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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바다에 떨어진 겨울 햇살(2)-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사한,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불꽃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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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29  15: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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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바다에 떨어진 겨울 햇살

 

<2>

이영남이 위태롭다. 새 세상, 평등 세상을 그리워하는 이영남이 저기 적선의 갑판에서 혼자 위태롭게 싸우고 있다. 누가 눈앞이 천 리라고 했던가, 천 리가 눈앞이라고도 했던가. 눈앞에 이영남을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영남 장군이 한쪽 무릎을 꿇자마자 왜구의 칼이 이영남의 어깨를 베었다. 칼에 베인 그의 몸이 공중에 솟구치려는 것 같은 찰나 다시 왜구의 칼이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아아, 이영남을 구하라, 이영남을 구할 방법이 없느냐. 적의 적으로서 전장에서 죽는 것이 장수의 마땅한 이치라지만 가혹하구나, 어서 이영남을 구하라! 이순신 장군은 발을 동동 굴렀다.

백의(白衣)를 입은 자신의 처지를 가장 아파했던 첨사 이영남. 고문을 당해서 피폐해진 자신의 심신을 누구보다도 정성껏 보살펴줬던 장수. 명량해전(1597년 9월 17일)에 출정할 때 통제사 이순신은 이영남을 남겨두었다. 만일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명량에서 전투를 치르겠다고 결정하고 출정했을 때 통제사는 이 전투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계산서를 갖지 못했다. 그만큼 위험천만한 전투였다. 울돌목의 물길에 밝다고 해도 적과 전투를 개시할 때 조선군에게는 역류(逆流)였다. 순류(順流)를 탄 왜선 수백 척과 불과 13척의 판옥선이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해도 틀린 말 같지 않았다.

울돌목에서 조선 수군이 패한다면 그 뒤의 일을 어찌할 것인가. 떼죽음만 남은 혼란을 누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순신 장군은 이영남을 떠올렸다. 이영남은 자신의 부관으로서 행정에 밝았다. 병사들은 물론 백성들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이영남의 말을 신뢰했다. 그에게는 27명의 무시무시한 무사들이 있었다. 전투에 패해서 통제영을 버리고 피난 길에 나서더라도 이영남과 그의 무사들과 남은 군사들이 백성의 안위를 책임질 것이었다. 뒤를 걱정하지 않고 명량에서 전투에 전력하려면 이영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영남이 후방을 단단히 지키고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고 통제사는 생각했다. 불길 같은 성격의 이영남이 통제사의 생각에 동의할 리 없었다. 죽어도 좋으니 명량에 출전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이순신 장군은 엄히 꾸짖었다. 조선 수군이 전멸당하더라도 누군가는 살아서 백성을 지켜야 할 게 아니냐고, 수많은 전투를 치른 장수답지 않게 왜 이리 심정적이냐고 통제사는 이영남을 꾸짖는 듯 어르고 달래어 현실을 직시하도록 했다.

울돌목 전투에서 뒤따라오던 판옥선들이 더는 따라오지 않고 자신의 대장선 한 척으로 왜선들과 싸울 때 얼마나 외롭던가. 전세가 불리함을 알면서도 김억추의 판옥선은 아예 도망가려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던가. 여기에 순류를 타고 빠르게 다가오던 왜선들은 대장선을 포위해버렸다. 왜구들이 사다리를 걸고 판옥선에 올라타려고 했다. 전투는 급박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이란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다. 대장선에 붙으려고 하는 세키부네들에 근접 함포사격을 통해 침몰시켰고 사수들의 화살은 판옥선 아래에 있는 세키부네로 빗발같이 날아들었다. 화살이 적의 가슴에 꽂힘과 동시에 발화탄이 터졌고 왜군들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백병전이다! 병사들은 사다리를 타고 판옥선에 오르려는 왜적들을 칼과 창으로 내리찍으며 도선을 막았다. 중군장 김응함의 판옥선과 거제 현령 안위의 판옥선이 합세하기 전까지 송희립은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자신과 함께 왜군을 무찔렀다. 명량에서 패한다면 조선이 멸망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출정한 전투가 명량해전이었다. 이런 자신의 생각을 목숨처럼 떠받들었던 첨사 이영남. 대장선 단 한 척의 배로 왜선들을 무찌르면서 울돌목의 험한 역류를 판옥선과 함께 버티면서도 어딘가에서 이영남이 그의 무사들과 함께 이 전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영남, 그는 부하들을 사랑하는 지휘관이었다. 공무를 처리할 때 지나칠 정도로 끊고 맺음이 분명했지만 사석에서는 다정다감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노고를 한 병사를 잊지 않았다.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화살을 날렸던 병사, 화포 수입을 게을리하지 않은 병사, 포를 밀어 넣고 방포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 병사며 노를 젓는 노꾼들의 수고까지 잊지 않았다. 특히 노를 젓는 노꾼들에게 이영남은 정다웠다. 이들 모두가 조선 수군이라는 생명체로 똘똘 뭉쳐 왜적을 섬멸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장수. 그를 첨사라고 칭하는 이유는 있었다. 이영남이 경상우수영 소속에서 전라좌수영으로 전출되었을 때 그의 최종 직함이 산함직 가덕진 첨사였으므로 장수들은 그를 첨사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통제영에 이영남은 여럿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한자 이영남(李英男)까지 똑같았다. 칠천량 해전이 있기 전에 전의이씨 이영남은 한산도 통제영 바깥에서 소일하고 있었다. 새 통제사 원균은 이영남에게 주요 직책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에 정예병으로 추려진 무사 27명과 혹독한 훈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영남들도 칠천량 해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다른 이영남 즉 태안군수 이영남과 장흥부사를 지낸 이영남은 조정에 형편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태안군수(泰安郡守) 이영남(李英男)은 군수직에서 쫓겨났다(1595년 5월 23일). 선조 30년(1597) 3월 20일, 전라우수사 이억기는

“장흥부사 이영남(李英男)이 왜인들에게 주식(酒食)을 후히 대접하고 부채까지 선물로 증정했으며, 지금 상중(喪中)인데 공공연히 육식(肉食)을 하고 있고, 주사(舟師)를 오갈 때에는 본부의 기생을 싣고 가서 장병들에게 아첨하였으며, 거느리고 있는 군인들을 침탈하고 마음대로 사냥을 다녔으니, 그의 패려함이 심합니다. 파직하고 서용하지 말도록 명하소서.”

라는 장계를 조정에 올렸다. 선조는 사흘 후인 5월 22일에 장흥부사 이영남에게 파직을 명했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못하도록 불서용 처분까지 내렸다.

이순신 장군은 태안군수나 장흥부사 이영남이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장군이 깊게 신뢰하고 있는 이억기 수사. 전장에서 서로를 믿고 전투에 임했으며 승전보를 올리는 데 공을 세운 전라우수영의 이억기 수사에게조차 신망받지 못하는 인물이라면 더 이상 볼 것이 없는 졸장부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오늘 1598년 11월 19일, 왜수군의 선봉장 와키자카의 전투선에 뛰어들어 목숨이 위태로워진 장수는 전의인(全義人) 이영남이었다. 그가 지금 왜군들에 둘러싸여 죽어가고 있었다. 대장선을 보호해줄 판옥선을 도착하게 하느라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을 아버지처럼 큰형님처럼 따랐던 이영남, 군영(軍營)과 백성에게 이로운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언제든지 현직을 반납할 수 있는 사나이. 태산을 무너뜨릴 기세로 왜적들을 베었던, 신분 따위를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실력 있는 병사를 권관으로 추천했던 장수. 백성이 서로 존중하며 서로 대접받는 사회를 그리워했던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그가 죽어가고 있다.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그는 이타적(利他的)인 삶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왜군을 한 명이라도 더 처치하는 것이 사랑임을, 그것이 적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그는 냉철하게 실천하고 있으리라.

사람은 쇳덩어리가 아니었다. 사람에게 도술을 부리는 환각술도 있을 리 없었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장수가 왜적의 칼을 맞고도 물러서지 않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발상(發喪)조차 할 수 없었던 백의(白衣)의 자신. 진정으로 사랑해마지 않았던 셋째 아들 이면(李葂)이 왜적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도 장군은 동요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적일지라도 적장의 가족만큼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예의나 인간적 도리조차 왜군에겐 없었다.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일만이, 잔인하게 사람들을 떼죽음시켜서 더러운 야욕을 확인하는 것만이 왜군이 벌이는 전쟁의 목적인지도 몰랐다. 이런 똥개 종자만도 못한 것들의 씨를 말리고 싶은 욕망이 이순신 장군의 가슴에서 피처럼 끓었다.

눈앞에서 부하가 왜적들에게 죽어가고 있다. 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이를 어쩔 것이냐. 이순신 장군은 피눈물 삼켰다. 이영남 그는 한 사람의 장수이되 한 사람의 장수만으론 성명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리워했던 세상은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평등 세상을 꿈꾸었던 그의 소망이 절대로 소망으로 그쳐서는 안 되었다. 백성의 그리움이 다시 수천 년의 그리움으로 남는 불행의 끈을 확실하게 끊어내고 싶었던 장수가 이영남이었다. 그러므로 전의인(全義人) 이영남(李英男) 그는 조선의 또 다른 오늘이었고 조선의 내일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영남을 보면서도 이영남에게 달려갈 수 없었다. 큰 승리를 위하여, 만백성을 하늘로 모시는 조선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피붙이 같은 부하가 죽어가는 현실로 뛰어들 수 없었다. 하늘이여, 왜 이리 저를 핍박하시나이까, 왜 저를 살려서 죽이시나이까, 어쩌자고 이리 제 피를 말리시나이까. 속에서 터져 나오는 천불을 삼키며 이순신 장군은 둥둥둥 진군의 북을 울리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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