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명희(1947∼1998)가 중학교 1·2학년 때 쓴 습작품들과 편지들이 28일 공개된다.

최명희문학관은 최명희 작가가 중학교 1학년인 1960년에 쓴 ‘글쓰기 노트’와 중학교 1·2학년 때 쓰고 그린 만화책, 중학교 2학년 때 쓴 편지 등을 작가의 전주사범병설중학교 선배인 이기덕(80·화가) 씨에게 기증받아 28일부터 문학관에서 상설 전시한다.

▲ 최명희문학관은 최명희 작가가 중학교 1학년인 1960년에 쓴 ‘글쓰기 노트’와 중학교 1·2학년 때 쓰고 그린 만화책, 중학교 2학년 때 쓴 편지 등을 작가의 전주사범병설중학교 선배인 이기덕(80·화가) 씨에게 기증받아 28일부터 문학관에서 상설 전시한다. 중학생 최명희가 쓴 글쓰기 노트와 만화책 표지

이기덕 씨는 “최명희 작가는 중학생 때 크고 작은 종이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자주 보여줬는데 드라마 대본부터 시, 수필 등 장르도 다양했고, 친구와의 관계부터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관심이 많았다.”라면서 “몇 년 전 고등학교 때 받았던 최명희의 편지와 노트 등을 찾게 되었고, 이 자료들이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작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소중한 물건이라고 생각돼 기증을 결심했다.”라고 밝혔다.

기증 물품을 통해 본 최명희는 이미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담는 데 가장 적절한 방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구했고, 자신의 글을 모아서 여럿이 함께 읽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 있던 성숙한 문학소녀였다.

표지에 ‘나의 글 짓는 솜씨는 얼마나 늘었나?’라고 적은 ‘글쓰기 노트’는 32쪽 분량으로 독후감 1편, 수필 5편, 시 9편, 콩트 6편, 희곡 3편 등 24편의 습작품이 들어있다. 독후감 「소공자」, 수필 「TO YOUNG」·「무제」·「바다」·「사진」·「카드」, 시 「가을밤」·「가을은 가네」·「낙엽」·「산 너머 바다 건너」·「요지경」·「우리 집」·「유정」·「창틈」·「코스모스」, 콩트 「꽃」·「독감」·「비 오는 날」·「시계와 탁자」·「아가전나무」·「코스모스」, 희곡 「우정」·「진학」·「케익 소동」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조와 유명인들의 명언도 적어 놓았다. 콩트와 희곡 중에는 마무리 짓지 못했거나 낙장으로 작품 일부가 빠져 있는 작품도 있지만, 전체 원고 분량이 150여 장(200자 원고지)에 이르고, 서사와 표현이 뛰어난 작품도 많다.

“언니! 우리가 만일 어떤 거대한 짐승에게 지배를 당한다 할 때 그 짐승이 우릴 마구 잡아먹고 자기의 만족만 위하면 돼요? 언닌 대학생이 그것도 몰라?”

“숙아! 우리 저 꽃을 꺾은 죄로 꽃씨를 받아서 코스모스밭을 만들자. 응?” ∥최명희의 콩트 「코스모스」(1960) 중에서

영경엄마: “숙아! 너의 우정은 참으로 곱다. 정말 무슨 일이던지 숙처럼 해야 해. 악을 선으로 대해야 돼. 알겠니?” ∥최명희의 희곡 「우정」(1960) 중에서

바람이 분다. 저 바람을 따라서 그저 흘러가는. 시시때때로 모습이 변하는 구름장. 난 저 구름장을 좋아해. 내 마음이 잘 변한다는. 약하다는 표증일 거야. ∥최명희의 수필 「TO YOUNG」(1960) 중에서

소설 「혼불」의 연구자인 김병용 문학박사는 “최명희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관한 열정을 시와 수필, 콩트와 희곡, 만화 스토리보드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출하며 스스로 점검하는 자료를 만들었다.”라면서 “작가가 성장 과정에서 작성한 글쓰기 자료를 찾는 일도 매우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 기증자 이기덕 씨가 중학생 최명희에게 받은 편지와 글쓰기 노트 등을 소개하고 있다.

만화책 제목은 『폭풍은 지나고』이다. 이복철·이영호·이연희 3대에 걸친 이야기로, 총 51쪽 712컷의 그림으로 구성돼 있다. 1907년부터 1952년까지 가상의 공간인 우막골과 부산이 배경이며, 한국전쟁으로 어머니와 동생이 죽으며 희망을 잃어버린 14세(중학교 1학년) 연희가 새롭게 구성된 가족들과 삶의 의지를 찾아가는 치유의 과정이 20여 명의 인물로 그려진다. 이 작품은 1950년대 풍속과 풍경, 언어 등을 짐작할 수 있는 사례가 많아 더 의미가 깊다. 작품 속 음식점 <강남옥>의 메뉴판에 가끼우동(각기우동), 짜장면, 냉면, 비빔밥이 함께 쓰여 있어 한 음식점에서 여러 종류의 음식을 팔았다거나 백반을 전문으로 한 음식점이 언급되기도 한다. 또한, 핸드백을 ‘핸·백’, 음악감상실을 ‘뮤직·홀’이라고 줄여서 표현한 것도 눈에 띈다.

김근혜 동화작가는 “만화책의 글과 그림은 중학교 1학년이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라면서 “개성 넘치는 인물과 또렷한 시대상. 개연성 있는 사건, 적당한 긴장과 갈등이 잘 어우러졌으며, 특히, 작은 소품 하나까지 인물과 이야기에 맞게 표현한 세밀한 감성은 소설 「혼불」의 섬세함을 연상시킨다.”라고 말했다.

편지들은 1961년 2월부터 4월까지 기증자의 중학교 졸업과 고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보냈으며, 중학생다운 감성이 한껏 담겨 있다. 편지를 보낼 때 말린 붉은 장미 꽃잎과 네 잎 클로버, 코팅된 네 잎 클로버 등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최명희문학관 최기우 관장은 “중학생 때의 습작품을 통해 작가 최명희와 최명희문학관이 초·중·고등학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라면서 “이를 계기로 최명희 작가를 비롯해 시인·작가들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들의 기증 문화가 더 넓게 퍼지고, 자료들에 관한 다각적인 연구로 문학이 시민과 한층 더 친밀해지길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

최명희문학관은 이달 28일부터 전시장인 독락재에서 ‘콩트 쓰는 중학생 최명희’를 주제로 중학교 때 습작품 등을 상설 전시하고, 글쓰기 노트와 만화책은 초·중학생들과 교사들을 위한 교육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또한, 11월 말까지 중·고교 시절 전국 단위 백일장과 문학 콩쿠르에서 장원을 도맡으며 ‘천재 문사’로 이름을 날렸던 최명희 작가의 청소년 시절 작품의 의미를 살피는 야외 전시물을 마당에 펼쳐 놓는다. / 김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