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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 32. 책 '노인과 바다' / 헤밍웨이
이현옥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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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0  1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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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 지난 여름*
 

  내 인생에서 지난 여름처럼 바다와 친하게 지내본 적은 처음이다. 바다가 보이는 강릉 안목해변 커피 거리의 어느 2층 카페에서, 부안의 솔섬 앞 벤치에서, 그리고 고군산 군도의 낚싯배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24시간 이상을 바다만 쳐다보고 있었다.(치사하게 계산까지 함) 앞으로 좋은 일이 더 생기겠지만 현재로선 최고로 값진 시간을 바다에 할애한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 살면서 이 정도를 가지고 호들갑이냐는 눈빛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겐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 오랜 시간 멍 때리고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웃고 얘기를 나누며 무척이나 여유롭게 지낸 시간으로 단연코 손꼽을 수 있어서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는 강물과는 가까이 지내고 자란 편이다. 내가 살던 집에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만경강 상류가 위치하고 있다. 지금이야 대아저수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강이라고 해봐야 손바닥만 해졌지만, 이 저수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여름 장마철이나 장대비가 쏟아질 때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강둑이 무너져 한물이 질까봐 애고 어른이고 걱정이 태산 같았던 것이다. 밤새 비가 내린 그 다음날 아침이면 우리들은 수멍을 들여다보거나 굴곡이 심한 강어귀까지 나아가 우르르 내려오는 흙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닭들과 수박, 참외, 우리들 몸통만한 나무들, 세간살이들을 안타깝게 쳐다보다가 돌아오곤 했다. 어른들은 강둑이 무너질까봐 위험지역이라 여겨지는 곳에 모래자루들을 개미역사 하듯 쌓아 올렸다. 하지만 염려했던 물바다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다닐 즈음 댐이 세워져 물 구경 나설 일도 없어졌고, 나는 고향을 등에 졌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모두 물개였다. 개헤엄이라고 들어보셨는가. 정식으로 수영을 배워본 적 없이 스스로 터득한 물놀이를 여름 내내 즐겼다. 나는 가끔 넓은 강폭 중간쯤의 깊이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헤엄을 치다가 오늘은 궁금증을 풀고 말리라, 모험을 감행했다. 그 지점에 다다르자 나는 손을 높이 들고 물속 깊이 내려갔다. 내 몸은 한없이 빨려 들어갔고 이내 매우 위험한 상황을 깨닫고는 물 위로 오르려 안간힘을 썼다. 이리저리 바위들에 부딪치며 사투를 벌인 끝에 겨우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다. 물이란 물은 입과 코를 통해 내장 안으로 들어왔고 다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나는 뭍으로 기어 나와 물을 게워내며 엉엉 울었다. 엄마한테 얘기하면 맞아 죽을 것 같아 비밀로 간직하고 말이다. 이 경험 이후 나는 물이 무섭기 시작했다. 소용돌이가 자주 일어나던 장소 가까이서 해마다 사람이 죽곤 한다는 어른들의 말도 비로소 공포로 다가왔다. 내 눈으로 죽은 사람을 확인한 바는 없지만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바다는 대학시절에 처음 봤을 것이다. 아마도 변산 해수욕장으로 MT를 갔을 때였던 것 같다. 수영복은커녕 반바지 입는 문화도 거의 없었던 때라 우리는 당연히 바닷물 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짓궂은 남학생들이 물속에 집어넣으려 괴롭혔지만, 결코 그 농간에 휘말리지 않았다. 갈수록 물은 심란한 존재였다. 가까이 다가가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았다. 먼발치서 아련하게 쳐다볼 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나이 들어서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나는 배 멀미 느낌이 들고는 했었다. 낚싯배를 타본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 내가 노인이 되어 바싹 긴장하고는 했다. 얼마나 몰입하여 읽었는지 팔과 몸뚱이가 뻐근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헤밍웨이 자신이 낚시광으로서 그만큼 사실적인 문체로 사로잡았다는 말씀이리라.

 

  그런데 내가 지금 낚싯배 위에서 비현실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시커먼 물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데도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바다낚시를 한답시고 온갖 똥폼들을 잡고 있다.(여기서 우리라 함은 여름방학 중에 『코스모스』를 함께 읽은 친구들이다) 황정심은 낚싯줄을 던지자마자 1마리를 낚았고, 배효정은 승부욕에 불타서 바닷물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다. 김세희는 폼이라도 멋있지. 나이깨나 먹은 지희 언니는 새끼 우럭을 잡고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른다. 나만 태평세월이다. 나는 애저녁에 배 멀미를 한다며 고기를 낚지 못하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나처럼 늙은 애송이에게 어느 고기가 날 잡아 잡수시오? 이러고 기다리고 있겠는가. 나는 산천경개를 유람할 요량만 계산하고 있었다. 저 멋진 섬들이나 질리도록 봐야겠다.

   
글쓴이 이현옥

  그런 내 눈앞에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이 오락가락거리며 거슬린다. 어렸을 때에는 무슨 재미로 저런 책을 읽나. 그리고 고기잡이가 뭐 그리 재미있겠나. 쥐죽은 듯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낚싯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앉아 있는 장면들은 얼마나 지겨워 보였던가. 몸이 뒤틀려서 어떻게 저러고 있을까. 젊은 내게는 책도 그런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아 건성건성 읽은 척만 하고 뚜껑을 닫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이 들어 다시 읽으니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하기야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그랬다. 호기심도 남달라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란 말씀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이 책 함께 읽자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단지 나보다 서너 살 아래인 작년까지는 만학도였고, 지금은 졸업하고 남편의 뱃일을 돕고 있는 선구언니에게는 권장하고 싶다. 더군다나 이 낚싯배 선장의 사모님 아니신가? 남편은 바다를 좋아하고 본인은 산을 좋아하여 육지로 나갈 생각을 자주 한다는 그녀가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바다와 좀 더 친해지기를 바란다. 먹고 사는 수단이 아니라 함께 갈 공동체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우르르 떠나는 우리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조만간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다.

  딩동댕 지난 여름. 생애 처음 바다낚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고 우리들의 손발이 되어준 선구언니, 그녀의 남편 비응항의 히트호 선장님 잊지 못할 것이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가수 송창식의 노래 제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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