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worl Seok은 현재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교민이다. 김제 출신으로 성심여고와 전북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이름은  정지월.

오랫만에, 실로 오랫만에 고국에 다녀왔다. 살던 터를 바꾸느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 세살터울인 아이 둘 대학 진학 뒷바라지 하느라 항상 미뤄두었던 고국 방문.

마침내 작은 아이마저 떠나는 날, 미대륙을 가로질러 동남부 Atlanta에서 서남부 Los Angeles까지 날아 딸아이를 기숙사에 들여보내고, 그날밤 비행기로 다시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오던 날은 가히 기억하고 기념할 만한 날이었다. 이번엔 가야겠다고, 기어이 가야겠다고 선언하는 내게 "나는? 내 일은 ... ?" 하며 망연자실하던 남편에게 13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을 들이대며, 귀막고 눈감고 행한 귀국길이기 때문이다.

항상 내 시간은 가족의 시간으로 나눠쓰고, 내 입맛마저도 남편에게 양보하며, 나름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기특한 나에게 주는 포상휴가였다. 집 떠난지 36시간만에 도착한 인천공항은 새벽안개에 싸여 풍경이 보이지도 않는다. '전에 올 땐 김포공항이었는데...' 13년 사이에 한국의 국제공항이 바뀌었다. 십대들에겐 전설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사이 친정도 전주에서 서울로 바뀌었다. 늙고 외로운 부모님이 자식 곁으로 옮기신 때문이다. 덕분에 전주까지 다시 가야 하는 여정은 피했지만 처음보는 낯선집에 한달 둥지를 틀어야 하다니... 2주를 가족들과 여행도 하고, 그사이 못보았던 친지,친구들과 조우도 하며, 몰라보게 달라진 한국과 ice breaking time(친숙기)을 가진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귀향! 말로만 듣던 KTX를 타고 전주역에 도착했다. 목포행 열차는 전주역에서 거의 다 비워졌다. 마중 나온 친구의 차로 움직이는데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다! 여긴 어디? 난 누구? 내 구역이었던 전주에서조차 외국인 관광객 코스프레를 해야할 참이다. 내가 그들보다 나은 게 있다면 한국말을 잘 한다는거...

내가 3년을 다녔던 모교 성심여고 부근에 있던 하숙집들은 이제 '한옥마을'이라는 고유명사를 달고 장기숙박이 아닌 단기숙박을 친다. 낡음과 불편을 전통과 신식 화장실로 개비한 뒤 나비가 되어 사람들을 유인한다.

가히 미래의 주거 형태로 한옥택을 고려해 볼만큼 고혹적이다! 벌써 친구도 시류를 타고 자택을 민박집으로 바꿔 놓은터라 그곳에 머무르기로 한다. 참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무엇보다 고슬고슬한 하얀 이부자리가 제일 좋다!

이틀 후 미국에서 모국 방문중인 두 친구들이 전주에 도착한다. 애틀란타에 사는 한국 친구들이다. 그들에게는 전주가 생전 처음이다. 한옥마을이 관광상품이 안되었다면 아예 생각조차 안했을 전주행이었으리라. 오자마자 짐을 풀고 한정식을 한상 거하게 받고, 셋이서 배부른 고양이들처럼 골목길을 어슬렁거린다. 행여 품절될까봐 미리 사둔 PNB - 예전엔 서울 친구들에게 얘기하기도 촌스럽던 그 이름 풍년제과 쇼핑백을 하나씩 들고말이다. 그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이제 온세상이 다 안다.

내 고교 옆마당이었던 '경기전'도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손님들을 맞는다. 학교 다닐 땐 공주인가가 살고 계셔서 바깥문만 열어놓아 비밀의 화원 분위기였는데... 전시관에 들어가니 이씨왕조를 숭상하는 분위기는 반골 성향인 호남 정서와 맞서는 듯해서 또 한번 충격이다. 친구들에겐 내색 안했지만 배금주의에 스러져 가는 전주의 빛을 상징하는 듯해서 씁쓸하다. 어쩌랴! 이왕 만든 거 보여줄 건 있어야겠으니 할아버지 속고쟁이라도 들고 나올 판이다.

길거리에 나서 국적도 알 수없는 주전부리들을 위에 켜켜이 쌓은뒤 '최명희 문학관' '판소리 기념관'등등 무수한 체험관과 교육관들을 들르고 또 지나친다. 마침내 '술교육관' 간판을 본 친구왈 "여긴 술도 교육시켜?" 나 왈 "글쎄 전주가 원래 교육의 도시다 보니 모든 걸 다 가르칠라 그러네..."

그리고 향반의 기본 정서 위에 갑자기 서비스업에 떨어져 버린(?) 전주시민들은 준비되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서비스의 정수를 보여주고야 만다. 그리하여 길거리 젊은층 빼고는 거의 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태도로 일관해 전주탐방기엔 예외없이 서비스에 대한 악평이 등장하게 만든다. 근데 왜 '서비스 교육관'은 없는거지...? @@ 정말 한 철 시끄러운 메뚜기로 끝나고 싶은걸까?

숙소에 들러 바리바리 산 짐들을 부려놓고 새로운 먹거리에 도전하기 위해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그리고 삼천동 막걸리타운으로! 순전히 최불암씨의 입김으로 선택한 모 주점. 예상보다 한산해서 놀랐다. 술 못먹는 여자 셋이 한 주전자 시켜놓고 옆테이블의, 역시 미국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에게 술을 억지로 나눠주고 안주 욕심에 한주전자를 더 시키니 주인아줌마 왈 "한 주전자 더 시키면 게딱지에 밥을 비벼먹을 수 있는디.."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신다.

물론 물가가 많이 올랐다지만 막걸리는 역시 싼 맛에... 특히 전주 막걸리는 가격 대비 반찬수로 승부를 보는 건데 이리 올리다간 승부수를 잃는 게 아닌지....사서 걱정해본다. 첫주전자값은 괜찮은데 둘째부터는 좀 내려도 될 듯하다. 이 가격이면 전국 어디에서나 그정도 �蠻寧� 깔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한정식을 먹을때도 느낀 점이지만 서울에서 먹었던 한정식과 맛도 가격도 별 차이가 없다. 전주만의 맛을 느낄수 없다면 뭐 굳이 전주까지 와서 먹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외지 입맛에 아부하지 않고, 전주 고유의 맛과 색깔을 지키는게 장수의 비결이 되리라고 믿는다.

지치고 포만해진 중노구(中老軀)를 뉘우니 잠이 저절로 찾아든다. 역시 갱년기 불면증도 피곤은 못이긴다. 서로의 릴레이 코골이를 BGM으로 깔고 우리 셋은 간만에 푹 잤다. 아주 푸~욱 . 내겐 13년만에 맛보는 고향에서의 꿀잠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