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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북만주 광야의 늑대가 되고 싶었다. <강주영의 만주항일답사>
강주영 편집위원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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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4  16: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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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끝난 암갈색 만주평원은 하늘과 땅의 경계가 섞이고 뒤엉키며 내려갔다가는 올라왔다. 먼 데 들불이 일어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하늘과 땅이 서로 변주하였다. 북방의 땅이 겨울을 부르며 소용돌이쳤다. 소용돌이치는 평원의 지평선 끝,  멀어 가닿을 수 없고 넓어서 품을 수 없었다. 

   
소흥안령 주변의 북만주 광야.

광야는 그리운 이름들을 아득히 토해낸다. 그리운 벗들! 그대들의 광야는 어디 있는가? 우리는 좁은 땅에서 서로 물어뜯는 자들의 정의와 결별하고 싶었다. 광야에 아침 햇살 춤춘다 해도 육사의 '백마타고 오는 초인'은 보이지 않았다. 내 글의 짦음을 황량히 탄식하며 육사의 시를 떠올린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 참아 이곳을 범하든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지금 눈 나리고 /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소흥령 산맥의 한자락 구봉산 지역. 

산들은 무겁고 낮았으나 끝없이 이어졌다. 만주평원 광야에서는 큰산조차도 구릉처럼 낮아 보였다. 평원에서 백양나무 방풍림이 마을이 있음을 알리며 추위 속에 곧추서 있었다. 마을들은 광야의 바람 속에 춥고 헐거워보였고 광야의 바닥에 낮게 웅크려 있었다.  바람이 갈기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검불이 뭉쳐 날리다가는 뒹굴다가 다시 날렸다. 평원에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화주를 마셨다. 평원의 눈밭에 가뿐 날숨을 토해냈다. 짧은 북방의 해가 노을을 잠시 번지다가는 숨지자 어둠이 평원을 덮었다. 북방은 문득 일어서 산맥과 벌판을 휩쓸다 문득 사라진 바람의 제국이었다. 

소흥안령 산맥을 넘으며 함석헌 선생의 명문을 떠 올린다.

 

   
북만주에 눈이 내린다.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옛적의 어떤 날 망망한 만주 평원의 거친 풀밭 위에 먼동이 틀 무렵, 훤하게 밝아오는 그 빛이 억만년 사람의 그림자를 본 일 없는 흥안령의 마루턱을 희망과 장엄으로 물들일 때 몸집이 큼직큼직하고 힘줄이 불툭불툭한 큰 사람의 한 떼가 허리엔 제각기 창검을 차고, 손에는 억센 활들을 들고 선발대의 걸음으로 그 꼭대기에 턱턱 나타났다. 

 

   
'흑하'라는 이름답게 땅은 검었다. 한줄기 백양나무 방품림이 마을이 있음을 알린다.

흐트러진 머리털 사이로 보이는 널따란 그 이마에는 어진 이의 기상이 띄어 있고, 쏘는 듯한 그 눈빛에는 날쌤의 정신이 들어있다. 주먹은 굳게 쥐어 굳센 뜻을 보이고 입은 무겁게 다물어 삼가는 마음을 나타낸다. 문득 솟는 해가 결승선을 차 던지는 용사 같이 불끈 솟아 지평선을 떠날 때 그들은 한 소리 높여 '여기다!'하고 외쳤다. 장사들의 우렁찬 소리는 아침 햇빛을 타고 우뢰같이 울리며 끝없는 만주 벌판으로 내리 달았다....... 한국사의 시작은 아마도 이러하였던 것이리라."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중에서) 

어두운 평원의 복판에서 불쑥 나타난 중러 국경도시 도시 흑하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온 송화강을 만난 흑룡강이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흑룡강은 얼어붙은 속살을 일그럭 일그럭 우웅 우~웅 부딪히며 매운 바람 속에 머나먼 오오츠크 앞 동해로 흐르고 있었다. 국경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달렸다. 

 

   
중러 최북방 흑하 흑룡강 건너편 러시아 쪽 야경, 검은 색은 잠의 흑룡강이다.

밀산에서 흥안령을 넘고 평원길로 이천 여리, 단풍이 끝불치는 남도에서 칠천리였다. 그리운 이들은 대륙의 동남쪽 끝 남도에 있었다. 칠천리를 올라온 남도 사내 둘은 북방을 교접하며 누비는 늑대가 되고 싶었다. / 강주영 편집위원

※ 일정으로 보아 청산리와 신민부 활동지였던 목단강 지역의 글이 먼저여야 했다. 몇 줄 적고 며칠 미루었다. 며칠을 앓았으나 궁량과 글이 짧아 도저히 청산리의 서사를 적을 수 없었다. 글을 사랑하는 자의 숙명이다. 더 익어야 하리라. 독자들의 혜량을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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