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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열차들의 무덤에서 고장난 근대... <강주영의 '혁명로드'>
강주영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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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8  11: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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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열차들의 무덤(Cementerio de Trenes)에서 고장난 근대를 절규한다.

이 여행기의 프롤로그 "동문을 나서며"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그 별들은(혁명은) 내게 빛나다가는 이제 빛나지 않는다. 혁명이 궁핍한 시대, 혁명은 늙고 지쳐서 고물장수도 가져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예감을 했던가? 머나먼 타관 남미의 볼리비아에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녹난 시대의 열차를 맞닥뜨렸다.

 

   
 
   
열차들의 무덤(Cementerio de Trenes) 파노라마. 

볼리비아의 산타클라라에서 숨진 '체 게바라'는 자신의 혁명이 녹이 날 줄 단 한 숨이라도 예견했을까? 일행 때문이기도 했지만 산타클라라의 '게바라의 길'에서 느낄 혁명의 비탄이 두려워 그곳을 가지 않았겄만!

사랑의 정한이 빗물로 씼기고 씼겨서는 오로지 순수의 결정만이 빛나는 '우유니소금대평원'에서 사랑을 다시 시작하려 하였건만 "열차들의 무덤 Cementerio de Trenes" 을 보고야 말았다.

 

   
 
   
'녹난 열차에서 혁명의 폐허를 절감하고야 만다.'고 필자는 말한다. 

우유니소금평원 입구와 우유니시 사이에 열차들의 무덤이 있다. 광산을 운영하던 스페인 회사들이 자원이 고갈되자 1940년대에 버리고 간 것들이 방치되었다가 관광상품화 된 것이다. 폐허의 로맨틱한 낭만이라고나 할까? 젊은이들은 온갖 포즈를 연출한다.

젊은 낭만의 열정에서 폐허에서 다시 울릴 기적 소리를 예감하기도 하지만 녹난 열차에서 혁명의 폐허를 절감하고야 만다. 사진 작가들의 명소가 되어 시대와 운명의 메시지들을 은유하는 열차들의 무덤 앞에서 나는 절규하고 싶어진다.

20세기는 녹이 난 시대였던가? 녹난 열차들의 무덤에서 20세기는 문을 닫았던가? 우리는 어디까지 달렸으며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아니 멈출 생각을 해보았던가? 다른 삶으로의 꿈은 폐허의 날들에서 무덤에 묻힌 혁명이 되었다. 20세기의 문을 파라다이스처럼 열었던 반식민 독립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은 질주하는 '악마의 멧돌'(폴 칼라니) 자본 앞에서, 그저 녹이 나서는 한갖 유희의 무덤으로 장송되었다.

   
 
   
사막에 흩어진 녹슨 열차들.

폐허가 된 열차의 무덤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의 기획울 더듬는다. 그 기획은 고장난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전진하는 것일까? 자본주의나 역사상의 사회주의나 이미 고장난 것은 아닐까? 자유는 시장의 자유였다. 혁명에 저당잡힌 유일당의 자유였다. 평등은 여전히 유토피아적이다.

소설 '희랍인 조르바'는 고장난 근대의 기획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측면에서 조롱하였다. 조르바는 개인의 자유와 자치가 실재화하는 희망을 외쳤고 실험하였다. 니이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나는 시장에서 터지는 다이너마이트이다'라고 절규하였다. 망치를 든 전복의 철학자 니이체는 말한다. "사악한 세계에서 안전하게 사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위험하게 살아라. 위험한 네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아모르 패티"

열차의 무덤이 외친다 . "아모르 패티"

   
 

이상의 「날개」 앞머리가 이곳에서 그리 명징할 수 없다.

" 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회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리 속에 으례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

 

   
녹슨 열차. 

나는 나 자신을 혁명으로 위조하였던 말인가? 내게 혁명은 이제 봉쇄되어야 할 20세기란 말인가? 기억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녹덩어리란 말인가? 21세기는 사랑에 실연 당한 시대인가? 5월 말 어느날 술에 취해 이렇게 썼다.

"전라도 가시내야, 니 숨 죽여 우는 곳이 타관의 낡은 여인숙이더냐? 어쩌자고 고향을 버리고 바람 부는 타관으로 숨어들었더냐? 햇볕에 기어나와 목 놓아 울어라, 전라도 가시내야. 적산가옥의 삐걱거리는 계단참에서 빛이 가둬지도록 사내는 앉아 있었다. 그리워서 녹난 눈물이 흘렀다."

 

   
스페인 식민 유산의 폐허에 내려쬐는 강렬한 태양 아래 녹난 눈물을 흘리며 나는 절규한다. "나에게 사랑을 다오, 위험한 삶을 살아라 ! 아모르 패티! !" - 강주영 편집위원.

타관 땅 볼리비아, 스페인 식민 유산의 폐허에 내려쬐는 강렬한 태양 아래 녹난 눈물을 흘리며 나는 절규한다. "나에게 사랑을 다오, 위험한 삶을 살아라 ! 아모르 패티! !" 눈물을 흘리며 다시 혁명을 혁명한다. / 볼라비아 우유니소금평원 입구 "열차들의 무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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