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고향마을이 있는 익산왕궁을 자전거로 둘러봤다. 왕궁하면 대표적인 문화재가 국보 289호인 5층석탑이다. 전주에서 1호선 국도를 따라 올라 가다보면 금마 조금 못 미쳐 오른쪽으로 야산에 5층석탑이 서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왕궁리 5층석탑 주변에서는 몇 년전부터 대대적인 발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지 전시시설이나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박장우 전북포스트 주필

5층석탑은 초등학교 시절 소풍도 몇 번 왔던 곳이다. 그때에는 탑 아래쪽을 받치고 있던 돌들이 서로 어긋나 어린이들이 들락거릴 정도였었고 그 안에 뱀이 있다는 소문도 들렸었다. 지금의 석탑은 붕괴 위험이 높아져 헐었다 다시 복원한 것이다.

5층석탑이 있는 왕궁(王宮)은 한자로 임금이 사는 궁궐이라는 의미다. 석탑이 있는 곳에서 동북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는 궁평(宮坪)이란 마을이 있다. 예전에는 궁뜰로도 불렸던 곳이다.

금마에 있는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시절에 지어진 절터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 일부 역사학자들은 금마, 왕궁 일대에 백제 마지막 왕도가 존재했던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정설은 아니다.

다만 왕궁이란 지명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역사적으로도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은 금마에 보덕국을 세우고 고구려의 유족인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임명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당시에 이곳에는 왕족들이 살만한 그런 건축물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왕궁 출신들은 고향 지명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왕궁리 5층석탑과 궁평의 제석사지를 둘러보고 왕궁면소재지로 가는 길에 익산 식품클러스터 부지를 만났다. 1단계로 조성된 부지만 약 70만평이라고 한다.

익산시는 식품 클러스터의 분양률을 44%까지 끌어올렸고 24개 기업이 공장을 준공해 운영 중이라고 자랑하는데 내 눈에는 잡초만 가득한 허허벌판으로 보였다.

언젠가 신문에서도 익산 식품클러스터 분양이 부진, 전북의 산업단지 개발계획을 정부에 내밀지 못할 정도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그게 실감나는 현장이기도 했다.

물론 산업단지 부지분양과 실제 공장가동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놀리고 있는 면적이 너무 방대하다 보니 예산을 투입하는 정부에서도 적지 않게 난감할 듯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전 이곳으로 입주하려고 했던 할랄업체에 대한 미련도 없지 않고 말이다. 박근혜정부 마지막 때였던 것 같은데 아랍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할랄공장 건설 계획이 발표하자 기독교계가 벌떼처럼 나서서 반대운동을 벌였고 결국 그 업체는 식품 클러스터 입주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 할랄업체는 돼지고기를 도축하고 가공하는 공장으로 알려졌는데 직원들이 일과시간에 이슬람의 성지를 향해 기도하는 의식을 치를 것이라고 해서 기독교계의 반발을 샀었다.

만약 그 할랄업체가 식품 클러스터에 입주, 산업단지 자체가 활성화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지금의 산업단지 부진이 그만큼 크게 느껴져서 하는 소리다.

식품 클러스터를 지나자 곧바로 왕궁면소재지였다. 초등학교 시절, 5층석탑으로 소풍을 간다고 하면 엄청 먼 길을 갔다 와야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지금 보니 생각보다 멀지 않은 거리였다.

초등학교부터 달려가 보았는데 눈에 익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래된 나무들도 기이한 느낌이 들 정도로 윗 부분을 썩뚝썩뚝 잘라 다른 나무들 같이 보였다.

구멍가게들이 늘어섰던 거리로 내려오자 플래카드들이 길게 걸려있었다. 00마을 누구의 아들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축하메시지였다. 우리 고향마을에서도 합격자가 나왔다는 플래카드도 같이 붙어있었다.

지금도 시골 사람들에게는 자식 잘됐다는 것만큼 자랑스러운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렵다고 하는데 농촌에서 그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니 더욱 축하할 일 아닌가 싶다.

누구에게나 고향마을은 정겨운 곳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것은 역사적 명성도, 허울뿐인 산업단지도 아니고 오직 사람이라는 사실인 것 같다. / 박장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