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는 대단위 아파트단지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 아파트가 먼저 지어지고 난 다음에 그 아파트가 들어섰다. 우리 아파트와 그 아파트는 경계지역에 차량 출입구를 같이 두고 있다.  

  그 대단위 아파트는 서민들을 위한 아파트로 정부 투자기관에서 지은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모든 것이 넉넉하게 설계돼 있다고 봐도 좋다. 지하층이 암반이라서 지하 주차장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흠이지만 조경 같은 것은 매우 뛰어난 편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 중 하나는 그 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우리 아파트와 그 아파트 경계에 세워진 철제 울타리를 넘어서 우리 아파트 가운데를 가로질러 큰 도로로 오고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학생들만 장난삼아 그런 줄 알았는데 제법 늙수그레한 어른들도 그랬다.

  그 아파트는 지대가 낮아 울타리를 넘으려면 힘도 꽤 들 법 했다. 그리고 그 아파트 출입구를 이용하더라도 채 2분도 더 걸리지 않는 곳인데 말이다.    

박장우 주필.

  우리 아파트 위층에 사는 분은 70대다. 아침 6시면 일어난다. 시골에서 사셨는지 무척 부지런한 분이신 것 같다.

  할아버지는 무슨 가구를 정리하는지 아침 일찍부터 벽에 전기드릴로 못을 박아댄다. 할머니는 음식에 넣을 깨도 빻는다. 나름대로 조심하면서 하겠지만 아래층 사람들은 아직도 꿈속에 있는데도 말이다.

  3년 전에 이사 오신 분인데 처음에는 화장실 욕조가 깨진 줄도 모르고 물청소를 해대서 우리 집 벽이 성할 날이 없기도 했었다. 몇 번 항의했더니 욕조 수리를 했는지 더 이상 피해는 없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층간 소음을 줄여달라는 포스터가 항상 붙어있다. 걷는 것부터 문 여닫는 것까지 세세하게 안내한다. 다만 새벽에 드릴로 못 박고 깨 빻는 것은 빠져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니까.  

  대형 유통업체에는 각종 진상 고객이 있다. 보통 상식으로는 상대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고객이 많이 몰리는 주말, 피크 시간대에는 계산대마다 고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기 마련이다. 경험 많은 계산원들이 바삐 일을 하더라도 시간이 꽤 걸리기도 한다.

  그리고 매장 입구에는 고객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고객센터가 자리하고 있는데 일부 진상 고객은 그곳을 찾아 계산해달라고 요구하곤 한다. 직원들이 계산대를 이용하라고 할라치면 버럭 화부터 낸다. 시끄럽게 되는 걸 원치 않는 직원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금연구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예외 없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그런 금연구역들이 지정될 당시에만 단속하는 시늉을 했지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흡연구역이나 다를 바 없게 됐다. 끽연자들도 별다른 거리낌 없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운다.

  물론 항의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잘못하다간 봉변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선뜻 나서질 못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도 가입돼 있고 20개국 금융 정상들이 모인다는 G20에도 들어가 있다. 무역 규모로는 세계 7-8위권에 있다는 자랑도 듣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국민들을 선진국민이라도 평가하는 전문가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는 국민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인데도 말이다.

  공중도덕만 놓고 보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국민들이 조금만 신경 쓰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인데도 그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기 아파트 출입구를 이용하는데 2분이면 충분하고, 새벽 못박기와 깨빻기는 낮에 해도 되고, 계산하는 것도 조금만 참으면 되고, 담배도 흡연구역을 이용하면 되는데 말이다.

 성경구절에는 “아주 작은 일에 충성을 다했으니 큰 일에는 더욱 충성할 것 아니냐”는 의미의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이 말은 거꾸로 보면 작은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큰 일을 하겠느냐는 의미도 담고 있다.

  공동생활이 불가피한 만큼 작은 것도 더욱 중요시할 줄 아는 시민들이 돼야 할 것 같다.

/ 박장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