서 애를 낳으면 학교 같은 데는 안 보낼 것이라고, 학교같이 재미없는 데가 또 있겠냐고 입을 모았다.

 

하늘은 나를 사랑했다. 그러므로 연합고사 낙방이라는 시련을 주기로 작정했을 터였다. 그렇게 놀기 좋아하더니 꼴이 참 좋구나 하는 비아냥이 아무데서나 찬바람처럼 앞가슴을 헤집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았다. 인생은 저마다의 주어진 짐이 따로 있는 거니까.

“너 이놈, 고등핵교는 나와야 허닝게 전주가 아니드라도 댕기도록 혀라.”

공부가 영 재미없으니까 기술이나 배우겠다는 나를 아버지는 전북 정읍군 신태인읍 화호리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당시 서무과장님이 내 아버지의 선배였는데 그 분의 도움으로, 쌀 두 가마 값을 내고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학교 근처 용교동에 자취방을 얻었고 양은냄비며 쌀이며 밑반찬을 사들였다. 때는 2월 말이었다. 겨울 날씨도 아니고 봄 날씨도 아닌 어정쩡한 바람이 뼛속에 파고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생이 된 것이었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껀수를 잡아 턱이 빠지도록 즐기면 되니까...

 

   
'360마지기! 그렇게 대단위로 농사를 짓는 집도 있단 말이냐. 내 머릿속의 논 단위는 기껏 열닷마지기나 스무말갓지기가 전부인데 360마지기라니. 그렇게 엄청난 농사를 짓는 집도 있단 말이냐...' - 끝 간 데 없는 김제평야. /

첫날 교실에 가보니까 여학생들이 자리를 거의 차지했고 몇몇 상고머리들이 교실 귀퉁이 분단에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배가 많았다. 이게 웬일이냐, 남녀 합반수업이란 말이냐. 남녀공학이란 것은 알았지만 같은 교실에서 여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줄은 몰랐다.

키 작은 나는 맨 앞자리로 갔다. 코밑에 명주털이 나기 시작하는 나이인데 여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다니... 귀찮지만 앞으로 신발을 자주 빨아 신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수업도 중학교와 똑같았다. 선생님들 말씀은 통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수업시간은 오직 10분의 쉬는 시간을 즐기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10분을 즐기기 위하여 엉덩이를 의자에 바짝 붙이고 50분을 참고 견디는 내 인내심은 정말이지 올림픽 금메달감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4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동진강을 옆구리에 낀 화호리는 용서동과 용교동, 포룡동 세 마을을 품었는데 나는 거기 토박이 친구들과 금세 친해졌다. 학교 가까이에 국사책에도 나오는 벽골제가 있고, 동학혁명 당시 '앉으면 죽산(竹山)이요 서면 백산(白山)이었다'던 동학군 집결지 백산도 지척에 있다고 친구들은 침이 튀었다. 들판이 얼마나 넓은지 해가 들판으로 진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런데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내 놀이의 주 종목은 어느새 섰다로 바뀌었고 삼팔 광땡에 목 말라하는 호적수들끼리 쉬는 시간을 즐겼다. 섰다판을 얼쩡거리는 금판리 선호, 녀석의 집 논농사가 60필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여느 때와 똑같이 시간을 즐겼다. 나는 논 60필지가 얼마큼인 줄 몰랐다. 60필지면 뭐 60마지기겠지 싶었고 정확하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얘는 바보 아냐? 1필지가 6마지기니까 60필지면 육육에 삼십육 360마지기잖아. 그것도 몰라?”

뜬금없이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여학생이었다. 교실 앞 창문 쪽 화단에 넝쿨장미가 새 꽃망울을 짓고 있었다. 햇살이 창에 부서지고 있었다.

아아, 360마지기! 그렇게 대단위로 농사를 짓는 집도 있단 말이냐. 내 머릿속의 논 단위는 기껏 열닷마지기나 스무말갓지기가 전부인데 360마지기라니. 그렇게 엄청난 농사를 짓는 집도 있단 말이냐. 그 많은 농사를 지으려면 물도 엄청 들어갈 터인데 그것을 어디서 끌어온단 말이냐.

내 셈법에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는 360마지기, 도대체 얼마나 넓을 것인가를 헤아리다 말고 내 궁금증은 한 여학생에게도 쏠리고 있었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지만 처음 보는 거나 다름없는 여학생이었다. 내 키와 거의 비슷한 이 여학생은 '뭐 이딴 게 다 있어 흥', 콧방귀를 뀌고는 제자리에 가 앉아 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  

 
   
이병초 시인

► 이병초 약력

전주에서 태어나 우석대,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수학했다. 1998년 문예 계간지《시안(詩眼)》에 연작시「황방산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밤비』(2003년, 모아드림),『살구꽃 피고』(2009년,작가),『까치독사』(2016년, 창비) 등이 있고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련기사]

전북포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60-022)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성당길 13. 호운빌딩 3층  |  대표전화 : 063)231-6502  |  등록번호 : 전라북도 아 00076  |  발행인·편집인 : 강찬구
등록 및 발행일 : 2014년 8월 7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현영
Copyright © 2019 전북포스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