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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1.출항 出港 (3)저마다의 삶을 싣고 떠나는 '작은배'
이병초 시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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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7  15: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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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세 살, 다라이배를 타고 닻을 올린 후 내 배는 지금 어디에 머무는지 모르겠다. 아제들이 노름윷을 놀던 방죽미티를 지나, 시합 때마다 샅바나 세려들고 찐계란이나 까먹었던 씨름부 후보 선수를 지나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5대양 6대주를 누비기는 커녕 집 근처나 빙빙 돌면서 삶이라는 해독불가의 토막을 안고 낑낑대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쌀가마 실은 리어카를 밀어주는 척 됫박쌀 꽤나 빼먹지도 못했고, 동네 가시내와 보리밭에서 뒹굴어보지도 못한, 개가 흘레 붙으면 어째서 고개가 따로따론지 궁금했던 나는 언제부턴가 전혀 악동답지 못했다. 나 또한 억지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웠고, 고등학생인데도 원산폭격에 줄빳다를 이틀이 멀다고 끼고 살았으며, 비정상적으로 영어 수학을 잘하는 급우들에게 일류대학 학적부에 저장되었을 내 학번을 내줬다.

   
다라이배의 닻을 올린 후 내 배는 때때로 야속한 암초에 걸려 좌초의 위기를 맞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항해를 멈추진 않겠다. 다시 희망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을 향한 내 항해는 계속된다. /

  어른이 되어서는 더 그랬다. 비정상적으로 돈이 많은 집 자식들에게 좋은 일자리며 승진 자리를 넘겨줬고 삐까뻔쩍한 아파트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도 퇴근 후면 왠지 집에 가기 싫을 때가 많았으며 집사람 말을 얼마나 안 들었는지...

  “야, 너 니네 엄마한테 가버려. 가서 너를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해!”

  이런 소리를 닷새가 멀다고 듣기 일쑤인 변변치 못한 사내가 되었다. 자식들에게 새소리며 시냇물소리를 오래 듣도록 해주지 못했고, 밤하늘에 뜬 별자리며 야성의 빛나는 정신을 가르쳐주기는 커녕 학원으로 내쫒았다. 

  보편적 합리주의를 가장한 획일주의, 대학입시에 초점을 맞춘 고교생 학대구조의 교육현실 - 때까치 좆 자랑하듯 1등만 알아주는, 내가 겪었던 입시보다 더 미치게 복잡해져버린 대학입시정책 - 을 안주 삼아 소주를 먹었고 노가리를 씹었다. 그러함에도 나는 그딴 학교 때려 치라는 말도 못하고 이 세상을 견디는 내 또래의 아빠이자 남편인 불특정 다수의 동료들 덕분에 이렇게라도 살아 있다고 믿는다. 

  가진 자들만 더 잘 살게끔 되어 있는 병폐를 도끼로 찍어내지 못하고 속앓이하는 동료들을 더는 실망시킬 수 없으므로 나는 지금 시작한 이 연재 글을 끝까지 써낼 작정이다.

 

  절친하다고 믿었던 이에게 인감도장 찍어 줬다가 그것이 법원 최고장으로 돌아오는 기막힌 이치를 온몸으로 터득했지만 내 항해가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 노릇을 버리고 싶을 만큼 수십 년 떠돌았어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이런 이력이 집이라는 것을 깨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쓸개간장이 녹아내릴 일이 없었어도 어금니들이 작신 뽑힌, 그 허망한 자리를 혀로 짚어보며 사람이 희망이라고- 천하고 야박한 시절일수록 사람이 다시 희망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 내 항해.

  담배 한 대 빼무는데 불알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만나자는 말을 내가 해놓고도 먼저 연락한 적이 없는 나는, 이 친구에게 정말로 싸가지 없는 종자다. 허구헌날 뭐가 그렇게 바쁘냐고 따발총을 쏘아댄다.

  “너, 시방 거그가 어디여? 뭣허고 살간디 코빼기도 안 뵈는 거시여. 처갓집 미나리깡에 꽃이라도 핀거여 머여잉. 근디 말초야, 우리는 시방 다라이배도 안 타고 어디로 가능겨? 긍게 거그가 어디냔 말이여?”  <다음회에 계속>

   
이병초 시인

► 이병초 약력

전주에서 태어나 우석대,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수학했다. 1998년 문예 계간지《시안(詩眼)》에 연작시「황방산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밤비』(2003년, 모아드림),『살구꽃 피고』(2009년,작가),『까치독사』(2016년, 창비) 등이 있고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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