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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발이 없는 아이를 보기 전까지... <강주영의 '혁명로드'>
강주영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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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1  14: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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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발이 없는 아이를 보기 전까지 신발이 없다고 울었다 - 과야사민(Guayasamin)

   
과야사민

“발이 없는 아이를 보기 전까지 신발이 없다고 울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묘연하면서도 무엇인가의 새로운 경계에 온 것 같았다.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랑, 여하한 형태의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을 저리 표현할 수 있다니... 이야말로 위대한 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 한 문장의 표현을 접한 것만으로도 키토는 충분하였다.

적도를 탐방한 날 오후에 과야사민(Oswaldo Guaysamin 1919~1999) 미술관을 갔다. 키토 시가지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곳에 지금은 과야사민 미술관이라 불리는 "인민의 신전"이 있었다. 미술관에서 보이는 키토는 고원의 구릉도시로서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산자락에 다글다글한 주택, 지그재그로 난 도로 낮은 협곡 쪽의 도시 중심 시설 등이 위치하였다. 미술관 건너 저멀리 반대쪽 구릉에 올드키토 시가지가 보인다.

   
 
   
 
   
과야사민 미술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키토 시가지.

에콰도로 여행을 준비하면서 억압에의 저항과 인간의 고뇌를 그려냈으며 ‘제2의 피카소’라는 남미의 인민화가 과야사민을 처음 접하였다. 미술에 문외한이기도 했지만 '저항성'이라면 '선전예술'로 치부하고 불편해하는 우리 사회에서 과야사민이 널리 알려지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가 마오쩌뚱, 피델 카스트로, 파블로 네루다 등과 교분이 많았다 하니 위험한 인물이기까지 했을 터이다. 그의 연대가 1919년에서 1999년이니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았다 하겠다. 더구나 남미였으니 독립과 혁명, 독재에의 저항이 바람처럼 일었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과야사민 미술관에 전시된 '카스트로'와 유명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치아'의 초상화.

인터넷에서 그의 작품을 접하고는 전율이 올랐다. 굵고 강한 터치로 대상의 골격을 해부학적으로 드러내며 억압성과 저항, 연민과 사랑의 고뇌를 드러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쿠닌의 '단 한 명이라도 억압을 느낀다면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과야사민의 그림을 보면서 떠올린다. 과야사민 자신도 이렇게 말했다 한다.

"발이 없는 아이를 보기 전까지 신발이 없다고 울었다." 그의 예술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이처럼 명료한 말은 없으리라.

 

   
과야사민 자화상.

에콰도르 상징인 콘도르와 스페인을 상징하는 소를 그린 그림은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림에서 새는 소를 자신의 발아래 두고 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에콰도르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1976년 과야사민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재단을 세우고 자신의 모든 작품과 소유 예술품들을 모국인 에콰도르에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현재의 ‘과야사민 미술관’이다. 높은 쪽의 백색외관 미술관이 생전의 작업실이었다고 한다. 주로 소형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검은 석재의 외관을 가진 미술관에는 대형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과야사민 미술관의 대표작(위)과 미술관 외관 및 키토 시가지(아래).

시인 네루다, 가수 소사, 화가 과야사민의 남미 민중들의 아픔과 영광을 떠 올리며 미술관을 나서는 길에 적도의 일몰은 서쪽 산을 넘고 있었다.

이틀 후에 엘 빠네시요(El Panecillo) 언덕에 있는 키토의 성모상(La vargen de Quito)을 찾았다. 1976년에 키토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념으로 세워졌다. 스페인의 조각가 에란 마스트리오가 20여년을 제작했다고 한다. 날개를 달고 쇠사슬을 든 성모상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최후의 날의 구원과 심판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키토의 성모상(La vargen de Quito)

그러나 참 역사는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이 자리는 원래 잉카의 신전이 있었던 자리라 한다. 스페인 침략자들이 신전을 허문 자리에 이방의 종교 상징물이 세워졌으니... 사랑과 구원의 상징인 성모의 쇠사슬은 원주민에 대한 억압으로 읽혀져 온다. 잉카인들이 지녔던 태양과 자연과 문화에 대한 스페인 침략자들의 승리 선언 같기도 하다.

그 건너편에는 원주민과 메스티조 사이에서 태어난 과야사민의 처절함이 있다. 두 대척점 사이에서 여행자는 "혁명을 혁명한다."라는 화두를 잡고 여정을 재촉한다. / 한국시각 8월 1일 오전 7시 에콰도르 시각 7월 31일 오후 5시 에콰도르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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