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인기가 시들 줄 모르고 있다.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고 첩첩산중이나 절애고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단순한 이야기인데 시청자들에게는 일종의 카타르시즘을 전달해주는 것 같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2012년 8월 22일부터 매주 방영하고 있는데 최근 350회째를 넘었다. 평균 시청률도 5% 이상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깊은 산속이나 섬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자연과 동화되어 욕심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2박3일 동안 함께 생활하며 이야기를 전하는 윤택과 이승윤도 방송인으로서 제 2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전기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도시에서 누리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왜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중국의 은자들」이란 책을 쓴 일본의 이나미 리츠코는 중국의 역사에 등장하는 은자(隱者)를 자연 전원형과 도시형으로 구분한다. 자연 전원형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멀리 떠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산 사람들을 가리킨다. 반면 도시형은 시중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을 말한다.

박장우 주필

  중국의 은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자기 조국이 망했거나 왕조 교체 같은 전환기에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숨어 산 사람들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다만 중국의 은자들과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 사이에는 은거 동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중국의 은자들은 다분히 정치적인 탄압이나 견해 차이를 피해서 은둔한 사람들이라면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들은 신체적인 질병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하던 일에 실패해서 모든 것을 잊고자 하는 성격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은둔자들의 기록이 전한다. 고려말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하고 고려왕조에 충성을 다짐한 72명의 현자들이 개경, 지금의 개성 두문동에 은거해 꼼작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이방원 등이 산에 불을 지르고 몰아내는 바람에 전국으로 흩어지기는 했으나 끝까지 조선 조정에는 출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한자어도 두문동에 들어가 꼼짝하지 않고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은자들 중에 시은(市隱), 조은(朝隱)으로 불리는 사람들도 있다. 시은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은자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고, 조은은 조정에 나가 나랏일을 하면서도 은자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시은이나 조은은 모두 도시형 은자들로서 자연 전원형 은자들처럼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해 글과 그림 등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거나 공직에 나가 생활했던 사람들인데 사람들 속에 살면서도 그 사람들과의 정신적 관계를 철저히 단절, 은자로 불리지 않았을까 싶다.

  시은이나 조은은 자연 전원형 은자들에 비해 굉장히 절제된 사람들이었을 것 같다. 세속에 있으면서 세속의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을 듯 보여서 말이다. 차라리 문명사회를 떠난 자연 전원형 은자는 그 생활도 익숙해지면 버틸 만하지 않았을까 싶다.

  「중국의 은자들」에서 조은의 대표적인 인물로 동방삭이 꼽힌다. 그는 전한의 무제를 섬긴 사람이다. 그는 풍부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궁정을 은둔지로 보고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끝까지 궁정의 어릿광대로 살았다고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가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 그만큼 피하고 싶은 요소가 많지 않는가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권의 끝없는 정쟁, 경제적 불황, 사회적 갈등 등등...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들이 너무 많지 않는가 하는 것 말이다.

  그렇다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구나 ‘나는 자연인이다’ 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도시형 은자들처럼 세상일과 적절히 거리를 두면서 살아가든지, 동방삭처럼 세상 소식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조롱하는 쪽으로 생활한다면 한결 편안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 박장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