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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새벽어둠이 걷히다 <3-2>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사한,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불꽃 같은 삶!
전북포스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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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21  22: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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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새벽어둠이 걷히다.

 

<3-2>

이영남은 자신을 포함한 정예병 28명을 추렸다. 28은 사방(四方) 7성(星)의 우두머리 별을 합한 28숙(宿)을 적용하여 선발한 것이었다. 이영남은 27명의 무사와 함께 특수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육상에서의 검법과 활쏘기, 배 위에서의 검법과 활쏘기 등을 훈련했고 밤에는 사서삼경과 병법서 등을 교육시켰다. 지금은 전시이지만 무과에 급제할 수 있도록 철저한 훈련시켰고 본인이 없을 때에는 김대수가 훈련을 담당했다. 그는 복권이 되었다. 전쟁이 소강상태가 되자 이영남은 전라도 관찰사에게 대수의 아버지 김민국에 대해 사건의 재조사를 의뢰한 것이었다. 전라도 관찰사가 이를 재조사한 뒤에 기축옥사 당시 남원 김해김씨 김대수의 아버지 민국이 박씨 양반의 모함으로 죽었다는 상소를 올렸다. 이조에서는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남명 조식의 문인인 김민국이 정여립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밝혀주었고 김대수는 복권이 되었다.

무사들은 처음에 혼란스러워했다. 지금까지 받아온 훈련 방식과는 판이하기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 훈련은 사람을 무사로 조련하기보다는 살수(殺手)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강해 보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영남은 개의치 않았다.

“조선의 검법은 지켜야 한다, 그러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살상이 목적인 왜적의 검법과 백병전에 능한 전술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한참 위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훈련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다. 검을 뽑아라. 아차, 하는 순간 내가 죽는 것이 전쟁임을 뼈에 새겨라. 왜적의 칼은 간악하고 영리하고 무시무시하게 예리하다. 조만간 이놈들은 피에 굶주린 늑대가 되어 미친 듯이 공격해 올 것이다. 다시 한번 조선의 떼죽음을 보지 않으려면 야수(野獸)가 되어라. 훈련을 통하여 자기 목숨의 끝을 경험하라. 이것이 가족과 조선을 지키는 일인즉 자, 진검를 뽑아라. 우리는 훈련도 실전이다.”

조선의 칼을 검(劍)이라 하고 일본의 칼을 도(刀)라고 했다. 양날을 가진 검은 1차적으로는 적을 위협하기 위해서지만 궁극적으로 찌르는 게 목적이었고, 한쪽 날을 예리하게 벼린 일본의 칼인 도(刀)는 철저하게 베는 게 목적이었다. 전투 중에는 검(劍)의 찌르고 빼는 동작보다도 순발력 있게 적을 베고 전진하는 도(刀)의 전술이 더 유효했다. 시간이 갈수록 검은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전쟁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군은 환도(環刀)를 사용했다. 전쟁에 검보다는 환도가 더 유용한 무기이기 때문이었다. 환도가 조선군의 주요 무기가 되면서부터 검은 지휘용으로만 쓰였다.

이영남 장군은 부하들이 환도와 일본도를 뛰어넘는 검법을 터득하기를 바랐다. 적 앞에서 맹수(猛獸)가 되기를 바랐다. 적을 베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죽는 일은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확인하기를 바랐다. 그는 수하 27명을 수시로 파도 앞에 세웠다. 한산도 있는 통제영 발치로 밀려오는 거센 파도를 무찔렀던 무사들, 하루에도 수천 번씩 파도를 베고 무찔렀던 이영남의 무사들.

전주부 구이면 고향집에서 이영남은 상처를 치료받으면서도 자신이 계사년 10월부터 무사들과 함께 훈련했던 일을 복기하곤 했다. 몸은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다. 부하들에게서 간간이 편지가 왔지만 아직 전쟁이 터질 조짐은 아니어서 상처의 뿌리를 뽑아낼 요량으로 고향집에 더 있었다. 그때 이순신 장군이 의금부로 압송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서찰을 받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국왕이 이럴 수는 없었다. 아니 조선이란 국가가 이순신 장군을 버릴 수는 없었다. 영남은 지체없이 한산도 통제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28명 최정예병의 일원이 되어, 한 마리 야수가 되어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자신이 모악산에서 수련할 때 입에 거품을 물었을 때처럼 부하들 입에 거품이 물리기 시작했다. 부하들이 버거워했지만 훈련을 도외시하는 부하는 없었다. 날이 갈수록 부하들 몸은 새털구름같이 가벼워졌고 칼날은 매서워졌다. 한일자로 꾹 다물어진 입은 냉정함과 단호함 그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왜군의 칼이며 백병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전쟁의 두려움이며 죽음 따위는 이미 베어버렸을 것이었다. 훈련이, 실전과 다를 바 없는 혹독한 훈련이 거듭될수록 부하들은 어서 왜적들과 맞붙여달라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이영남 장군은 햇수로 5년여 동안을 부하들에게 실전을 방불케하는 훈련을 시켰고 자신도 한 명의 무사로 훈련에 참여했다. 이런 무사들이니 지금 1598년 11월 19일에 왜장 와키자카의 안택선 갑판에서 칼춤을 출 수 있으리라.

새벽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동이 튼 바다 멀리 햇살이 기운이 어리고 있었다. 안택선이 도대체 얼마나 큰 배이기에 왜군들이 끝도 없이 죽을 줄도 모르고 쏟아지는지. 와키자카가 부하들 훈련을 제대로 시켰기 때문일 것이었다. 이영남 장군은 왜장 와키자카가 선물한 피의 저주를 왜구들에게 돌려주었다. 동이 트고 있었다. 이영남 장군의 칼날에 아침노을이 피처럼 묻어 있었다. 만백성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만백성의 존재 그 자체를 목적으로 대하는 조선 검법의 사랑, 조선 검법의 노여운 피의 세례가 아침놀에 번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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