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가 문을 열던 날, 정세균 국회의장은 "내년이면 소위 19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된다."면서 "개헌은 결코 가볍게 꺼낼 사안이 아니지만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이에 대해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개헌을 시도할 때가 된 것 같다."며 힘을 실었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개헌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내년 치러질 대선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장우 논설위원

이에 앞서 여당 내에서도 개헌론을 제기한 바 있다.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은 "앞으로 대선까지는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이 시기에 개헌을 추진해 국민투표까지 한다면 개헌 역사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나경원 의원 역시 "국민의 권리에 대해서 이제는 헌법을 고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국회 사무총장에 개헌론자라는 우윤근 전의원이 임명되고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여론조사가 발표됐다. 국민들도 개헌을 바라고 있다느니, 이원집정부제보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더 선호하고 있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그러나 개헌이 제안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그동안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개헌론이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청와대도 이렇다 할 견해를 밝히고 있지 않는데,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가 하반기 임기 동안 경기 부양 등의 중요한 국정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판단에서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도 개헌론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었다.

19대 국회 초반에도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 임기 초반인 점을 고려한 친박(친박근혜)계의 반발로 유야무야된 전례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개헌 논쟁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임기를 1년 남기고 ‘4년 연임 대통령제’개헌을 제안했었다.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국가 미래를 위한 의지 표현이다.”고 거든 반면 한나라당은 “오직 정권쟁취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난했었다.

개헌론을 두고 정부여당과 야권이 정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해관계가 충돌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생리 아닐까 싶다. 20대 국회를 앞두고 치러진 4.13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소속 의원들이 개헌에 대해 극도로 경계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 획득할 경우 친박계의 정권연장을 위해 이원집정부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을 강행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었다. 실제 총선 전에는 일부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개헌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랬던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제 1당이 되자 그동안의 태도를 돌변, 개헌론을 들고 나선 것이다. 개헌을 한다 해도 자신들이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말이다.

이런 분위기가 못마땅했던지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는 개헌특위 구성을 주장하는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에게 “왜 총선 전에는 국민들에게 개헌을 막게 해달라고 그렇게 읍소했었느냐”고 꼬집기도 했다.

물론 개헌론이 언제 또 다시 급물살을 타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새누리당 친박계가 집단적으로 또 개헌론을 들고 나서지 말란 법도 없다. 일부에서는 임기 말의 박대통령이 내년 초 정국 주도를 위해 개헌론을 제안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김영삼 정부시절 노동부장관을 지낸 남재희 전 장관이 지난주, 20대 국회 들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개헌론에 대해 ‘공력낭비’라고 쓴소리를 했다 한다. 남 전 장관은 야당 초선의원 들이 주축이 된 ‘따뜻한 미래를 위한 정치기획’ 창립행사 강연에서 “국민 열망과 에너지가 있는데 국회가 그걸 외면하고 개헌이란 이슈에 낭비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오는 7월17일은 우리나라 헌법을 처음 만든 날을 기념하는 제헌절이다. 국민복리와 국가안전을 우선시 했던 제헌국회와 달리 당파적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개헌론은 앞으로도 헛걸음만 계속하고 말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박장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