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worl Seok. 한국이름 정지월. 김제 출신으로 전북대를 졸업했다. 현재는 미국 애틀랜타에 살고 있다.

13년만의 외출-전주원정기(2)

굿모닝 전주 !

단잠에서 깨어 민박주인이자 친구인 명순이가 내어준 차와 과일, 고구마를 - 정말 한옥마을스러운 메뉴이지 않은가?- 조찬으로 먹고 오목대에 올라 굽어다보니 나의 전주도 아침을 맞아 깨어나고 있다.

채도가 조금씩 다른 회색 기와지붕들이 머리를 맞댄 채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그 뒤론 병풍처럼, 나즈막하나마 빌딩들이 둘러서 스카이 라인을 형성하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우와! 한옥들 보존 안했으면 어쩔 뻔?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새 것이야 언제든 지을 수 있다지만 역사는 공들여 지키지 않으면 자취가 없다. 아무리 상품적, 의도적 관광개발이라 쓴소리를 듣는다 해도 역사를 말로만, 책으로만 설명하기보다는 눈으로 한번 보여주는 게 백번 효과적이니 무조건 실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아직 이른데도 가게들도 문을 열었고 많은 학생들로 벌써 북적이기 시작한다. 한지공방에 들러 한지만드는 과정도 보고 예쁜 편지봉투랑 부채랑 선물용으로 잔뜩 산다. 오늘도 양손이 고생하지 싶다.

대학동창인 언론인 강모씨가 약속대로 우리 과체중 삼총사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콩나물국밥집으로 안내한다. 남부시장안의 "ㅇㅇㅈ". 벽을 보니 최불암씨 벌써 다녀가셨다! 전원 국물한방울 안남기고 흡입한 다음, 건어물집과 젓갈집에 들러 너무 착한 가격에 감격하며 또 바리 바리 쟁인다.

이 짐들을 서울로, 미국으로 어찌 가져갈지는 나중 걱정이다. '선구입 후고민 ' 아줌마 정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아직도 부른 배를 안고 우리는, 놀라는 강모씨의 인도 하에 끝내준다는 어느 팥죽집으로 다시 길을 떠난다.

세그릇 이상을 시켜야만 준다는 '양푼이 비빔밥'을 탐하여 엄청난 양의 팥죽을 시켜 앞에두고 비빔밥을 올킬한 후 다시 팥죽 한그릇을 디저트로 달게 나눈 뒤 나머지는 과감히 테이크 아웃을 한다. 후에 이 팥죽들은 상경하여 가족들과 성황리에 나누게 된다.

숙소로 돌아와 올 때보다 몇 배로 불어난 짐들을 재정비하고, 내 친구들은 "아직도 못먹은 게 너무 많은데... 전주에 이렇게 볼 게 많을 줄은..." 짧은 일정을 후회하며 아쉬움속에 먼저 떠난다.

친구들은 말한다. 처음 전주에 내려 택시에 탔을때 너무 뚝뚝한 기사아저씨땜에 놀랐으나 얘기하다보니 너무 친절해지셨다고... 한지 가게 아저씨도 무서웠는데 한참 사다 보니 드디어 말문을 여시더라고... 그리고 내 전주 친구들은 너무 너무 착하고 순하다고...

나는 안다. 내고향 사람들이 얼마나 순박하고 정이 깊은지... 하지만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내 친구들 같은 관광객들이 과연 포장지를 열고 그안에 숨겨진 깜짝 선물을 알아볼 시간이 있을까? 그저 거친 포장지에 놀라 그안의 내용물에까지 관심이 없어지게 되진 않을지?

예전에 Sprite 이라는 미국 탄산음료 광고 카피가 "Image is everything!" 이었다. 참 가볍다 생각하면서도 계속 곱씹게 되는 문구였다. 그리고 살수록 느끼는 것은 그말이 옳다는 것이다. 나의 촌놈기질은 항상 속이, 내용이 중요하다고 믿게 했고, 그래서 나는 친구나 남편감도 매너가 좋거나 겉으로 잘해주는 사람보다는 속이 진국인 사람이 더 좋았다. 그런데 그 속까지 도달하기 전에 지치고 서운하기 일쑤였다.

이해는 멀고 오해는 가깝다. 특히 전라도 사람에 대한 이유없는 오해는 더더욱 많다. 여기 미국에서 조차.... 나는 북촌보다도, 안동 하회마을보다도 훨씬 낫다는 전주 한옥마을 투어가 오래 오래 장수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한번 왔던 사람들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물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해도 사람을 끄는 힘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꽃보다, 한옥보다 아름답다.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는 내 고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도 이 곳 에틀랜타에서 친구들은 말한다. 전주에서 하룻밤을 지낸 이들이다. 전주가 너무 좋았다고, 다시 꼭 가고 싶다고... 그 마음의 중심엔 너무도 다정한 내 전주 친구들과, 끊임없이 내 고향과의 중재를 일삼았던 나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땡큐, 고맙고 아름다운 내 오랜 친구들이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