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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14. 미리 짜놓은 각본 6
이병초 시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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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7  14: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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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노규는 등을 벽에 간신히 기대고 있다. 얼굴은 노오랗다. 밥은 잘 먹냐고 묻자 띵띵 부어오른 제 배를 가리키며 수돗물 냄새가 나서 보리차도 못 넘긴다고 한다.

이 고비만 넘기면 격포에 가자, 해삼과 낙지를 안주 삼아서 채석강의 풍광을 소주에 타먹고 오자, 몇 번을 얼렀지만 녀석은 창문에 휘감기는 바람소리가 더 좋은가 보다.

“이 세상은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도록 누가 짜놓은 것 같다.”라고 뜬금없이 말한 세상을, 순전히 깡으로 버티다가 암세포 핑계를 대고 목숨을 벗어버리는 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녀석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자꾸만 창 밖으로 눈길을 돌린다. 사람 얼굴이 저렇게까지 누래질 수도 있는 것일까, 내 눈을 의심하는 사이 녀석은 스르르 잠이 든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노규의 몸에 세상이 뭐라고 적혔는지도. 하지만 경제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은 정비례한다고 떠들어대는 새빨간 거짓말 속에서 절망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경제가 발전되면 될수록 발전된 경제사회에 맞춰 살아야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미치게 바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을 터이다.

 

   
학창 시절의 병초와 박노규. 

누군가는 노동을 하는 신성한 현장을 ‘생활전선’이라고 했다. 전선戰線이란 집단적 살육현장을 지칭하는 용어인데도 말이다. 언제부터 이 끔찍한 말이 거리낌 없이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 속에는 동료가 동료를 경쟁자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깊숙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최소한의 투자로 대박 나고 싶은 - 대박을 꿈꾸는 동업자들이 경쟁 상대가 되어 이들이 쪽박을 차버려야 자신이 대박날 수 있는, 이따위 것을 ‘경제’라 하고 ‘삶’이라고 내세우는 몰상식을 깡그리 뭉개버릴 수는 없냐고 링거액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소통이 두절되었으므로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이란 헛발질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링거액이 반짝인다. 나눔과 베품이 없는 자본주의는 인간 소외를 파먹고 산다고 링거액이 눈알을 빛내는 것 같다. 절약이 미덕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인 사회. 문화산업이란 게 끝도 없이 만들어대는 신제품들을 “개가 제 좆 물 듯” 결국 또 사줄 수밖에 없는 풍토.

월급 받은 만큼 쓰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 아직 안 번 것조차 신용카드 긁어서 쓰라고 강요하는 것들과, 야만성만 남은 경제현실 여기에 길들여진 노예근성까지를 벗어버리느라고 노규는 저에게 주어진 이승의 시간을 링거에 걸어놨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족속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각본을 짜놨는지, 자본과 정보로 구획해 놓은 - 내 삶의 시간표를 미리 짜놓고 악마의 맷돌 속으로 들이미는 그 빌어먹을 종자도 알 길이 없다.

적敵은 명백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를 삶의 정면에 놓고 고민하는 모두의 ‘나’보다는 피차 딴 데만 보는, 파편화 된 ‘개인’이 더 잘 보인다. 피를 쥐어짜서라도 보험이며 연금을 들어놓지 않으면 미래에 거지로 살 수밖에 없다고 따발총처럼 갈겨대는 경제공포에 휘말린 수많은 ‘나’가 서글프게 다가온다.

 

  이런 세상을, 노규가 놔두고 떠날 이 세상을 나는 살아야 한다. 노동해방을 위해서, 누군가가 미리 짜놓은 각본을 갈갈이 찢어버리기 위해서 녀석이 어떤 조직에 몸담았었는지, 어떤 이유로 그 꿈이 좌절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투쟁 현장에서 체포되어 고문 받고 옥살이를 마친 뒤 소식을 끊은 또 다른 노규들. 문명 세상에 보상받기는 커녕 동료들에게조차 소외되어 어딘가에서 신음소리처럼 살고 있을, 어쩌면 폐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무수한 노규들의 목쉰 소리가 들리는 세상을 나는 견디어야 한다.

 

   
스물 여덟 청춘의 이병초와 김용복, 박노규(왼쪽부터).

자본주의가 선물한 이 피눈물을 어금니 뒤에 감추고 목소리를 더 낮추는 불특정 다수의 동료들이 건재하다는 것도 나는 잊어서는 안 된다. 제 잇속에 물린 개개의 ‘나’가 분별력 있는 ‘우리’로 회복되지 않는 한 가난했을지라도 살가웠던 추억은 절대로 아름다워지지 않고 삶의 형태 또한 더 참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인지 노규의 숨소리가 고르지 못하다. 자신이 삶을 평가하려드는 이승의 잣대를 부러뜨리고 싶은 모양이다.

나도 녀석의 고르지 못한 숨소리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저승이란 데 가서도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버티었던 2, 3년을 잊지 않기를, 내가 본 간암 말기의 사진이 카메라가 오작동 되어 찍힌 것이기를 바란다.

고3 때 왜 공장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고, 왜 세월을 작파해 버렸으며, 어쩌자고 육교에서 뛰어내렸는지를...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 세태와 - 꿈에 쫓기듯 일방적으로 삶의 뒷전에 몰려 일방적으로 죽어갈 수밖에 없는 지금의 심정까지도 부디 잊지 않기를 희망한다.

또한 옥황상제가 그간 삶의 노고를 참작하여 인간으로 환생시켜주겠다고 해와도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길 바란다.  <다음편에 계속>

 

   
글쓴이 / 이병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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