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정읍 이평에서 부안 줄포까지 자전거여행을 했다. 동학농민혁명군이 나아간 길이기도 해서 큰 관심을 갖고 출발했다.

  이평면사무소 앞은 부안 백산과 정읍 신태인, 덕천 그리고 영원과 고부로 통하는 길이 모이는 곳이다. 옛날 말목장이 열리던 곳인데  부안과 정읍 여러 곳의 물품이 모여 거래됐다고 한다.

  이평면사무소 앞 사거리에는 동학농민혁명 유적의 하나인 「말목장터와 감나무」가 잘 보존돼 있다. 고부군수 조병갑이 농민들을 동원, 만석보를 쌓고 수세를 받으려고 하자 분노한 농민들과 동학교도들이 최초로 집결한 장소다.

  전봉준은 이곳에서 조병갑의 수탈만행을 통렬히 비난하고 농민들의 거사 당위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을 지켜봤던 감나무는 2003년 고사, 황토현전적지로 옮겨 전시되고 있으며 지금은 다른 나무로 대체 식재됐다.

박장우 언론인  *박장우님은 전북일보에서 84년에 기자 생활을 시작해 전라일보 및 전북매일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그런데 「말목장터와 감나무」안내판에는 조병갑이 ‘고부군부’로 표기돼 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해서 어리둥절했으나 몇 번 읽어보고 잘못된 글자임을 알 수 있었다. 역사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조병갑을 고부군부로 알게 할 것 같았다. 동학농민혁명을 불러일으킨 원흉의 직위조차 틀려서야 하는가 싶어 답답했다.

  말목장터를 둘러보고 영원 방면으로 20여분 나아가면 오른쪽으로 전봉준이 살았던 옛집으로 나아가는 길이 나타난다. 도로표지판과 관광안내판 모두 「전봉준선생고택」으로 표기돼 있다. ‘녹두장군’ 또는 ‘장군’ 호칭에 익숙했던 내겐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봉준선생고택」은 이평면 장내리에 자리하고 있다. 동학 고부접주였던 전봉준이 동학농민혁명군을 이끌던 당시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초가 5칸에 당시 사용됐던 우물도 보존돼 있었다.

  고택으로부터 5백미터 떨어진 곳에는 「전봉준장군단소」가 있다. 전봉준을 기념하는 이런저런 비석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선생’과 ‘장군’이 함께 쓰이는 현장으로 여겨졌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일제시대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김구주석도 선생으로 돼 있고 구한말 임실의 이석용의병장도 선생으로, 그리고 정읍태인의 최익현의병장도 선생으로 나와 있었다. 아마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직책이나 직위에 있었던 민족 지도자 등은 선생으로 분류, 유물을 관리하고 있는 듯 했다. 「김구선생기념관」「이석용선생생가」등등으로.

  한때 전라도에서는 ‘선생님’하면 대단한 의미로 통한 적이 있었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야당을 이끌던 시절, 광주 전남사람들에게 ‘선생님’으로 불렸다. 그들이 “아이고 선상님”하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극존칭의 대상이 됐다. 지금 이평지역 주민들에게도 「전봉준선생」이 그런 ‘선생님’으로 떠받들여지고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조병갑군수의 관아가 있던 고부는 역사가 오래된 마을이다. 백제시대에는 고사부리로 불린 것으로 전해지는데 5방의 하나인 중방이 있었던 곳이다. 전남북 10여개 군을 관리하는 관청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전라도를 관할하던 관찰사가 있었던 전주 쯤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한다.

  고부에서 줄포로 가는 길이 4차선으로 뻥 뚫려 있었다. 예전에는 폭좁은 도로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모습조차 찾기 어려웠다.

  고창 흥덕에 있는 동림지에서 발원한 고부천 부근에 구도로의 흔적이 남아 있어 발길을 끌었다. 꽤 오래된 듯한 분위기가 서려있는 정자가 있는데 ‘눌제정’이라 쓰여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눌제지’란 안내판이 서 있었다.

  눌제는 백제시대 벽골제, 황등제와 함께 전북을 대표하는 3대 저수지로 불렸으며 우리나라 저수지의 효시로 평가되고 있는 곳이다. 당시의 눌제 제방은 구도로로 사용됐다고 한다. 몇십리 떨어져 있지 않은 김제의 벽골제와 비교하면 너무 처량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신라 쪽의 눌제였다면 오늘과 같이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전국이 시끄럽다.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을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는데 혹시「전봉준선생」도 폄훼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사라져버린 눌제와 같이 승자독식의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 박장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