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는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진다.

무주(전북)와 영동(충북), 김천(경북)이 만나 경계를 이루는 꼭대기에 삼도봉(三道峯)이 있다.

지리산에도 전남 구례와 전북 남원, 경남 함양이 만나는 곳이 있는데, 이름나기로야 지리산의 그것이 더 유명할 것이다. 그리고 무주의 삼도봉 보다는 그 옆에 살짝 떨어진 민주지산이 더 알려진 산이다. 민주지산의 한 봉우리기 때문이다.

입장에 따라 영동의 삼도봉, 김천의 삼도봉 이라고 할 수 있다. 길에 주인이 없듯, 봉우리에도 홀로 주인임을 내세우기 어려울 테니 그러하다.

라이딩을 하면서 길에서 만나는 친구들.

대개 고개는 이쪽과 저쪽이 갈리는 분수령이다. 행정구역이 바뀌는 표지판을 만나면 고갯길의 정점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봉우리들을 잇는 산줄기를 기준으로 물의 운명이 달라진다.

삼도봉의 무주 쪽으로 떨어지는 것은 서해로 흘러가고, 김천 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낙동강을 흘러 남해로 스며든다. 영동으로 내려가는 물과 무주로 흐르는 물은 다시 영동군 심천면에서 만난다. 북쪽 어느 곳에서 흘러온 물과도 만나 금강의 물을 이룬다.

분수령(分水嶺)이라 하질 않았던가?

분수령을 기점으로 멀어지면서 조그만 계곡은 내를 이루고 강이 된다. 물의 폭이 넓어진 곳일수록 그 물을 마시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도 점점 달라질 것이다.

삼도봉에서 만나는 무주와 영동과 김천의 사람들이 다를 것이다. 아울러 비슷하기도 할 것이다. 군산이나 전주사람과의 모습보다는 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더 가까울 것 같다.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삼도봉을 한 바퀴 돌아 크고 작은 고개를 넘는 자전거 대회가 있다. 풀코스를 기준으로 무주에서 출발해 용화재, 도마령, 우두령, 마산령, 부항령, 오두재, 적상산과 같은 고개를 거듭 넘어야 하는 대회다.

하프 코스는 같이 출발해 얼마 못가서 갈라진다. 싸리재를 넘고 무풍에서 설천으로 넘어서는 오두재 앞에서 풀코스와 합류하고 적상산에서 마치는 대회다. 풀코스와 하프 코스의 차이는 거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오두재 정상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구미에서와 같이 달렸던 젊은 친구의 뒷모습. 가까워 보이지만 심리적 거리감은 매우 아득했다.

삼도봉을 크게 돌아올지, 마음을 돌려 지름길을 택할지의 차이가 생기는 거다.

풀코스와 하프코스 공히 제한시간이 7시간 반이다. 거리가 두배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들어와야 한다. 그란폰도(위대한 도전이라는 뜻) 라는 이름을 붙인 이 대회는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이 대회 하프코스를 신청했다가 메르스 사태로 인해 연기되면서 포기한 적 있다. 한여름으로 연기된 탓에 참가는 포기했지만 많은 훈련을 했다. 실제 코스를 달려보고자 답사차 도전했다. 적상산 와인박물관 앞에서 여건상 되돌아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답사 라이딩이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젊은 친구를 만났다. 평일인데도 그 길을 달리는 것으로 보아 나와 같은 목적임이 분명해 보였다. 목을 축이고 숨을 돌리는 와중에 만난 것이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같이 달리기로 했고 6시간을 함께 나누었다.

이내 서로간의 라이딩 실력과 성향을 파악하고 맞춰나가려 애썼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이렇게 만나고 얼마간을 함께 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친밀감이 만들어지도 한다.

자전거 좀 탄다는 사람들에게 이름 높은 오두재를 힘겹게 타고 올랐다. 달리다 끌고 오르다 자전거를 팽개쳐 버리고 주저앉아 쉰다. 그것을 반복해 마침내 올랐다.

정말이지, '마침내 올랐다'라고 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견함, 기특함, 안도감, 포만감, 성취감... 이런 모든 게 다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나보다 경력은 짧았지만 젊은 친구답게 여유롭게 올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갯길 정상에서의 형언하기 힘들만큼 보람찬 환희를 속으로 삼켰던 나와 그가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시 고개를 내려와 리조트 앞을 지나 적상산 중턱까지 찍고 무주까지 그와의 동행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대회가 되면 함께 달리자는 약속과 함께 전화번호를 주고 받은 뒤 헤어 졌다.

가까스로 오두재 정상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구미에서와 같이 달렸던 젊은 친구의 뒷모습. 가까워 보이지만 심리적 거리감은 매우 아득했다. 사진에 경사를 담아낸다면 이해가 될 터인데,  대회 취소와 연기로 인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이 젊은 친구도 그랬지만 여기저기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만난 사람들이 제법 된다. 통성명도 안하고 길게는 2-30분 가량, 짧게는 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새만금 방조제 앞 비응항 쪽에서 만났던 80 넘었던 어르신 라이더.

새만금 방조제 앞 비응항 쪽에서 만났던 80 넘었던 어르신이 가장 고령이다. 미군부대 군속으로 정년퇴임 하신 후 자전거를 타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시작해 매일같이 막걸리 한 병쯤을 챙겨 나선다고 한다. 군산에서 새만금 건너 변산 까지 찍고 돌아오신단다.

영산강변 나주 죽산보 에서 만난 70살 정도 되셨다는 두 분 할아버님(젊은 오빠라 불러야 하나)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들도 즐겁게 타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탈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아쉬움 섞어 토로한다. '젊은 나이에 좋은 취미를 시작한 것이 부럽다'고 덧붙이기도 하셨다.

함평에서 온 젊은 오빠들을 군산에서의 어르신보다 뒤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군산 어르신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로를 드리고 힘을 내게 했을 것 같다. ‘앞으로 2,3년 정도 더 타지 않겠어?’ 라는 그분들 말씀에 ‘앞으로 10년은 더 타셔야 지요’ 라고 했을 것 같다.

삼도봉을 돌아 영동과 김천을 찍고 오는 길과 삼도봉 앞에서 우측으로 빠져 오두재로 바로 간 길은 무풍면 오두재 앞에서 다시 만난다.

먼 길을 돌아와 이미 지쳤을 게 분명한 풀코스 도전자들과 이제 비로소 시작인 하프코스 도전자들이
오두재 정상에서 뒤섞인다.

시간과 거리가 그렇게 섞인다. 물과 먹을거리를 준비해둔 보급소가 여기인 것도 그걸 말한다.

헤어졌던 길이 크게 돌아와서 만났고 함께 길을 이룬다. 다시 만났다 하더라도 남은 힘과 속도가 달라 또다시 헤어지게 된다.

오두재에서 만났다면 방심하거나 포기하지만 않게 되면 다시 만날 수 있다. 적상산 위 양수댐이 끝이고, 끌고라도 오르면 되기 때문이다.

길이란 헤어짐으로 끝나지 않는다. 잠시 헤어졌던 길이 얼마쯤 후에 다시 만나기도 한다. 크게 멀리 돌아 반대방향으로 이별했던 길조차 언제 다시 조우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법이다.

길도 물처럼, 그렇게 흐르고 만나고 갈라지며 이어준다고 할 만 하다.

다만, 가는 길이 분명했고, 그의 가고자 하는 길이 분명했다면 만나지 않을까? 헤어지며 아파했던 길조차 이 길 어느 뒤에서 만날 것이라고 믿어볼만 하다. 길은 통하는 법이니깐.

이 글을 쓰면서, 또한 이런 생각들을 해오던 몇 날의 결론이 이것이다.

살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수십년을 여전히 함께 걸어가는 벗도 오랜 기간 동안 같이 걷다가 헤어진 사람도 생각난다. 잠깐의 인연이었지만 여전히 또렷하게 인상지어진 사람도 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인상지어졌을까?

이 생각을 보듬고 다시 길을 간다. 길이 그렇게 펼쳐있으므로...

분수령에서 반대로 흘러 봤자 바다에서 만난다. 그리고 다시 하늘에 오르는 게 물의 길이다. 길도 그렇게 흐르고 만나고 갈라지며 이어준다고 할 만 하다. / 김길중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