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45일 동안을 미국에서 보내고 돌아온 아버지는 삶의 의욕이 강해졌다. 몸은 더 안 좋아 보이는데 뉴저지를 얘기할 땐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동생들이 동부며 서부 유명한 관광지에 모시고 다닌 것인데 아버지는 이 여행을 맘껏 즐긴 것 같았다. 뉴욕의 퀸즈 어딘가에서 세탁소를 한다는 친구와 소주도 한 잔 했다고 한다. 

여름휴가를 받아 내려온 나에게 당신은 광주에 가자고 했다. 약을 일절 쓰지 말라고 했던 당신은 광주광역시 어딘가에 암환자를 살리는 생식요법이 있으니 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약도 아닌 생식이란 것을, 내 한 달치 월급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던 풀가루 같은 것을 드신 지 보름 만에 당신은, 당신 자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향년 예순 넷. 돌아가신 직후나 몇 달 간은 아버지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나는 생활했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고 나는 바빴다. 하루에 14시간도 강의를 했던 매운 시절이었다. 

반 년 정도가 더 지나간 뒤 신촌 현대백화점 근처 추어탕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아버지 생각이 났다. 느닷없이 눈물이 펑펑펑 쏟아졌다. 왜 아버지 생각이 났는지 눈물이 왜 쏟아지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손님이 많은 저녁 시간이었는데 소리도 못 내고 추어탕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써빙하는 분들이, 식당에 드나드는 손님들이 나를 바라보든 말든 눈물이 펑펑펑펑 쏟아졌다. 

이병초 시인의 아버지

미국에 다녀온 후 얼마나 적적했는지 여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 다시 미국으로 가면 안 되냐.”라고 물었다는 아버지. 임종 직전에야 달려온 나를 바라보고 마음 놓던 그 눈빛, 죽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를 눈으로 불러서 ‘안락사’시키라던 그 쉰 목소리가 내 불효를 호출해내고 있었다.

  겉으로는 정중했지만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어디 한 군데 막힘없이 시원시원했던, 마음에 들지 않는 술자리는 그 자리에서 깨버렸다는 당신. 하지만 꾸리는 일마다 때려 엎었으니 어린 눈에도 아버지가 미더워 보일 리 없었다. 

재판에 져도 좋으니 다른 집 아버지처럼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랐다. 점심 장사를 해서 살림을 꾸리는 어머니의 피곤과 우리들 학비와 입성과 먹을매 때문에 고민하는 아버지이기를 바랐다. 재판을 이기고 난 뒤 근동에서 당당한 사람으로 회자膾炙되던 것처럼 다시 집칸을 장만한 가장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의 운이 다한 것인지도 몰랐다. 재판이 끝나자마자 못통을 차고 목수 일을 나갔던 당신은 자주 앓았고 몸이 아픈 것과 관계없이 외상술값이 엄청나서 집안사람을 당황케 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못통을 벗고 이런저런 일을 시작했지만 아무것도 당신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었다. 민사재판을 이긴 뒤에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살리라 기대했던 내 바람과 학창시절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나는 학비를 벌어야 했고 바로 밑의 여동생과 남동생은 대학의 ‘대’자도 꺼낼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효자동 마전馬田, 전주 이 씨 집안 어른들의 제의를 받아들여 거기 끝자락에 집을 앉혔고 셋방살이를 끝냈다. 하지만 그때는 일에서 손을 놓아야 할 만큼 시간이 지나가버린 뒤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외상값은 여전히 어머니 속을 썩였다. 

당신 젊은 날의 어떤 지점이 가산을 탕진한 오늘의 당신을 붙잡고 안 놔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외상술값 갚아주면 어느새 또 장부 가득 외상값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호기는 여전했다.

  “그까짓 돈 들어올 때도 있고 나갈 때도 있는 법. 지금 돈이 없다고 해서 영원히 없이 사는 것은 아니다, 기죽을 것 없다.”

  그 목소리에 기대어 나는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 미안해, 미안해.” 이 말만 내뱉었다. 

세상에 의연했고 남들에게 다정다감했어도 나에게만큼은 칼끝같이 엄했던 사람. 여수로 가출했다 돌아온 중3짜리 아들에게 화도 못 내고 어이없이 바라보던 눈길. 고등학교를 때려치겠다고 책 보따리를 싸서 돌아온 내 행동을 노여워하며 닥치는 대로 살림을 패대기쳤던 젊은 아버지. 꿈이 정말로 ‘카수’냐고 물어오던 담뱃내 깊게 밴 체취.

이병초 시인의 가족 사진.

가족들 몰래 친구며 후배들 뒤를 봐주었다지만 당신은 정작 무일푼이었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기다리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민사재판이 끝난 뒤 보란 듯이 집안을 일으키고 싶었겠지만,의욕만 있었지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을 아버지는 뼈저리게 확인했는지도 몰랐다. 

남편으로서 아비로서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폐월廢月, 그 울분을 술로 풀 수밖에 없었을 외상값, 당신의 욕망을 채울 길 없었을 강박이 그때서야 나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버지께 서운하기만 했지, 뭘 바라기만 했지 뭐 한 개 제대로 해드린 적 없는 날들이 가슴을 후벼팠다. 아버지 삶이 이게 뭐냐고, 나는 아버지처럼 절대로 살지 않겠다고 골백번도 더 다짐했어도 당신 품성의 적잖은 부분을 그대로 닮아버린 나 또한 외롭게 죽으리라. 그렇게 죄를 씻으리라, 당신께 용서를 구하듯 나는 펑펑펑 눈물을 쏟았다.

  시간은 내 생활의 우여곡절을 물고 십수 년을 또 지나가 버렸다. 그러는 동안 당신의 집은 뙈를 두어 번 새로 입기도 했다. 나 또한 장부丈夫의 시절을 지나 오후 두 시의 햇살이 되었다. 

신발장 문을 열고 헌 것이 다 되어버린 구두를 꺼내어 닦는다. 김대중 대통령이 신었던 구두하고 똑같은 것이니 밑창을 덧대고 굽에 반달을 달아서 신으라셨던 구두. 당신 딸내미들이 비싸게 사드렸다는 구두.

오늘은 이 구두를 들고 아버지 산소에 가야겠다. 차마 신을 수 없었던 이 구두를 아버지 집 근처에서 태우며 앞으로도 똥꼬에 힘주고 오줌발 끝까지 털겠다고 인사드려야겠다. 

당신이 남긴 세상은 여전히 돈으로 사람의 값을 매기는,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는 난장판 속이고 그러므로 물길 흐르는 대로 살 수 없는 자식의 생生을 앞으로도 또렷하게 지켜보시라고 술 한 잔 올려야 하리라. 

이승의 길이 안 닿는 거기에서도 물결 위에 꽃잎 떠가듯 술 한잔하면서 ‘낙화유수’를 부르시냐고, 한 가락 했던 시절을 양식 삼은 당신 패거리들도 안녕하시냐고 두루두루 안부를 여쭈리라. <다음편에 계속>

이병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