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큰 집에 가는 것은 신나는 일 중 하나였다. 특히 제사를 지내는 명절날에는 먹을 것이 많았었다. 특히 오징어는 어린이들에게 있어 인기 짱이었다.

초등학생 때까지 큰 집에 가서 놀 때가 많았었다. 큰 집은 앞 동네에 있었다. 논 가운데에 있는 우리 동네와 달리 큰 집이 있는 동네는 산속에 있었다. 이곳저곳 놀러 다닐 데가 많았었다. 푸른빛의 물총새 집도 곧잘 습격(?)해 보곤 했었다.

박장우 논설위원

어렸을 때에는 외갓집에도 가끔 갔었다. 좀 멀리 있었지만 1년이면 서너번씩 갔던 것 같다. 대부분 조상님들 제사 때 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큰 집과 외갓집 음식문화는 좀 달랐다. 큰 집은 주로 과일과 생선이 주류를 이루었다. 반면 외갓집은 기름에 부치는 전병, 부스개 그리고 시원한 식혜가 일품이었다.

엊그제 20대 중반 되는 총각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큰 집이 엄청 싫다고 말했다. 명절이 돼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들이 다 가는데도 자기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외갓집 가는 것은 싫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어린이들의 양가(兩家) 선호도에 있어 외가가 친가를 앞섰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다. 아마 엄마들의 영향이 그만큼 커졌다는 반증 아닐까 싶다.

50대 이하 세대들은 명절에 양가를 다 들러야 일과가 끝난다. 일반적으로는 남편 부모들이 있는 친가를 먼저 가고 다음으로 아내 부모가 있는 처가를 들른다. 그러나 일부는 처가를 먼저 찾았다가 친가로 오기도 한다. 부모들이 알면 곤란해질지 모르니까 은밀하게 말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현상도 없지 않다. 친가 형제들 간에는 모임 하나 만들기도 쉽지 않지만 처가 형제들 간에는 모임도 자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 애들도 가깝게 지내게 되고 말이다.

이러다간 머지않아 처갓집에서 명절을 보내는 풍속도도 생기지 않을지 모르겠다. 기독교인들의 경우 조상들에 대한 제사도 드리지 않는다. 꼭 친가에서 명절을 보내야만 한다는 불문율은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그리고 갈수록 여성들의 영향력은 커지기만 할 것이고...

명절은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오랜 관습에 따라 지켜온 명일 또는 좋은 시절을 뜻한다. 계절적, 자연적 정서와 제례 및 민속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명절을 정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1,3,5,7,9의 홀수가 겹친 명절로서 1월1일(설날), 3월3일(삼짇날), 5월5일(단오), 7월7일(칠석), 9월9일(중양절)이 그 하나다.

다음은 보름달 명절이다. 최고의 명절인 추석을 비롯하여 정월대보름(상원), 4월보름(하원), 6월보름(유두), 7월보름(백중날)이 그것이다.

그리고 동지(작은 설), 한식, 중화절(2월1일)도 명절이다. 옛 조상들이 힘든 농삿일을 해야 하는 일꾼들에게 배불리 먹고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배려한 날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 많은 명절들이 일제 때부터 훼손돼 없어지다 시피했고 설과 추석만 그 명맥을 잇고 있을 정도이다.

명절에는 차례, 벌초, 성묘 등의 조상 섬기기와 용신제(龍神祭)와 같은 마을제사를 지냈다. 남자들이 행사를 주도했다. 물론 여성들도 그날의 놀이나 행사에 함께 했지만 뒷바라지 하는 일이 보편적이었다.

그런 부계문화(父係文化)의 유산인 명절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모계문화(母係文化) 분위기로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인 것이다. 실제 딸만 둔 가정도 많은 게 요즘이다.

추석은 둥근 보름달이 상징인데 달의 크기도 계절에 따라 그리고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지리산 벽소령에서 바라보는 달은 쟁반처럼 크게 보인다.

해도 마찬가지다. 동해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해는 정말 크다. 그러나 경주 토함산에 올라 바라보는 해는 새끼손가락 손톱만 하게 작다.

올해 추석은 경제불황과 고용한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 민족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추석 보름달, 큰집, 외갓집, 친가, 처가 가리지 말고 모든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기원해 보자구요. / 박장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