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에서 학원을 하려는 한 친구는 요즘 리모델링 업자와 실랑이가 한창이다. 친구는 공사금액을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하고 있고 업자는 이런저런 옵션을 제시하며 가격을 높이려고 한다. 그런데 업자가 불쑥 이런 말을 던지더라는 것이다. “교육청건은 다른 사람 시키세요. 아는 사람도 없고 맨입으로 되는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10년전, 출판업을 했던 한 후배는 매출액의 30%를 영업을 위한 접대비로 무조건 쓰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그 후배의 출판사는 기관단체를 상대하던 회사였는데 명절 떡값이나 술대접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런 그 후배도 밤 늦게 찾는 호출은 질색이라고 말했다. “한밤중에 거래처 직원들이 술이 취해 술값 내달라고 부르는 거예요. 안 나갈 수도 없고 미치는 거예요”

박장우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하려면 관(官)을 끼고 하라는 말이 있다. 행정기관을 비롯 교육청. 법원검찰 그리고 국가예산이나 지방예산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을 상대하지 않고서는 회사를 꾸려가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관공서에서 발주하는 물량이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결제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관공서 주변에는 음식점들도 성업을 이루곤 한다. 관공서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 상권도 따라 옮겨간다. 전주지역만 봐도 알 수 있다. 도청이 이전한 서부신시가지는 최고 상권이 됐다. 구 도청 인근 중앙동은 파리만 날리고 있다.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반부패와 청렴성을 요구하는 김영란법이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행정기관을 비롯한 모든 공공기관 그리고 사학법인과 언론계 종사자들에게 적용되는 법률이다.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 이내로 허용되며 업무관련 청탁은 일체 금지된다. 구체적인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지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이해관계 업계와 단체의 반발로 헌법재판소의 심판까지 기다렸는데 지난주 합헌 결정이 났다. 헌재는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부정부패도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는 판단 아래 내려진 결정이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연봉제가 시행된다. 그런데 공무원들에게는 연봉 외에 α를 임금으로 포함시켜 이야기되곤 했었다. α는 직무수행에 따른 부수입을 말하는데 명절떡값을 비롯 술대접, 그리고 일종의 미의(微意)라고 불리는 촌지다. 업종이나 직위에 따라 α가 연봉을 웃도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게 우리나라다.

공무원들의 α는 지난 60,70년대 공무원 월급이 적을 때부터 양해됐던 사항이다. α는 인허가상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는 것을 말하는데 박봉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의 가계를 위해 국가나 국민들 모두 어느 정도의 뒷거래는 눈감아 주곤 했던 것이다. 그런 α가 더 이상은 용납되지 못하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공무원은 월급도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년보장 등 가장 안정된 직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학생들 10명 중 4명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실제 공무원들은 금융기관에서도 환대를 받고 있다. 1억 정도의 대출은 신청만 하면 곧바로 받을 수 있다.

김영란법은 고위공직자들이 부당 접대를 받아도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고 한다. 실제 현직 검사들이 기업들로부터 고가 외제차를 선물 받고도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국민감정과는 동떨어진 법 현실 때문이다.

언론에서 합헌 판결을 받은 김영란법을 놓고 접대문화의 혁명이란 표현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파급력이 보통이 아닐 듯 싶다. 일부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고가의 한우나 굴비, 그리고 화훼산업은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걱정도 적지 않다.

적용대상에서 국회의원이 제외된 것도 비난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영란법은 실제 시행되는 단계에서는 선물금액 상향조정 등 일부 수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우리나라 공직사회도 부패와의 검은 관계를 끊고 보다 청렴해질 필요가 있다. 돈벌이는 선진국이지만 국민의식은 아직도 후진국인 게 우리나라다. 공직사회가 법치주의를 앞장서서 이끌 때가 된 것이다. / 박장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