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혐의로 수감 중인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돼 지난 22일 새벽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조 전 장관은 2016년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거짓 증언한 혐의와 함께 블랙리스트 업무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8.9.22/ 송원영 기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의한 블랙리스트 작성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며, 마땅히 형법으로 처벌돼야 합니다.”

조기영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 ‘직권남용과 블랙리스트’가 학계와 법조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논문은 국가의 블랙리스트 작성행위가 단순 징계사유가 아닌 형법 123조 직권남용에 의한 처벌대상인 이유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남은 상황에서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1·2심 재판부를 지지하는 학계의 논문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조기영 교수는 논문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블랙리스트 사건을 보면서 너무 추상적인 ‘직권‘과 ’남용‘를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무조건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형법의 보충성 원칙‘이 형법의 출발점인 만큼, 국가의 블랙리스트 작성행위가 과연 형법에서 정한 직권남용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독일과 스위스 형법, 대법원 판례를 분석, 행위의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 여부를 직권남용 적용 기준으로 삼았다. 목적과 수단관계를 고려해 직권남용 판단기준을 제시한 것은 조 교수가 처음이다.

조 교수에 따르면 직권남용이 문제될 수 있는 영역은 ①외형·형식상 수단과 실질적 목적이 모두 정당한 경우 ②수단은 정당하지만 목적이 불법인 경우 ③수단은 부당하지만 목적이 정당한 경우 ④수단과 목적이 모두 불법·부당한 경우 등 총 4가지다.
 

조기영 교수는 직권남용이 문제될 수 있는 영역을 목적과 수단관계를 고려해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조기영 교수 제공) /

조 교수는 ①번을 제외한 모든 경우 형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봤다. 목적과 수단 중 하나만 위법·부당하더라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대법원도 ①번을 제외하고 모두 유죄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수단이 정당하지 못할 경우, 직권남용 이외에도 강요나 협박 등 직권남용이 아닌 다른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경우 ②번 또는 ④번에 해당한다. 

먼저 작성 목적이 위법·부당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를 각종 문화예술계 지원사업에서 배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다.    

이는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에 정면으로 반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지원 여부에 차등을 두는 것이므로 평등의 원칙에도 배치된다. 

‘불법 폭력집회에 가담한 이력이 있는 단체나 개인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라고 지시했을 뿐’이라는 김기춘 전 실장의 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도 반한다. 따라서 블랙리스트는 정당한 목적이 아닌 위법·부당한 목적으로 작성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조 교수의 주장이다.

수단의 경우 피해자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위법일 수도 혹은 합법일 수도 있다.

가령 피해자를 각종 지원사업에 배제된 개인 또는 단체로 볼 경우, 외형상 위법·부당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 정부지원 자체가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②번에 해당된다.

피해자를 각종 지원사업 대상자를 결정하는 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출판진흥원 임직원으로 볼 경우, 수단도 위법·부당하게 된다. 임직원들의 독립적인 권한을 침해했기 때문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기소한 검찰도 피해자를 각종 위원회 임직원으로 봤고, 1심 및 항소심 재판부도 이러한 공소사실을 전제로 유죄를 선고했다. 검찰과 법원 모두 목적과 수단이 위법·부당한 ④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 교수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헌법질서가 훼손됐고 법치주의가 후퇴했으며, 문화예술인들의 정당한 이익이 침해됐다. 또 정부의 문화예술계 지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역시 크게 훼손됐다”면서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블랙리스트 작성은 ‘강화된 정도의 반사회성’이 인정되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행태에 해당하는 당벌적 행위로서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설령 수단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목적이 위법·부당하기 때문에 처벌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충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