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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 42. 영화 '그을린 사랑' / 드니 빌뇌브
이현옥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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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9  1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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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충격, 전율로 뒤흔들었던 최고의 화제작, 영화 '그을린 사랑' /

삶의 불가해성 -이렇듯 잔혹한 스토리-

 ‘조란 지브코비치’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에서 태어나 세계대전과 내전 등의 참상을 경험한 작가다. 1999년 NATO의 공습으로 폭탄이 난무하는 현장 가까이에 살면서 공포를 잊기 위하여 환상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는 주로 책과 도서관을 소재로 환상의 세계를 펼쳤는데, 그가 쓴 『환상도서관』이라는 소설 후기에는 이 작가가 금세기 지탄의 대상 세르비아인으로서 세르비아어로 영어권 나라에서 책을 출판하느라 좌충우돌하는 인터뷰가 실려 있다. 

에이전트가 있어야만 출판할 수 있는 시스템과 가까스로 나타난 에이전트는 그에게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소설을 써 주면 출판해 주겠다고 했다. 

그가 이 전쟁의 잔악상(연쇄 강간, 포로수용소 등)을 담은 자극적인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유혹을 뿌리친 인터뷰는 한국에서도 저 아랫녘 변방의 한갓 독자에 지나지 않는 나를 감동시켰다.

 

  그런데 여기 실로 강력한 얘기가 있다. 아. 스포일러일지라도 진부하게 끌고 갈 생각이 없다. 이 영화처럼 마지막에 가서야 반전을 내놓고 싶지도 않다. 하여 대강의 스토리를 한 마디로 요약하고자 한다. 

이 영화는 쌍둥이 남매가 그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분의 유언에 따라 그들의 손위 형제와 아버지를 찾아내는 여정을 집요하게 밟아가고 있다. 그런데 찾고 보니 그들 남매의 손위 형제가 곧 아버지이더라는 말씀이다. 

아니 이게 무슨 얘기지? 머릿속에서 잠깐 이 가계도를 그려보시라. 아! 쌍둥이 남매의 어머니가 낳은 큰 아들이 곧 쌍둥이 남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는 거다.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이렇듯 잔혹한 스토리가 어디에 있느냐 말이냐.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 중동으로 떠난 쌍둥이 남매는 베일에 싸여 있던 그녀의 과거와 마주한다. /

  내가 보기에 이 영화의 배경은 중동지역의 레바논(영화에서 정확한 나라이름은 언급되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컨대)이 아닌가 싶다. 

젊은 남녀는 사랑했고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하게 되었다. 여자는 이슬람교도이고 남자는 기독교도에다 난민이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간의 종교전쟁을 떠올려 보시면 이 상황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연히 남자는 가문의 수치라 여기는 여자의 가족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여자가 낳은 아들은 고아원에 보내진다. 그리고 그녀는 고향에서 추방당하는 꼴이 되고 만다. 친척집에 머물며 대학을 다니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들을 맡겼던 고아원이 불타고 없자 그녀는 아들이 죽었다고 단정한다. 

기독교 민병대가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고 확신한 그녀는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민병대 지도자를 암살하게 이른 것이다. 

그녀는 붙잡혀 15년을 감옥에 있으면서 고문기술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쌍둥이 남매를 출산한다. 

출감 후 누군가의 손에서 자라고 있던 남매를 찾아 캐나다로 이주하여 평온한 일상을 누리던 어느 날 그녀는 수영장에서 충격적인 사실과 맞닥뜨린다. 

자신을 성폭행해서 쌍둥이 남매를 낳게 했던 그 고문기술자가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고문기술자는 딸의 오빠이자 아빠이며, 그 고문기술자는 아들의 형이자 아빠였던 것이다.

 

  그것을 안 것은 표식 때문이었다. 그녀의 할머니가 부정한 씨앗을 고아원에 맡기면서 발뒤꿈치에 세 개의 점을 찍어 두었던 것인데 그것을 그녀는 수영장에서 우연히 발견했고 망연자실해버리고 만다. 

그 후 그녀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었을까는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아니 꼭 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다.

 

  전쟁에서 가장 비참한 꼴을 당하는 부류는 아이들과 노인, 여자들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기록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전쟁에 직접 참전했거나 전쟁을 목격한 여자들의 인터뷰와 편지 등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책이다. 그 잔혹상 때문에 2년 동안 출판 거부를 당하고 여차여차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 작가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도스토옙스키가 한 말을 인용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 안에 또 다른 자신을 몇 명이나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다른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까?”

 

   
2011년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션됐던 충격의 화제작 /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일본의 식민지 시대 우리네 위안부 할머니들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유린당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엊그제 다녀 온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본 여성포로들 사진 속 참상이 가슴 아프다. 이곳에서 여성포로들에게 또 어떤 일들이 벌어졌겠는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전쟁의 참상들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 옳은가. 앞서 조란 지브코치처럼 숨기는 것이 옳은가. 

나는 단연코 남기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단 출판시장의 잇속과 결탁하지 않고, 진실규명의 차원에서, 아픈 역사가 번복되지 않도록, 어떠한 형태로든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쌍둥이 남매 어머니의 유언을 발췌하여 옮겨 적고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너희 이야기의 시작은 약속이란다. /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는 약속 /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 관에 넣지 말고, 나체로, 기도문 없이 묻어 주세요. 세상을 등질 수 있도록 시신은 엎어놔 주세요. / 비석은 놓지 말고 이름도 새기지 마세요. / 약속을 어긴 자는 비문이 필요 없죠. / 유년기는 목구멍 속의 칼과 같아서 쉽게 뽑을 수가 없단다. /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지면 비석을 세우고 내 이름을 새겨도 된다. 햇빛 아래에.” / 이현옥(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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