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살고 있는 딸애는 추석명절에 기차를 타고 왔는데 에피소드가 없지 않았었나 보다. 추석 전날 열차를 타기 위해 수원역에 나갔고 정해진 시각에 플랫폼에 서 있는 열차를 탔는데 잘못된 열차여서 천안역에서 예약된 열차로 갈아타느라 고생했다는 이야기였다.

딸애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날 서울을 출발한 새마을호에 타는 사람들이 많아 수원역에 5분 늦게 도착하면서 빚어진 촌극이었던 것 같았다. 딸애가 예약한 열차는 전주를 지나는 무궁화호 열차였는데 같은 방향의 새마을호 열차가 늦게 도착하면서 많은 승객들이 혼란을 겪었다는 것이다.

박장우 논설위원.

명절에는 열차가 단연 인기다. 고속도로. 국도 가릴 것 없이 차량들이 폭주, 귀성시간이 평소보다 두배 가까이 걸리지만 열차는 제시간에 운행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열차도 조금씩은 늦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마 등급이 가장 낮은 보통 열차는 연착시간도 상당하지 않을까 싶다.

국토부는 지난 6월, 오는 2025년까지의 제 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 호남권 지자체들이 요구했던 주요 사업들이 모두 누락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북도가 건의한 군산 대야에서 전남 목포까지의 철도망과 경북 김천에서 전주와 새만금을 잇는 김천-전주선은 당장 건설에 들어가더라도 괜찮을 듯 싶은 구상인데도 계획에서 빠졌다. 이에 대해 도내 정가에서는 현 정부의 호남홀대 심리가 그대로 반영됐다는 비난도 없지 않았었다.

그리고 가장 빠른 열차인 KTX는 아직도 전라선에서는 불완전한 상태다. 기존 철로를 개량해서 KTX가 운행되고 있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운행횟수가 절대 부족, 지역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북도의회를 비롯한 호남정치권에서 정부에 KTX 증편을 강력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 60년대부터 세계 최초로 초고속 철도인 시속 300km 신간센을 운행하고 있다. 중국 주은래 수상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일본 정부는 주은래 수상을 신간센에 탑승시켜 중국 정부의 기를 꺾어보려고 했었다고 한다.

주은래 수상은 그 때 “이렇게 빨리 가면 뭐 합니까?”하더라는 이야기가 전해졌었다. 아마 당시 중국의 입장에서는 열차의 속도는 그리 중요한 개념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중국도 지금은 초고속 철도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주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경부선을 달리던 KTX가 일시적으로 서행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었다. 지진에 대비해서 건설된 고속철도지만 지진으로 무슨 이상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대비하는 차원에서 서서히 나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인류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KTX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현장인 셈이다.

이번 추석명절의 최대 화두는 단연 지진이었다. 인천에서 귀성한 사람도, 목포에서 올라온 사람도, 강릉에서 내려온 사람도 모두 지진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자신들의 몸으로 직접 느꼈던 땅 떨림으로 모두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였다.

경주 지진은 내년 대선을 비롯 북핵, 사드배치 그리고 조선업 구조조정이니 한진해운이니 하는 국내외 현안을 모두 잠잠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지진 소식만 없었다면 한창 이야기 꽃을 피웠을 법한 화두 거리가 많았지만 국민 모두 자신들이 직접 겪었던 경험 앞에서는 관심 밖의 일이 된 듯싶었다.

9월18일은 철도의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제물포-노량진)이 개통된 1899년 9월18일에서 유래됐다.

철도가 건설돼 열차가 달리기 시작할 당시, 국민들의 눈에는 상당히 경이로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시인 최남선은〈철도가〉를 지어 노래할 정도였다. 그리고 11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시속 300km를 자랑하는 KTX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주은래 수상이 무시하고 싶어 했던 고속열차의 속도감은 국민들에게 전국 1일 생활권이라는 편리함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더욱 분명한 것은 그런 현대문명의 편리함도 자연재해로 인한 국민 불안 앞에서는 왜소해질 수밖에 사실이다. 경주지진이 추석 연휴와 철도의 날에 가르쳐준 교훈이기도 한 것이다. / 박장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