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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눈물 젖은 두만강 <강주영의 '만주항일답사'>
강주영 편집위원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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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9  06: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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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 된바람을 헤집어 온 국경에 밤이 내리고, 북방 대륙 열차 기적 소리는 두만강을 넘는다.

조중 국경 도문에서 전라도 사내 둘은 길이 막힌 난민이 된다. 사내들에게 국경은 없건만...독한 오십도 빠이주로도 가슴은 헐겁기만 하다. 무력한 내 나라의 운명을 작별하고 싶다. 따뜻한 남쪽은 삼천리!

 

   
두문강 국경도시 도문에서 보이는 조선의 함경북도 남양시.

나는 빠이주를 마시며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를 떠 올린다. 시에서 전라도 가시내는 북방의 술막으로 흘러들어 온다. 눈보라를 뚫고 온 함경도 사내는 전라도 가시내를 연민한다. 오늘 전라도 사내는 함경도 가시내를, 함경도 가시내는 전라도 사내를 만나지 못 한다.

".......네 두만강을 건너 왔다는 석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전라도 가시내야, 니 숨 죽여 우는 곳이 북방 타관의 술막이더냐 ? 어쩌다 고향을 등져 바람 부는 타관으로 흘러들었더냐 ? 햇볕에 기어나와 목 놓아 울어라, 전라도 가시내야. 두만강변에서 빛이 사라지도록 사내들은 때 이른 봄 진달래를 그렸다.

 

봉오동에서 두만강 국경도시 도문에 오니 어둑해진다. 중국 측에서 새로운 국경다리 건설이 진행 중이다. 우리 일행은 두만강을 왼편에 끼고 강변도로를 달렸다. 국경철책이 이어지고 중국초병들이 왔다 갔다 한다.

 

   
두만강 조중 철도 소실점 쪽이 조선 함경북도 남양.

건너편은 함경북도 남양시이다. 조선초병은 보이지 않았다. 위장 초소에 있다고 한다. 국경의 조선 마을은 정갈해 보였다. 두만강 수심은 갈수기인 겨울이라 그런지 얕아 보였다. 도문은 두만강 상류 지역이다. 강폭이 좁은 상류부에서는 걸어 건널만 하였다. 헐거운 산들과 어둑한 하늘 탓인지 강물은 거무스레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물 속에 두만강을 건넜을까?

선인이나 한국인이나 누가 노래 '눈물젖은 두만강'을 모르겠는가! 이 노래는 도문에서 지어졌다. 작곡의 배경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박헌영과 주세죽 부부 사연이고, 다른 하나는 무명의 독립군 아내 사연이다. 둘 다 애처로운 사연이다.

   
두만강과 부루하통하 두물머리.

1928년 사회주의 혁명가 박헌영은 부인이자 동지인 주세죽을 데리고 두만강을 넘었다. 도중에 양수가 터져 주세죽은 딸 비비안나를 낳았다.

이 비운의 두 주인공 박헌영과 주세죽의 애처로움을 기려 <눈물 젖은 두만강>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박헌영은 한국전쟁 후 북에서 부수상을 지내다 미제 스파이로 몰려 처형당했다. 주세죽은 피아노를 배운 사회주의 운동가였는데 소비에트(소련)에서 스탈린에게 스파이로 몰려 1938년 카자흐스탄에서 5년간 유형 생활을 하였다. 1953년 쓸쓸히 죽었다. 2007년 대한민국에서 복권되고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1928년에 찍은 주세죽, 박헌영, 딸 비비안나

주세죽은 고명자, 허정숙과 함께 1920년대 경성의 트로이카 미인이자 '막스걸'이었다고 한다.

고명자는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한국전쟁 때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허정숙은 북만주에서 무장항일투쟁을 하였고 변호사 허헌의 딸이다. 북한에서 문화선전상을 하는 등 고위직을 지내다 1991년 사망한다.

고명자는 김단야와 결혼하였다. 엇갈린 운명으로 주세죽과 김단야는 박헌영과 고명자가 죽은 것으로 알고 동지의 남편, 동지의 부인과 결혼하기도 하였다. 김단야는 1937년경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에 일본 스파이로 몰려 처형되었다. 주세죽은 해방 후 조선으로 귀국시켜 줄 것을 스탈린에게 청원하였으나 묵살당했다. 허정숙은 '붉은 연애관'으로도 유명하며 4명의 남편을 두었다. 임원근, 송봉우, 신일룡, 최창익이 그들이다.

 

   
1920년대 경성의 트로이카 미인이자 막스걸이었던 (왼쪽부터)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박헌영과 주세죽 사이에서 난 비비안나 박이 소장하던 사진.

무명 독립군 아내설(說)은 이렇다. 1935년 연극단 예원좌에 속해 있던 청년 작곡가 이시우는 두만강변 국경도시 도문의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그런데 옆방에서 여인의 통곡소리가 났다. 여인은 남편을 찾아 천신만고 끝에 도문에 왔는데 남편은 일본군과 싸우다 죽었다 한다. 이날이 마침 남편의 생일이어서 통곡을 하였다는 애절한 사연을 듣고 즉석에서 문학청년 한명천이 1절을 쓰고 이시우가 곡을 썼다고 한다. 극단 예원좌는 소녀 배우 '정월성'에게 부르게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4번이나 더 불렀다고 전한다. 2절 3절을 김용호가 다시 쓰고 김정구가 불러서 1937년2월 OK레코드사에 취입했다.

 

어느 설이 맞는지는 여기서 따질 바 아니다. 두 사연 다 망족의 애처로움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땅에서 두만강은 여전히 눈물 젖어 흐른다. 할 일 없이 건너편 조선 땅을 바라보다 다시 길을 잡으니 국경의 밤은 깊어졌다. / 강주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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