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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2. 백합 한 송이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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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1  16: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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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름이 옥이라고 했다. 단발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는지 손목에 차는 노란 고무줄로 뒷머리를 양쪽으로 갈래내어 참새 꽁지같이 묶었다. 얼굴이 갸름하고 목소리는 약간 허스키했는데 눈썹이며 콧잔등이며 턱 선의 맺음새가 고왔다.

쉬는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마음 한쪽이 무작정 설레기 시작했다. 수업시간 50분이 이렇게 길 줄은 몰랐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선생님은 밑줄 그어 임마, 머퉁이를 주셨고 여학생들은 뒤에서 킥킥댔다. 키도 작고 못생긴, 공부에 관심이 없어 전주시에서 읍 단위로 유학(?) 온 나에게 유일하게 말붙여준 옥이가 어떤 가시내일지 궁금했다.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만났다. 누가 먼저 만나자고 했는지 왜 만나자고 했는지 그것은 모르겠다. 화장실에 갈 때만 빼고 옥이와 나는 쉬는 시간마다 넝쿨장미가 핀 화단에 나란히 서서 해바라기를 했다.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았는지, 쉬는 시간마다 무슨 얘기를 끝도 갓도 없이 쏟아놨는지 그것은 이제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옥이의 아버지는 중2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께서 편찮으시기 전엔 집이 만석지기였으며, 자신은 막내딸이라고 말한 기억은 생생하다. 화단에 떨어진 꽃잎을 주워서 책갈피에 꽂으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찍어 쓴 편지를 동진강 푸른 물에 띄웠다고도 했다.

 

우리 눈앞엔 구(舊)정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구정문 창살 틈으로 보리 꺼끄락이 햇살처럼 묻어나곤 했다. 우리 발길 옆으로 펼쳐진 교정은 온통 장미꽃밭이었다. 건물 앞 화단 처음부터 끝까지 넝쿨장미가 탐스럽게 피어 가지가지 휘늘어지고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급우들이며 선배들이 넝쿨장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관에서 빌려 온 니콘 카메라로 지금이 자신들 인생의 최고 순간이라는 듯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넝쿨장미 앞에서 옥이는 더 부끄럼을 타는 것 같았다. 손은 못 잡았지만 넝쿨장미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속에 옥이와 갇히고 싶었다. - 본문 중에서...

옥이와 나도 사진을 찍었다. 노란꽃 빨간꽃 앞에서, 더러는 꽃들이 송이송이 달린 가지를 가슴 앞으로 끌어내려서 사진을 찍었다. 둘이 너무 가깝게 붙은 것이 아니냐는, 좀 떨어지라는 핀잔이 아무데서나 튀어나왔지만 우린 딱 붙어서 사진을 찍었다.

얘기를 할 때마다 손을 앞으로 가지런하게 모으고 약간 고개를 숙이는 옥이 얼굴, 가시내의 입술은 장미꽃에 맺힌 이슬처럼 햇살에 빛났다. 넝쿨장미 앞에서 옥이는 더 부끄럼을 타는 것 같았다. 손은 못 잡았지만 넝쿨장미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속에 옥이와 갇히고 싶었다.

 

편지를 써서 수학 정석 책 속에 끼워 보냈다. 그러면 이틀도 안 가서 답장이 왔다. 내가 쓰는 편지지는 노트를 부욱 찢어낸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옥이가 보낸 편지지는 핑크빛이며 보랏빛 색지에 꽃향기가 깔린 것이었다.

글씨를 볼펜으로 썼는지 만년필로 썼는지 구별을 못할 정도로 정성들였고 글씨가 하늘을 나는 기러기떼같이 정갈했다. 무슨 말을 할 때도 두서없이 덤벙대는 나와 달리 가시내는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는데 얘기를 듣는 내가 애통터지는 줄도 모르고 그러고도 할 말은 다 했다. 편지도 그랬다.

그 어법은 어쩌면 그림 그리는 순서와 같은지도 몰랐다. 가시내는 그림을 잘 그렸다. 그림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지만 무턱대고 색칠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4B연필로 그릴 대상을 스케치하고 그 위에 물감칠을 하는 방법은 옥이나 나나 똑같은데, 붓을 놓은 뒤 바라보면 옥이 그림은, 우리반 누구의 그림보다도 됨됨이가 달랐다.

주제는 한 개인데 모양과 색깔이 어떻게 이처럼 다를 수 있는 것이냐. 무슨 얘기를 하든 어떤 얘기를 적어가든 가시내는 그림 그리는 순서처럼 느릿느릿, 하고 싶은 말 빠뜨림 없이, 저만의 색깔을 간직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 애간장을 태웠다.

 

가시내는 교련시간에 쓰는 내 목수건에 高짜를 수놓아 오고 인절미를 가져오기도 했다. 학교가 파하면 우리는 테니스장 벽 뒤에 바짝 붙어서 음악실에서 빠져나오는 4월의 노래를 들었다. 하지만 저녁놀이 깔리기 시작하면 가시내는 집에 가야 했다. 어째서 집이란 데는 날마다 가야 하는 것이냐. 하루이틀 쯤 집에 안 가도 된다는, 반드시 안 가야 한다는, 이것을 어기면 무지막지하게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법은 도대체 언제 생기는 것이냐.

옥이는 명금산(鳴琴山) 쪽에 산다고 했다. 바래다 준답시고, 가시내의 자주색 가방을 내가 들고 보리밭길을 가로질렀다. 우리는 종달새처럼 하늘을 날아올랐다. 땅에 깔리는 저녁놀에 푹푹 빠지며, 순식간에 들판으로 번져오는 저녁놀에 우리 몸이 갇힌 줄도 모르고 작은 새처럼 날갯죽지를 푸드덕거렸다.

가시내 집이 가까워질수록 보리밭길 너머 큰길가에 심어진 포플러나무들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시간의 눈금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4

학교에 가고 싶었다. 학교가 이렇게 즐거운 곳인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지적을 받아도, 섰다를 해서 방세를 죄다 잃어도 괜찮았다. 밤에 어른들 흉내 내느라고 소주를 마셔대도 죄스럽지 않았고 자취생답게 기름소금에 밥 비벼먹어도 맛있었다.

뭇 급우들이 수학 정석 책을 하루 다섯 장씩 독파하고 영어 단어를 삼사십 개씩 외우면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목표로 할 때, 나는 양말을 날마다 새것으로 신자, 속옷도 자주 빨아 입자, 나에게는 옥이라는 현실과 미래의 목표가 있다 - 이렇게 마음먹었다.

 

급우들은 비 내리는 체육시간을 기다렸다. 그런 날은 30명씩 남녀를 섞어 편을 가른 뒤 럭비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게임은 말이 럭비이지 규칙이고 반칙이고 호각소리고 그런 게 없었다. 선생님이 하늘로 높이 차올린 타원형의 볼을 누구든 낚아채어 냅다 골인 지점으로 내빼면 그만이었다.

이때 볼을 잡고 내빼는 급우를 향해 급우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볼을 뺏느라고 남녀 몸뚱이가 한꺼번에 뒤엉켰다. 체육복이 찢어지는지 등짝을 때리는지 누가 남학생 바지를 끌어내리는지 적군인지 아군인지 그것을 분간할 틈도 없었다. 볼을 뺏고 뺏기는 진흙탕 속일 뿐이었다.

어느 편이 이겼든 그것도 상관없었다. 남녀가 함부로 뒤엉켜도 괜찮다는 꿀맛 같은 사실 그 자체로 우리 모두는 행복했다. 흙탕물에 범벅이 된, 토인 같은 얼굴들을 서로 바라보며 이빨 드러내놓고 배꼽을 잡았다.

이 행복감과 만족감의 한복판에 옥이가 있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조용히 지켜보던, 내가 어떤 말을 하든 다 들어주던 속 깊은 눈망울이 있었다. 나는 옥이 앞에서는 무엇에든 자신감을 내비치는 강한 사내가 되고 싶었다. 공부 빼놓고 뭐든 잘하고 싶었다.

유행가 가사 적어 외우기, 짓고땡, 섰다를 거쳐 여름방학이 가고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동진강으로 가는 황금빛 들길이며 끝간 데가 없어 보이는 둑길을 걷기도 했는데 문득 옥이를 등에 업고 싶기도 했다.

둑길에 저녁놀이 깔리면 가시내를 업고 세상 끝까지 가리라. 거기에 닿으면 우리 둘만의 시간만 태산처럼 쌓여 있으리니 거기서 우리는 노을빛에 감긴 시간을 몽당연필처럼 아껴 쓰리라.

 

“너, 이담에 뭐가 될 거야?”

가시내는 다짜고짜 내 옆구리에 처박힌 날갯죽지를 끄집어내려 들었다. 동진강으로 가는 둑길, 논고랑에서 튀는 가물치를 삽으로 찍어냈다는 말에 놀라 갯버들 속에서 물떼새들이 푸드덕 날아오르고 있었다. 햇살 같은, 붓으로 눈썹이며 코며 입술 언저리를 그린 것 같은 옥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나는 장군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당시 필자가 다니던 학교 근처에 있던 벽골제 들판. 

강물이 바로 옆에서 찰랑거리는 둑길, 물결에 젖은 노을이 가시내 치맛자락에 엉기고 있었다. 한 사람만 걸을 수 있는 그 길에 마주서서 옥이 눈동자 속에 박힌 나를, 나는 오래 바라보았다.

가시내 눈 속에 노을이 타오르고 있었다. 내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먹물 같은 어둠을 찍어 밤새 편지를 썼다는, 그 편지 이 강물에 띄우려고 새벽 맨걸음에 달려왔다가 풀에 씻긴 맨종아리가 쓰라렸다는 옥이 눈 속에 나는 빨려들고 있었다.

강기슭을 베고 누운 조각배처럼 옥이 무릎을 베고 나는 가시내가 이끄는 데로 몸을 맡기고 싶었던가. 물떼새소리를 내 손에 쥐어주고 싶다면서 옥이는 볼이 발개졌던가. 갯내 묻은 바람에게 우리는 무엇을 화끈하게 들켜버리고 싶었던가.

손도 제대로 못 잡고 애만 태우는 우리 두 사람을 노을이 감쌌다. 강물에 물수제비를 뜨며 바람은 저만치 몰려갔다가 되돌아오고 벼 포기 밑동만 남은 텅 빈 논에 청둥오리떼가 모여들었다.

 

눈이 펑펑펑 쏟아졌다. 첫눈은 시시하게 내리다말다 그치는 것인데 그 해 첫눈은 교실 유리창을 가득 메우며 펑펑펑 쏟아졌다. 노란고무줄로 참새꽁지같이 묶었던 옥이 뒷머리에 눈송이가 붙들렸다가 떨어지곤 했다.

우산이 없어 스케치북으로 옥이 머리를 가려주었는데 그래도 눈송이는 달려들어 가시내의 흰 목덜미를 빨아먹었다. 펑펑펑 쏟아져 쌓인 눈 위에 다시 눈이 쌓이는, 스케치북이 감당 못하는 함박눈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냥 눈 맞으며 걷자, 옥이는 내 어께에 묻은 눈을 털어주며 눈알을 빛냈다.

“길가에 쭈욱 심어진 포플러나무를 세면서 집에 갈 때면 꼭 네가 따라오는 것 같았어. 뒤돌아보면 너는 없고 몇 걸음 떼다가 뒤돌아보면 너는 또 없고, 그래서 아예 뒤로 걸었지 뭐야. 하늘엔 초저녁별이 뜨고. 맞아, 그때부터 너는 내게 초저녁별이었어. 밤하늘에 가장 빛나는 별이었어. 오늘은 첫눈이고.”

얇게 쌍꺼풀 진 반달눈을 떴다 감으며 새끼염소의 혀같이 말랑거리던 가시내 목소리가 눈송이를 헤치고 내 심장에 박히고 있었다.

밥 퍼낸 무쇠솥 바닥을 초승달 같은 놋달챙이로 닥닥 긁어서 주먹밥처럼 뭉쳐온 깜밥을, 놀장놀장 눌은 빛깔에 불티 뒤섞인 그 차지고 고소한 단맛을 조금씩 내게 떼어먹였던 옥이. 목 당그래질이 뭔지도 모르고 가시내 손끝을 빨아먹을 듯 넙죽넙죽 받아먹었다가 느닷없이 배 아프다고 꾀를 쓰면 자취집 장광에 깔린 흙기와 조각을 연탄불에 구워와 내 배에 올려놓고 깜밥 묻은 손끝을 떨었던 옥이.

가시내 손바닥에 눈송이가 앉고 있었다. 가늘디가는 가시내의 목선이 함박눈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집에 가기 싫은, 언제까지 이 길에 펑펑펑 쌓이고만 싶은 함박눈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펑펑펑펑 가시내 목선이 점점 더 가늘어졌다.

 

“방학 때 못 만나겠네?”

편지 겉봉 위 왼쪽 끄트머리에 한 송이 백합-이란 글씨가 씌어 있었다. 방학이 되었으니 나는 화호리에서 두 시간 버스를 타고 전주 집에 가야 했다. 옥이는 두툼한 노트와 뭔가를 싼 선물 꾸러미를 내밀었다.

버스 속에서 노트를 펼쳐보았다. 150페이지가 넘는 고급 일기장이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았지만 첫장부터 끝장까지 내 얘기만 기러기떼같이 적혀 있었다. 무려 150페이지가 넘는 빈 곳에 내 어떤 모습을 눈알 빠지게 적어갔는지, 제 숨소리를 모아서 한 자 한 자 적어갔을 그 글자들 속에 어떤 밑그림이 그려졌는지 그것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옥이는 눈을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직 내 생각만 한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차창을 스쳐가는 산과 들판의 멀고 가까운 풍경들은 어느새 가시내 얼굴로 바뀌어 나를 보고 생글거렸다. 선물 꾸러미를 열어보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신랑신부인형이 정답게 웃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이병초 시인

► 이병초 약력

전주에서 태어나 우석대,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수학했다. 1998년 문예 계간지《시안(詩眼)》에 연작시「황방산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밤비』(2003년, 모아드림),『살구꽃 피고』(2009년,작가),『까치독사』(2016년, 창비) 등이 있고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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