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모름지기

  모르겠다. 도대체 삶이 무엇인지. 좋은 삶이란, 나쁜 삶이란, 그럭저럭 왔다가는 삶이란, 아름답고 숭고한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형상을 갖는가. 어떻게 사는 게 옳은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전체를 놓고 봐야 할까. 순간순간 과정이 중요한가. 코 앞의 결과만 좋으면 되는가. 나와 내 가족만 아는 삶인가. 나는 뒷전이고 평생 남들 눈치만 보고 살았는가. 더불어 살았는가. 이웃과 함께 아파했는가.

  조금만 고개를 돌려 보면 동네에, 직장에, 사람 모이는 곳곳에 이런 저런 사연을 가진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 그들이 있기에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지 않겠는가. 가슴이 부풀고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평소 이 같은 고민을 하고 살아 왔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여기 순박하고 성실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 황만근이가 그렇듯 억울한 죽음을 맞았을 리 없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부제를 달 것인지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글을 써 나가는 와중에, 살아 숨 쉬는 동안 제대로 된 삶을 성찰하고 싶은 소견을 갖게 하는 소설이란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황만근은 동네에서 내로라하는 바보다. 멸시와 천대는 물론 조롱당하고 사는 것이 다반사이다. 있으면 성가시고, 없으면 아쉬운 존재 - 다음은 황만근이 한 말이다.

“농사꾼은 빚을 지마 안된다 카이.”

“기계화영농 카더이마 집집마다 바퀴 달린 기계가 및이나 되나. 깅운기,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거다 탈곡기, 건조기에…… 다 빚으로 산 기라. 농사지봐야 그 빚 갚느라고 정신없다.”

“그런 기 다 쌀값에 언차진다(얹어진다). 언차져야 하는데 사실로는 수매하마 먹고살기 간당간당한 돈을 준다. 그 대신에 빚을 준다. 자금을 대준다 카는데 둘 다 안했으마 좋겠다. 둘 다 농사꾼을 멍텅구리로 만든다.”

“지 입에 들어갈 양석(양식), 곡석을 짓는 사람이 그 고마운 곡석, 양석한테 장난치겠나. 저도 남도 해로운 농약 뿌리고 비싸고 나쁜 비료 쳐서 보기만 좋은 열매를 뺏으마 그마이가?”

“내가 왜 빚을 안 졌니야고. 아무도 나한테 빚 준다고 안캐. 바보라고 아무도 보증 서라는 이야기도 안했다. 나는 내 짓고 싶은 대로 농사지민서 안 망하고 백년을 살 끼라.”

  이렇듯 생각이 바로 박힌 황만근은 그야말로 빚이라고는 한 푼도 없고, 비웃음을 살 만한 존재 또한 아니다. 동네 이장의 구라와 선동을 거절하지 못하는 그의 품성은, 빚도 없는 우리의 황만근은 농가부채 탕감촉구 전국농민 총궐기대회에 투쟁방침대로 경운기를 끌고 궐기대회에 참가하러 갔다. 정작 동네 사람들 누구도 그 방침을 따르지 않았다. 

양복 차림에 자가용을 타고 갔다가 일찌감치 왔는데 오로지 황만근만이 돌아오질 않았다. 이리저리 이용만 당하고 곧이곧대로 살아왔던 그는 어두워지기 시작한 국도에서 경운기와 함께 논으로 굴러 떨어져 백년 살 거라는 약속을 저 버리고 시퍼런 나이에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황만근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감감 무소식일 때 약삭빠른 이장은 어떻게 말했던가.

“만그인지 반그인지 그 바보자석 하나 때문에 소여물도 못하러 가고 이기 뭐라. 스무 마리나 되는 소가 한꺼분에 밥 굶는 기 중요한가. 바보자석 하나가 어데 가서 술 처먹고 집에 안 오는 기 중요한가. 써그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자 황만근의 죽음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아파했던 귀농한 이웃 민 씨가 그의 인생을 다음과 같이 갈무리했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보라.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 어찌 하늘이 내고 땅이 일으켜 세운 사람이 아니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p.40)

황만근을 바보라고 비웃으면서도 이해타산에 따라 잔머리를 굴려 그를 이용해 먹던 동네 사람들의 이중 잣대에 신물이 난 민 씨만이 황만근의 정신을 높이 받든 것이다. 도시 생활에 치여 부푼 꿈을 안고 귀농하여, 또 다른 지옥을 단단히 경험하고, 떠나온 도시로 쫓겨 가며, 묘비명 아닌 장문의 조사를 남긴 것이다.

  일말의 잇속만을 챙기며 가증스럽게 살아남은 분들이 곳곳에서 내 눈에 들어온다. 나 역시 그 무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을, 모름지기 삶을 황만근처럼 살아보자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책 좀 읽었노라며 떠벌리지도 못하겠다. 성석제 작가의 작품 중 한 편은 읽어야겠다고 머릿속에서 빙빙 돌기는 했었으나 여차여차 순위가 뒤로 밀려나기도 했고, 가끔은 지우개로 지운 듯 하얗게 잊혀지기도 했다. 

이 작가 외에도 몇몇의 작가가 더 있다. 부끄러울 것까지야 없지만, 그렇다고 자랑거리도 아니지만, 나는 김훈, 김영하, 김연수, 정유정, 하루키 등등의 작품 역시 읽지 못했다. 그렇다고 베스트셀러를 등한시하진 않았다고, 독서 편력에 대해 나름 자부하는 편인데, 기회를 놓쳤는지 영 손에 잡히질 않았다. 

성석제 작가의 소설을 뒤늦게라도 접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