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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랑캐의 땅, 국경 없는 자들의 국경 <강주영의 '만주항일답사'>
강주영 편집위원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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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6  19: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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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수 흘러흘러 동해로 들어간다 / 물거품 거품마다 영웅의 자취로다 // 시비와 성패가 돌아보니 부질없더라 / 청산은 옛대로인데 석양은 몇 번이나 붉었던고 // 강가의 두 늙은이 어부와 나뭇꾼이로다 / 추월춘풍에 머리털이 다 세었다 // 서로 만나 반가워라 탁주 한병 앞에 놓고 / 고금의 많은 얘기를 모두 다 웃음으로 넘기더라. "

삼국연의의 나관중 서시이다. 이어서 첫머리에  "무릇 천하는 합친 지 오래면 반드시 갈라지고, 갈라진 지 오래면 반드시 합친다." 하였다. 북만주 땅 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옛일이 모두 그렇다.

 

   
만주 광야의 석양이 고금의 흥망을 떠오르게 한다.

북만주의 독립군 항일답사를 하며 북방의 역사와 앞날의 운명을 생각한다. 한족의 역사는 만리장성, 하북성 이남의 역사이다. 한족의 말대로 북방의 역사는 오랑캐의 역사이다. 오늘날 한족이 북방을 지배한다 하여 북방사가 중국사로 취급되는 것은 가당치 않다.

북방을 개척하고 나라를 세운 족속 중에 오로지 몽골과 우리 배달만이 지금 나라를 가졌을 뿐이다. 모든 오랑캐(몽골에 오랑카이족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들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만주는 국경없는 자들, 유목민의 땅이다. 동이, 선비, 흉노, 돌궐, 말갈, 여진, 거란, 몽골이 일어서고 졌다. 그들은 머물지 않고 달리며 흐르는 자들이었다. 머물지 않고 구름처럼 일어나 모여들어 달렸을 때 제국을 세웠다.  

몽골에 있는 돌궐의 장수 톤유쿠크 비석에 이리 적혀 있다 한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달릴 때 높고 낮음이 어찌 있으며, 일하는 자와 부리며 누리는 자가 따로 있겠는가? 국경은 일하고 사랑하며 키우는 자들의 경계가 아니다. 인민에게 어찌 경계가 있겠는가? 국경은 서로 물어뜯어 누리는 권력의 휴전선일 뿐이다.

 

   
톤유쿠크 비석 -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 고 적혀 있다 한다.

그러나 도시를 만들고 신분을 세우고 연합한 부족이 군신이 되고, 말을 타지 않고 초원에 씨앗을 뿌렸을 때, 제국은 바람처럼 흩어졌다. 국경 없는 자들이 국경을 그었을 때 국경은 무너졌다.

북방의 시인 이용악은 시 <오랑캐>에서 고려에 쫒긴 여진의 비애를 일본에 쫒긴 조선의 비애에 투영하여 망족의 서러움을 절창하였다.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띠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갔단다 //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께 /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오랑캐꽃 - 이용악>

먼 훗날 필경에는 동북아에 다시 새바람이 일어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져, 흩어져서는 다시 모여 골짝골짝을 흘러가리라. 그때 경계는 무너지고 새 경계가 세워질 것이니, 한반도의 남북통일은 작은 도랑의 합수에 지나지 않는다. 

 

   
앞쪽은 중국 쪽 동령이고 먼 쪽은 러시아이다.

거대한 소비에트연방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여러 나라로 일어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스페인에서 카탈루냐가, 멕시코에서 사파티스타가, 캐나다에서 퀘벡이, 미국에서 캘리포니아가 자치독립하고, 그와는 다르게 볼리비아 콜롬비아 페루 등이 볼리바르의 꿈처럼 연합한 남아메리카연방공화국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2개 특별행정구 4개 직할시 23성 5개 자치구 30개 자치주 56민족 13억 인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언제까지나 갈 것인가? 중국이 오늘날의 고도성장에 안주하고 공산당이 썩어 중국인민들의 빈부 격차가 심할 때에 반드시 갈라지고 동북아에 새 질서가 생길 것이다. 56민족의 어디에서인가 신민족주의가 발호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얼음은 망치로 깨지지 않고 송곳으로 갈라진다. 북만주를 누비며 보고 생각컨데 중국공산당은 주머니에 송곳을 키운다는 생각이 든다. 이만오천리 연안 장정 중국 혁명기의 위대한 인민애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국가가 넓고 강성하면 다른 국가를 물어뜯으니 국가란 작을 수록 좋다. 크고 넓음을 부러워 할 일이 아니다. 국가란 만개 마을공화국의 연합의 연합이고, 이 연합은 언제든 마을공화국의 뜻에 따라 달라진다. 연방은 고정체가 아니며 흐르는 것이다. 아나코코뮌주의 연방원리가 이러하다. 마을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고, 연방은 자유로운 마을의 연합이다. 국가는 한 없이 낮아지고 마을은 한 없이 커져야 한다. 

 

   
깃발의 A는 아나키즘 anarchism의 A이다. 원은 '영원',  흑색은 '순수'를 상징한다.

"독립 인도가 영국의 길을 간다면 전 세계를 메뚜기떼처럼 벗겨 먹을 것이다. 인도는 만개 마을공화국의 연방이어야 한다"던 간디는 국가주의자의 총에 맞았다. 그의 물레는 '스와라지 스와데시' 자치와 자급의 마을공화국 상징이지 국산품 애용 따위가 아니다. 간디는 아나코코뮌주의자였다.

흑룡강에서 나는 국제주의 아나코코뮌주의를 곱씹는다. 일본 대학생 게무야마 센타로가 1902년 얼치기로 오역한 무정부주의가 아니다. 나는 아나키민주주의를 꿈꾼다. 내가 충성할 국가는 없다. 나는 인민이며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에 충성할 뿐이다. 내게 국가의 식민 국민은 없다. 일하는 인민이 있을 뿐이다. 위대한 당과 수령의 령도가 아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지도도 아니다. 나는 외친다.

"인민은 말한다. 국가는 따르라"

내 잘라진 반도에 웅크려 머물러서는, 서로 물어뜯는 자들의 좁은 국경 안에 있으니 태산처럼 답답하여 한탄한다. 

 

   
중러 국경도시 흑하의 흑룡강에 선 필자와 소설가 이광재. 강 너머는 러시아. - 흑하에서 우리는 국경 없는 자들의 국경을 이야기하였다.

당대의 실현이 아니더라도 훗날 "광야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을지니 우리 어찌 근본의 꿈을 놓칠 것인가! 훗날의 세대에 물려줄 씨앗을 광야에 어찌 뿌리지 않겠는가! 

당대의 혁명이 늙고 지쳐서 고물장수도 안 가져갈지라도 나는 최후의 혁명주의자이기를 놓지 않는다. 홀로 소진하여 바라보는 이 없어도 어찌 사랑을 버리겠는가?

우리는 흑룡강에서 하얼빈을 향해 다시 북방을 달렸다. / 강주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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