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그래도 지역 경찰의 수장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술잔에 지폐 끼우는 건 어디서 배운 행태래...? ”

김재원 전북경찰청장이 여기자에게 ‘고추’ 운운하고, 술잔에 지폐를 말아 주었다는 보도를 접한 전북 도민들의 반응이다.

파장이 커지면서 경찰청에서는 사실상 감사 수준의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성폭력예방치료센터와 전북여성단체연합에서도 김 청장의 처신을 비난하며 해임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번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김 청장의 언행은, 비록 술을 과하게 마셨을지라도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여기자에게 “여자는 고추를 먹을 줄만 아는 게 아니라 잘 먹어야 한다.”며 다분히 성회롱적인 발언을 했다. 일부 언론은 차마 직시를 못하고 ‘00’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내가 선배 기자로서 더 분노하는 것은 여기자들의 술잔에 지폐를 감아 돌렸다는 것이다. 술잔에 지폐를 감아 주는 행태는 술집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남자들끼리 술집에 가면 대체로 종업원에게 택시비조로 술을 한잔 채우고, 컵 밖으로 지폐를 감아 준다.

종업원에게 많지도 않은 서비스 사례를 노골적으로 주기가 어색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좋게 해석한다. 하지만 그 공간을 벗어나 어디에서도 택시비를 술잔에 감아 주는 장면은 본 적이 없다. 그 일은 다분히 음습하고 일탈적이다. 여기자들에게 그런 식으로 택시비를 줬다는 행태에서 성적 의도를 배제하기 어렵다.

이번 자리는 지방청장과 출입기자들과의 첫 만찬이다. 당사자로서는 일선 경찰청장으로 부임해 처음 갖는 기자들과의 상견례다. 사법 기관의 만찬은 원래 술로 진탕이 된다. 일종의 기 싸움이 벌어지는 자리다. 그래서 출입 기관에서는 사전에 술 약을 복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팽팽하고 정신을 놓을 수 없는 술자리다.

처음 부임한 지방 경찰의 수장으로서,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는 경찰청 대변인 출신으로서 그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공관으로 ‘모셨고’, 들뜬 마음으로 기자들을 초청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버’도 하고, 주책없이 ‘허세’가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술집에서 여 종업원의 손을 동의 없이 만졌다가도 경찰에 잡혀갈 수 있는 세상이다. ‘성(性)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단호하며, 특히 공직자들 가운데는 ‘성’에 관해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잘못으로 ‘옷을 벗은’ 경우도 적지 않다.

나도 현직에서 사건 담당기자를 했어도 이런 행태는 처음이다. 김 청장의 선배 청장들도 이런 사례는 없었다. 그 시절에는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나마 관대할 때다. 아무리 ‘날려놓고 먹는’ 술자리였다 해도 긴장감을 놓았다면 절제가 부족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그의 사고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공직자들은 기자들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반복 학습한다. 특히 사건기자들은 경찰과 동지인 듯, 적인 듯 분간이 어렵다. 저녁에는 술로 하나가 되지만, 낮에는 서로 사건 해결을 놓고 쫒고 쫒기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단 경찰까지도 기자와는 ‘불가근불가원’을 철칙으로 안다.

정황으로 볼 때 그가 성적 의도가 충만해서 그런 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이미 저질렀다. 현재로서 그의 앞날은 예측하기 어렵다. 어렵게 오른 자리인 만큼 내려오기도 쉽지 않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자체 감사로 어느 정도 수습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성 단체가 나선 이상 쉽게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가 어긋난 여성관과 언론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길 빈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근신(謹愼)이 필요하다. 그런 태도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신뢰가 무너지면 끝장이다. 모두가 그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참고, 절제하면서 사는 것이다.

첨언하자면, 내가 기자 선배로서 서운한 것은 동석했던 기자들의 태도다. 어린 후배 기자가 그런 일을 당하고 있을 때 항의하는 '사건 캡'은 없었던 것인지... 해당 기자는 ‘처음엔 어찌 해야 될지 몰라 가만있었으며, 다음 날 선배들에게 얘기하려 했다’고 한다. 이 정도 상황이면 그 앞에서 술상이라도 뒤집었어야 한다. “갈굴 때는 사정없이 갈구어도 챙길 때는 챙기는 것”이 기자 사회의 미덕 아닌가... / 강찬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