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있던 지난 10일, 아침 일찍 전주 건지산 산행에 나섰다. 오전 11시 선고시간에 맞춰 텔레비전마다 특별방송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방송을 보면서 기다리는 것이 너무 지루할 것 같아 건지산 산행을 떠난 것이다.

집사람은 헌재심판 생방송을 꼭 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집사람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후보를 찍은 사람이다. 이번 탄핵정국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느끼는 허탈감도 적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었다.

박장우 전북포스트 주필

건지산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헌재의 선고가 막 끝나 있었다. 집사람은 “세기적인 드라마를 안보고 어디 갔다 왔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고결과가 궁금해 “어떻게 됐느냐”고 묻자 집사람은 “전원일치 인용이다”며 “헌재의 인용 선고 순간 눈물이 날 뻔 했다” 고 말했다.

헌재에서 박근혜대통령 파면이 결정되던 날, 탄핵반대 집회에 참석했던 고령자 세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우리는 왜 헌재의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누구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고 누구는 목숨을 잃을 정도로 분노해야 하는 가 싶다.

박근혜 탄핵정국이 불러온 국민적 갈등과 분열인 것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법조계도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자고 했지만 탄핵반대측 사람들은 헌재 결정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국민적 갈등과 분열 양상은 당분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곧바로 대통령 선거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박근혜 전대통령도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초반에는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던 국민적 목소리가 절대 우세했으나 후반에는 진보와 보수간 세력 싸움으로 변질되는 양상이 되기도 했다. 탄핵반대 측에서는 그동안 문재인 전 더민주당 대표를 집중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었다.

박근혜 탄핵정국이 장기화되면서 국민적 갈등과 분열로 사회적 피해가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 피해액이 10조원에 이른다는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한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탄핵정국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들이 경험한 정치적, 법치적 자산은 수치적으로 계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정부 구성과 운영 기간이 70년에 이르지만 제대로 된 민주주의 또는 법치주의를 경험할 만한 기회가 없다시피 했는데 이번 탄핵정국이 그 귀중한 시간을 제공했다는 설명이었다.

국민들은 이번 탄핵정국을 겪으면서 민주주의나 법치주의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절감해야 했다. 특히 탄핵을 반대했던 나이 많은 사람들은 법적 절차에 따라 최고 권력자를 파면하는 일에 대해 거부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군대여 나오라’는 표어를 가슴에 달고 시위에 나섰을까 싶다.

탄핵 찬성측 사람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시각으로는 막무가내로 보이는 탄핵 반대측 인사들의 언행에 대해서도 참고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고통과 인내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밑바탕이 됐다는 분석인 것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오늘의 정치제도를 갖추는데 수 백년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쟁취한 것인 반면 우리나라는 서양식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공짜로 빌려 사용해오다 이번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요즘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보면 마치 구한말 같다는 생각이다. 구한말에는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힘겨루기를 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이 한판 붙은 형세다. 여기에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개발까지 덧붙여져 좀처럼 해결 기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밀어닥친 경제적 위기도 보통이 아니다. 내부적 구조조정은 물론이고 미국의 통상압력도 갈수록 거세질 전망이다.

다음 대통령도 보통 어려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에서 보여준 국민적 에너지를 국가적 난국을 뚫고 나가는데 활용할 수 있도록 국민통합이 필요한 때다. / 박장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