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애틀랜타에선 한인들이 가장 밀집되어 사는 동네의 극장 두군데에서 한국과 거의 동시에 요즘 한국에서 인기있는 영화를 상영한다. 삼사년 전부터 한 곳에서 가끔 시작해서 근래엔 두군데까지 늘었고, 영화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고 있다.

난 친구들과 낮에 주로 영화관에 가게 되는데 다들 일할 시간이다 보니 거의 우리 그룹 하나거나 한그룹 더 있는 정도다. 작년 '명량'이나 올해 '국제시장'은 노인층이 대거 출동하셔서 상영관 한칸이 대낮에도 만석을 이루는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했다. 정말 한국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국제시장'과 '쎄시봉'까지 두편이나 걸려 있다.

Jiworl Seok은 현재 미국 애틀랜타에 살고 있다. 전주 성심여고와 전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이름은 정지월.

그래도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만 들어오는 편이기에 기대하고 가서 보지만, 미국에서 산 '짬밥' 때문에 내 입맛이 약간 미쿡식으로 변한건지 모르지만 한국 영화는 뭔가 느슨하고 싱겁다. 또 독창적인 맛도 부족하다. 물론 미국영화도 유치하고 허접한 것 투성이다. 하지만 좋은 영화는 정말 좋다. 헌데 요즘 한국영화 중에 정말 좋은 영화는 드물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광해' '관상'은 신선한 발상과 짜임새 있는 구조, 볼만한 배우 다 갖춰 좋았다 - 내 맘대로 평점 4.5/5)

그러나 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는 이름난 영화 '명량'은 CG(컴퓨트 그래픽) 부터 Plot(플롯)까지 너무 억지스러웠고, '국제시장'은 한국판 'Forrest Gump(포레스트 검프)'로 부끄러웠으며, '쎄시봉'은 시기상조였다는 게 내 소감이다. 아직 현존하는 분들 얘기니 얼굴이 오버랩 돼 보는 내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쎄시봉'의 흥행 저조는 당연하다. 한효주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몇 퍼센트가 쎄시봉을 알고 열광하나? 쎄시봉에 열광하려면 적어도 70년대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어야 했다. 과연 그게 전국민의 몇 프로이며, 또 그 모두가 티켓 파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예상했어야 했다.

내겐 '건축학 개론'의 인기와 쎄시봉 공연의 깜짝파워에 기대어 급조한 아류작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그 시대 날라리 캐릭터에 어울리지도 않는 참한 한효주를 캐스팅한 것만 봐도 감히 국민 첫사랑 수지와 비슷한 효과를 기대한 것 같은데, 딱 걸렸다.

또 '국제시장'은 절대 국제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 내놓았다간 큰일난다. 영화보는 내내 미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까 진땀을 뺐다. 판권 안사고 베꼈다고 신고해서 고소 당할까 봐.....

이젠 우리 관객들도 만만하지 않다. 볼만큼 봤고 배울만큼 배웠다. 하나를 보면 척, 열을 꿰뚫는다. 그러니 너무 안일하게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시력을, 지적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주머니를 함부로 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단지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어째,,, 눈가리고 아웅하는 느낌이다. 모든 게 저 위에 계시는 소수의 사람들(정치,경제,종교계)을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 온 국민이 열심히 죽어라 뛰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고 짠하다.

하지만 한국 사람의 택도 없는 상향지향적 국민성도 문제다. 조금만 돈걱정 벗어나 살게 되면 자신이 부자인 줄 착각하고, 내자식은 내가 공부를 잘했거나 못했거나 꼭 좋은 대학에 가줘야 되고, 좋은 대학만 나오면 다 성공하는 줄 알고, 성공한 사람은 다 훌륭한 사람인 줄 아는....

한국사람은 겸손하지 않으나 너그럽다. 그래서 밥걱정 면할 정도만 살아도 애들 일 안시키고 바로 명품 수집에 나선다. 명품 학교, 명품 직장, 명품 결혼상대자...등등등. 모두가 갑이 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스펙과 외모 쌓기에 시간을 다 써버려 인격을 갖출 시간이 없다. 그래서 그렇게 양산된 갑은 철학이 없어 뻘질을 하고, 을은 쓸개가 없어 신분이 아닌 역할 노릇에 좌절하여 자살을 한다. 참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알 수 없는 어리석은 그림이다.

근데 살아보면 차차 알겠지만 아무리 그리해도 사는데 별 차이 없다. 예를 들어 조기유학붐 불어서 수억원씩 쓰고, 6.25도 아닌데 이산가족 양산하며 유학해 봤자 아이비 리그 가기는 삼대가 협력하고 하늘이 허락해야 가며, 또 명문대 졸업한다 해도 외국인 신분으론 남의 나라에서 취업할 수 없으니 귀국해서 한국에서 취업해야 하고, 또 어설피 먹은 외국물은 '미생'의 생활을 더욱 고통스럽게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러니 공부 안해도 부모님 평생 노하우 전수받아 국 하나만 잘 끓여도 사는 건 똑 같다는 얘기다.

나도 시골 출신이라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말에 속아 더 큰 데로만 나가는 게 성공인 줄 알고 계속 나가다 여기 미국까지 나왔다. 김제 - 전주 - 서울 - 미국.

OK! 본래 출세라는 말이 세상으로 나간다는 말이라니 많이 접어줘서 큰나라에 사니 출세했다 치자. 그리고 살면서 두어번 출세했다는 말도 들어봤다. 한번은 킹사이즈 내 침대에 누워본 내 동생에게서 "정지월 출세했다, 침대가 작은 방 만하네!". 또 한번은 내 고향 옆동네 부안에서 미국 오신 타일 까는 아저씨에게서 "저도 출세했지만 사모님은 더 출세하셨네요!" ㅋㅋ. 하지만 평생을 전주에서만 산 내친구 명순이보다 행복하지 않다.

내 딴에 아둥바둥 용써 봤지만 하루 세끼 먹고-난 요즘엔 두끼만 먹어야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이런저런 사소한 일상에 일희일비하며 사는 한갓 똑같은 인생이기 때문이다. 반백년 돌아 거울 앞에 서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고, 하늘 아래 똑같은 게 인간이더라'는 인생의 벌거벗은 얼굴이 보인다. 젊었을 땐 뭔가가 있는 줄 알고 열심히 뛰며 살지만 막상 받고 보면 다 그저 '그 밥에 그 나물'인 밥상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진을 뺄 이유가 없다. 만족한 하루하루가 모여 만족한 한 생이 될 터인데, 더 큰것만을 바라서 항상 목마른 인생이 뭐 즐거우랴! 욕심 때문에 발전도 있다지만 자신이 택하지 않은 세상이... 다른 사람들이 정해 놓은 wish list(위시리스트) 를 채우기 위해 사는 인생은 고달플 뿐이다.

내 배짱대로 내 깜냥대로 소신있게 행복하기를... 우리를 날 것으로 삼키려 으르렁대는 세상에 속아 호락호락 내 행복을 내어주지 않기를 내자신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빌어본다.

어쩌다 영화 얘기가 여기까지 발전하게 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영화가 인생을 보여주는 도구라면 나도 영화 얘기를 빌어 인생 얘기를 하고팠나 보다. 어쨌든 주제가 있을리 없는 <Life Story>에 제목 붙이는 게 내겐 제일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