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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트레킹> 5. ‘붉은 영웅’ 울란바타르의 애사(哀史)
전북포스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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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0  16: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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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를지 국립공원에서 한시간 정도 초원을 달려 울란바타르 시내로 들어왔다. 울란바타르는 도로는 미비한데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교통 적체가 극심했다. 시내에 들어서면서부터 거북이 운행을 했다.

 

   
자이승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울란바타르 시내. 

이들은 어릴 때부터 두 발로 걷는 데는 익숙치 않다. 사람의 발로는 갈 수가 없으니 걸음마를 배우기 전부터 말을 타게 된 것이다. 도시로 나오면서 자동차가 발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일이 급하니 걸어서 갈께‘라는 우스갯소리가 실감이 났다. 가까스로 도착한 한국 식당에서 먹은 불고기는 정말 달고 맛있었다.

울란타바르는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다. 몽골 전체 인구 300만명의 절반 가까이가 살고 있는 몽골의 오랜 수도다. ‘붉은 영웅’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끌어 낸 수흐바타르를 상징한다. 몽골 중앙에는 수흐바타르 광장이 있다. 수흐바타르 광장은 다음 날 방문할 계획이다. 

   
울란바타르를 가로지르는 토르강에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Tip. * 울란바타르 : 1639년 할하(외몽골)의 투세트칸 곰보도르지(1594-1655)가 시레트 차간 노르 호수 주변에 ‘어르거(궁전)’라는 천막촌을 짓고, 자신의 아들 자나바자르를 위해 궁전을 지어주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5살이었던 자나바자르는 외몽골 지역 라마교 수장으로 선포되었다. 그 곳은 오늘날 몽골국 우부르항가이 아이막(우리의 ‘도’와 같은 지역 단위)에 있다. 이 천막촌은 그 후 오르혼강, 톨강, 셀렌게강 유역을 따라 25여 차례나 이동하면서 지금의 몽골 수도 위치에 정착하고 이흐 후레라 불리게 되었다. 1911년 외몽골이 청나라에서 독립하고 나서 니슬렐 후레(수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몽골 혁명이 완성된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을 선포하는 인민대회에서 혁명 영웅인 수흐바타르를 기념하기 위해‘ 울란바타르’로 이름 붙였다.

식사를 마치고 토르강을 건너 강남으로 들어간다. 먼저 애국지사 대암 이태준선생(1883~1921) 묘역을 참배했다. 그는 의사로서 우리의 독립을 위해 일했으며, 몽골에서 인술을 베풀었다. 몽골인들에게 가장 추앙받는 한국인이다. 울란바토르 강남 노른자위 땅에 세워진 선생의 묘역은 건물 사이에서 아직도 의연하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심이 없으면 어떤 건물이 올라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묘역에는 조선대 의대 13기들이 기념식수한 소나무가 보인다.

 

   
 
   
몽골인들의 영웅인 대암 이태준선생과 그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이태준열사 기념공원.

이태준선생이 교살 당한 1921년은 몽골 사회주의가 독립을 선언하고 국가를 이룬 해이다. 같은 의사로서 선생님을 기리며 머리를 조아리다 보니 일행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꽃다발 하나 준비 못한 나를 자책했다. 다음 몽골 여행 때는 잊지 않고 꽃다발을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Tip. * 이태준선생 : 1883년 경남 함안 태생, 1911년 세브란스 의전 졸업, 1914년 울란바타르로 옮김. 이후 의열단 활동, 몽골 국왕 어의, 독립 자금 운반, 매독 퇴치, 인술 펼침. 1919년 몽골 1급 에덴 오치르 훈장을 받음. 1921년 러시아 백군에 교살 당함.

 

이태준선생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몽골의 매독을 퇴치했다고 한다. 몽골의 라마교는 티벳불교인데, 청나라가 몽골을 비하하여 몽고와 라마교라 불렀다고 한다. 몽골의 티벳불교는 장자를 제외하곤 모두 출가를 해야 해서 외몽골의 인구 증가는 더뎌질 수밖에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청나라는 티벳불교의 초야권을 악용해 승려들에게 창녀를 접근시켜 승려들을 모두 매독에 걸리게 만들었다.

몽골의 신부들은 첫날밤을 승려들과 자야 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는 어둠을 뚫고 밝음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하나의 거룩한 의식이라고 한다. 결국 승려들이 매독에 걸리고, 신부들과 잠자리를 하면서 급속히 퍼져나갔다고 한다. 청나라의 술책이 성공하면서 몽골은 남녀와 신생아(선천매독)들까지 매독에 걸려 1900년대 초반 외몽골 인구는 몇 십만에 불과했다고 한다.

 

   
자이승 승전탑으로 오르는 270개의 계단.

울란바토르 남쪽 벅드(보그드)산 정상에 있는 자이승 전승 기념탑은 몽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데이트 코스라고 한다. 이날도 신혼부부를 태운 꽃장식 차량들이 여럿 보인다. 몽골 사람들은 주말에 관계없이 승려가 정해주는 날짜에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자이승 승전탑은 바위산 정상에 있다. 270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다.

Tip. * 자이승 승전 기념탑 : 1938년과 1945년 두 차례 일본군을 상대로 몽러 연합군이 승리하여 그때의 전쟁 영웅과 전사자를 기념하여 세웠다. 1971년 몽골 사회주의 혁명 50주년 기념으로 소련의 기증으로 세워졌다. 환형 구조물 내부는 모자이크로 몽러 연합군의 전투 모습과 독립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외부는 부조물로 몽골의 혁명 영웅들의 얼굴이 보인다. 몽골 공산 혁명의 영웅 수흐바타르의 얼굴도 보인다.

 

   
자이승 전망대 내부 부조.

자이승 승전탑에 오르면 사방이 확 트여서 울란바토르 시내 전체가 다 조망된다. 울란바타르 주택의 절반이 게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 ‘샌베노(안녕!)’ 하니 ‘샌베노’라며 수줍은 미소로 화답한다. 티없이 맑은 이들에게서 몽골의 희망을 본다. 사람이 귀한 만큼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나라. 퇴근길로 꽉 막힌 차의 밀림을 헤치고, 호텔에 짐을 풀었다. 호텔 내 전신 마사지는 피곤한 몸을 풀어 주기에 충분했다. 첫 날 마트에서 샀던 몽골 보드카로 몽골 여행을 자축한다. / 손완정 편집위원  

 

   
아래에서 올려단 본 자이승 승전 기념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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