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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14. 미리 짜놓은 각본 3
이병초 시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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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0  16: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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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간이 얼추 점심 새때는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오전 10시를 조금 넘어섰을 것이다. 이 시각엔 논밭에 일하는 어른들이 샛거리를 먹었다. 우리도 제법 먼 길을 왔으니,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때였으니 그 말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산의 중간쯤은 올라온 것 같다. 등 뒤에서는 계속 깽매기소리 장고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들려왔다. 박자가 어설프게 느린 것 같기도 했지만 바쁘게 돌아가기도 했다. 한 가락을 잡아채기도 전에 메아리로 멀어져가고 다시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통에 그 가락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리는 깽매기소리와 장고소리에 갇혀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도 어딘가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용천에서 흘러내린 물이 산의 이 계곡 저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과 합쳐지며 작은 바위와 주먹돌 왕돌 들이 옹기종기 앉은 굽이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무 밑에 가방을 던져두고 우리는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였다. 유월 햇살은 따가웠다. 계곡물에 비쳐져 반사되는 햇살은 눈에 시었다. 노규는 뒤따라오는 나를 향해 씽긋 웃고는 도시락 뚜껑을 가져오랬다. 손엔 벌써 가재 한 마리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도시락 뚜껑에 담기자마자 가재들은 금세 도망치기 일쑤였다. 기껏 잡아놓은 것을 허망하게 놓치는 나를 철호는 나무라지 않았다. 하지만 내 실수를 더는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녀석은 가재를 잡자마자 가재의 목을 비틀어버렸다.

 

   
고3 때. 박재선과 이병초, 김성호(왼쪽부터)

가재는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해졌다. 흙 빛깔로 꼬물거리는 가재는 돌 밑에 있었다. 나는 녀석의 몸과 함께 움직였다. 허리를 굽히면 나도 덩달아서 허리를 굽혔고, 주먹돌 왕돌을 들출 때는 나도 뒤에서 헛심을 썼다.

녀석은 아무 돌이나 들추지 않았다. 그러나 녀석이 들추는 주먹돌 왕돌 밑에는 가재가 도망도 못 가고 뒨정거렸다. 얕은 또랑에 가까운 계곡을 몇 번 훑지도 않았는데 도시락 뚜껑은 그들막해졌다.

 

  까먹고 난 도시락에 물이 끓고 야울야울 불꽃이 이글거렸다. 그늘 속인데도 우리들 이마에도 땅이 송글송글 맺혔다. 노규는 목을 비틀어 한숨 재워 놓은 가재를 바라보더니 물이 펄펄 끓는 도시락에 쏟았다. 흙 빛깔이던 가재는 순식간에 빨갛게 변해버리고 대번에 군침이 돌았다.

거품 물고 끓어 넘치던 물이 쫄아 붙고 있었다. 이마에서 땀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빨갛게 변해버린 가재의 몸띵이들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인자 먹어도 되냐? 잉? 인자 걍 먹장게!” 아무리 보채도 녀석은 꿈쩍도 안 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듯 더 기다리라는 듯 고개 돌리고 딴전을 피웠다. 도시락 속이 숯같이 검어지자 고시래! 이러면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우리는 젓가락에 찍힌 가재를 입천장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먹어댔다.

 

  용천에서 풍장 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집채보다 큰 바위 밑에 촛불을 켰으리라. 흰옷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리라. 점쟁이 할매는 깽매기를 잡고 뭐라고 주문을 외고 있을 터. 할매 앞 저 안쪽에 켜진 촛불, 내 손 안 닿는 바위 밑에 켜진 촛불이 구렁이 입 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으리라.

깽매기소리 장고소리가 빨라질수록 흰옷 입은 아줌마들의 손 비비는 속도도 빨라질 것이고, 참아왔던 울음소리가 애통절통해질 것이다. 누가 죽었든, 어떤 사연이 목에 마치든 그것은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이산 저산에서 뻐꾹새가 울고, 할매의 주문 소리에 굿상 차린 아줌마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리라. 그 정신없는 틈을 타고 떡이며 밤 대추가 감쪽같이 사라지리라.

그런 걸 훔쳐 먹어도 코 밑 명주털이 거뭇해졌어도 노규네 집이나 우리집이나 사는 것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머니들 키는 더 작아지는 것 같았고 아버지들 말수는 점점 더 적어졌다.

어머니는 길쭉한 애호박을 중앙시장에서 팔았다. 부추나 깻잎, 가지도 내다 팔았다. 그러나 시장 바닥에 보자기 깔고 늘어놓은 이것들은 순경 발길질에 사정없어 걷어차이기 일쑤였다. 순경은 중앙시장의 상권을 쥐고 있다는 듯 방망이 빼들고 포악을 떨었다.

“왜 이러냐, 사람이 먹는 것을 왜 드런녀르 발로 걷어차냐, 너는 새끼도 안 키우냐...? 이 빌어먹을 화상아!”

이리저리 뒹구는 애호박을 들어서 순경 발길 앞에 박살내며, 다발지어 묶어간 부추를 지근지근 밟으며 악쓰던 어머니. 순경 턱밑까지 다가가서 사납게 삿대질해대던 어머니. 다발 풀어진 부추 앞에서 넋이 달아난 사람처럼 한 곳만 바라보던 내 어머니.

간암에 걸린 노규를 병실에 놔두고 용천골짝에 혼자 와서 오늘도 나는 듣는다. 중3 수업 중인데도 내 이름을 부르러 오던 서무과 직원의 슬리퍼 끄는 소리를. 며칠까지 수업료 안 내면 제적이라고 마이크에 대고 내 이름을 부르던 교감선생님의 목소리를.

그때 나는 외로웠던가.

세상이 아무리 나를 내치더라도 끝끝내 버틸 작정이었던가. <다음편에 계속>

 

   
이병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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