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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실재의 귀환...독립군이 또 다른 지배자였다고...? <강주영의 '만주항일답사'>
강주영 편집위원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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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8  0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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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 말라 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지우개를 주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 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즐거운 학문 - 잠언 125, 1882 - 니체>

 

   
"누가 나에게 지평선을 지울 지우개를 다오. 지평선 너머를 우리는 보지 못한다."

마르크스보다도 위험한, 망치를 든 전복과 파괴의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인식의 지평이라는 말이 있다. 인식의 세계를 넓힐 때 흔히 '지평을 넓힌다'라고 한다. 세계가 어디까지 인식 가능한가는 철학의 고전적 명제이지만 여전히 논쟁적인 사안이다. 인식의 세계에서 우리는 니체의 물음처럼 인식의 지평선을 지울 '지우개'를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다.

우주에서 찍은 지구별은 '아름다운 푸른 행성'이지만 그 너머에 있는 전쟁, 차별, 학대, 폭력 등은 사진에 드러나지 않는다. 이럴 때 인식은 실재實在(reality)에 이르지 못한다. 실재는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처럼 '창백한 푸른 별'이기도 하겠다. '실재의 귀환'은 늘 아득해 보인다.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의 실재가 그러하다. 1920~40년대 북만주는 동북아의 용광로였다. 세계의 모든 문제들이 핵으로 응축된 전쟁터였다. 

 

   
'아름다운 푸른 행성' 사진은 전쟁, 학살, 억압, 착취를 보여주지 않는다. 실재가 아니다.

만주는 독립군, 조선인사회, 한족사회, 민족주의, 사회주의, 마적(토비), 중국군벌, 중국국민당, 중국혁명군, 소비에트 적군, 소비에트 백군, 일제 등이 서로 이합집산하며 생존을 위해 싸우는 전쟁터였다. 그 전쟁에서 가장 참혹했던 이들은 독립군이 아닌 이주 조선인이었다.  

살 길을 찾아 왔든, 일제의 덫에 걸려 강제 이주 당했든 그 참혹함은 이용악의 시에서 처참히 드러난다. 길지만 전문을 인용한다. 리얼리즘 문학의 백미이다.

"날로 밤으로 /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 대대손손에 물려줄 / 은동곳도 산호 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굴소 / 모두 없어진 지 오랜 / 외양깐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 털보네 간 곳을 아무도 모른다. // 찻길이 놓이기 전 /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 앞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 털보의 셋째 아들은 / 나의 싸리말 동무는 / 이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 첫 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 그날 밤 /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 갓주지 이야기와 /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 노랑고양이 울어 울어 / 종시 잠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 / 나의 동무는 /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 그가 아홉살 되던 해 /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 북쪽을 향한 발자옥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 더러는 오랑캐 쪽으로 갔으리라고 /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 이웃 늙은이들은 /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 탐스럽게 열던 살구 /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이용악 '낡은 집'>

 

   
"정의는 눈 속에 춥고, 길은 가파르다. 저들의 정의와 작별한다."

당시 중국인들은 조선 유랑민들을 ‘망국노(亡國奴)’라고 불렀다. ‘나라 잃은 노예들’이라는 뜻이다. 굶주림은 오히려 다행이었고, 중국인들과의 분쟁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흔했다 한다. 조선인들은 만두 몇 개에 한족의 머슴살이도 서슴지 않았다.

철마다 토비에게 빼앗겼다. 국민당군과 중국공산군으로 주인이 바뀔 때마다 양쪽에서 배신자로 찍혀 죽었다. 거기에 종래의 장작림 같은 군벌들에게도 시달렸다. 하물며 일제에게는 오죽했으랴. 소비에트 쪽에서도 그러했다. 밀정으로 숙청 당했으니 김단야와 주세죽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로 갈린 독립군들에게도 서로 배신자로 낙인 찍혀 죽기도 했다. 김좌진이 이끌던 신민부에 세금을 내지 않아 독립군이 같은 동포에게 총격을 한 일이 빈주와 훈춘에서 있었다.

독립군자금이 이렇게 걷혔으니 독립군은 그 대의에 불구하고도 얼굴을 바꾼 또 다른 지배자였는지도 모른다. 독립군 한 명을 기르기 위해서는 열 명의 조선인이 희생해야 했다고, 인터뷰한 연변대학의 교수가 일러준다.

이곳에서는 김좌진이 일제의 밀정에 죽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공산당원이 저격했다 하는데 그 의도가 뻔한 반공주의였다하더라도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계열의 분파 투쟁의 희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좌진은 장개석의 국민당군과 협조한 적이 있었다. 한족총연합회 시절 조선인 사회의 자치를 유지하기 위해 일제와(좋은 의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좌진 장군의 딸 김순옥 여사의 사면복권증(2001년)

어쨌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이미 타계한 김좌진과 장군의 딸 김강석(김순옥으로 개명, 2003년 타계, 딸과 외손녀가 중국에 거주한다.)은 중국혁명군이 만주를 해방시켰을 때 반혁명분자로 낙인 찍혀 김강석은 3년의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후에도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 취직도 하지 못했다. 덩샤오핑 때에 김좌진 장군과 같이 사면복권되어 혁명가족으로 대우받게 되었다. 비단 이 경우만 있었겠는가? 수 많은 조선인이 중국공산혁명 시기에 숙청되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소련군에 막혀 해방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조선독립군은 한국전쟁의 최일선에 투입되었다. 그 수가 4만명이 넘었다 한다. 물론 모택동의 아들도 한국전에서 죽을 만큼 한족도 100만명 넘게 참전했다. 

이곳에서는 한국 정부의 눈치를 보아 말을 아끼지만 중국혁명기에 조선인들이 국민당군 뿐 아니라 일제와도 최일선에서 싸웠기에 한국전쟁에 중국이 참전한 것은 조선에 은혜를 갚은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한다.

 

   
청산리 전투 후 일제의 보복에 3,000여명이 학살 당한 경신참변.

이곳의 안내자 친조부는 한국전 징병을 피해 피신했고 외조부는 한국전쟁에 나갔다 한다. 외조부 덕으로 안내자 가족은 혁명가족으로 출신 성분이 상향되었다고 일러준다.  

모름은 죄가 아니지만 환상은 악이 될 수 있다. 독립군을 높이 사지만 영웅적 환상도 버린다. 그들도 악마였을 수 있다. 만주 조선인에게 과연 해방은 무슨 의미였을까? 또 중국혁명은 무엇이었을까? 악마와 싸운다고 같이 악마가 된다면 도대체 혁명이란 것이 무엇이고 이념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념의 순수라는 것이 있을까? '단 한명이라도 억압받는다면 혁명은 아니다'라는 바쿠닌이 떠오르는 밤이다. 실재가 명확하지 않은 북만주의 밤, 화주로 들끓는 속을 달랜다. 추위까지 뼈에 스민다. / 강주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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