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왕의 고향, 익산

깨진 기왓장에도 역사의 숨결이 있다. 지명부터 ‘왕궁’인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유적전시관에는 ‘首府’(수부)라고 새겨진 기와가 있다. 이곳이 백제의 수도였음을 알리고자 1,400여 년 애써 버텨온 글자다. 왕궁오층석탑 주변에서도 ‘대관관사’, ‘대관궁사’ 등 명문기와가 출토돼 왕궁면이 궁성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한 나라의 임금이 한 고장에서 태어나고 묻힌 땅이 어디 또 있는가? 익산은 백제 무왕(600-641)이 태어나고 자라고 사후 능(陵)까지 있는 진정한 왕의 고향이며, 왕궁과 왕궁 사찰, 산성과 왕릉의 4대 조건을 충실하게 간직한 유일한 고도(古都)다.

특히, 왕궁면 일대는 익산이 백제의 도읍지였음을 알려주는 역사문화자원들이 숱하다. 무왕 대에 왕궁으로 건립돼 후에 사찰이 됐다는 왕궁리유적과 그 변화과정에서 조성된 왕궁리5층석탑, 제석신앙을 통해 지은 절터인 제석사지,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 금을 가공하던 공방 터, 왕궁의 담장 등이다. 소장유물만 2만여 점에 이르는 미륵사지유물전시관과 왕궁리유적전시관을 돌아보면 백제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과 정신의 향기가 시나브로 느껴진다.

▲ 2018년 7월 21일 익산 쌍릉(대왕릉) 발굴현장에 전국의 문학인이 모였다.

금마면 미륵산 아래 미륵사 옛터에서도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서동과 선화가 꾸었던 꿈은 그 산 아래 미륵사지에서 깎이고 다시 서기를 반복하면서도 시대의 존엄을 잃지 않았다.

2009년 1월 미륵사지석탑 해체과정에서 금제사리호와 금제사리봉안기, 은제 관식 등 유물 700여 점이 출토되면서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익산의 가치를 크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2018년 7월 익산 쌍릉에서 발견된 인골이 서동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는 또 어떠한가. 역사는 더 확고해졌고, 진지해졌다.

전라북도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는 백제다. 마한·백제 문화권의 중심인 익산은 그래서 전북의 한 중심이다.

익산 금마는 단군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준왕이 정착하면서 고대 마한문화의 기반이 되었다. 또한, 668년 고구려가 붕괴한 후 고구려 부흥세력이 보덕국을 세워 신라와 함께 당과 맞서며 새로운 출발을 모색했던 땅이다.

신동엽 시인은 서사시 「금강」에서 익산을 마한·백제의 꽃밭이라고 했다. 마한과 백제의 고도 익산의 미륵산길과 용화산길을 따라가면 미륵의 불국토를 꿈꾸었던 1400년 전 백제 사람들의 삶과 정신의 향기를 시나브로 느낄 수 있다.

길은 아득하게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길이 품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익산에서 가장 큰 도로는 백제 무왕에서 유래한 ‘무왕로’다. 익산 인화동에서 팔봉동을 잇는 ‘서동로’와 오산면에서 부송동을 잇는 ‘선화로’도 있다. 익산 사람들이 ‘서동’을 귀하게 여긴다는 의미다. 그래서 익산은 황톳길마저 천이나 만이나 되는 보석처럼 찬란하다.

♦ 익산이 가진 도시의 이미지

보석, 석재, 농업, 농촌, 이리, 솜리, 춘포, 기차역, 철도, 이리역 폭발사건, 원불교, 윤흥길·양귀자·안도현·박성우 등 원광대학교 출신 문학인, 서동과 서동요, 무왕과 선화공주, 쌍릉, 함열의 만석꾼과 소리꾼, 왕궁의 닭과 달걀, 통닭, 탑천, 만경강, 공수부대, 가람 이병기, 국가식품클러스터, 미륵산, 미륵사지석탑, 왕궁석탑, 사리장엄, 전국 제1호 여성친화도시,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글로벌 식품 도시, KTX를 통한 대한민국 교통물류 중심도시… 익산이 가진 도시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도시나 국가는 나름대로 자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특정 도시의 이미지는 시민과 방문객, 그리고 기업체들이 그 지역에 대한 반응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포털사이트에서 익산을 검색하면 연관된 단어에 마땅한 것이 없다.

관련검색어와 추천검색어는 네티즌이 ‘익산’이나 ‘익산시’를 검색하면서 함께 써넣었거나, 앞뒤로 검색했던 단어다. 맛집, 여행, 고도지정지구, 볼거리, 여행, 축제, 미륵사지, 천주교성지 등의 단어가 노출되긴 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익산을 상징하는 단어 찾기는 쉽지 않다.

▲ 포털사이트 ‘익산’ 연관검색어 목록

도시를 발전시키고 싶다면 도시를 상징하는 이미지부터 연구하고, 개발하고, 보급해야 한다. 이를 통해 도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해야 한다.

효과적인 도시의 이미지 홍보를 위해 지자체는 슬로건을 개발하기도 한다. 특정 고장의 전체적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짧은 문구로 된 구호다.

‘아름다운 제주’나 ‘사랑의 도시 남원’, ‘한국의 꽃심, 전주’, ‘곤충도시 Clean 예천’ 등이 한 예다. 익산은 위대하고 경이로운 도시라는 의미의 ‘어메이징 익산’을 내세웠지만, 아직 효과적인 지역 이미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익산시에서 내세우는 ‘역사문화도시’는 이미 꽤 많은 도시를 수식하는 말이다. 인터넷을 통해 먼저 검색되는 곳은 나주시, 고령군, 군산시, 강릉시, 경주시, 서울시, 홍성군, 전주시 등이다. ‘역사문화도시’를 소개하는 한 사이트는 부여군, 수원시, 인천시 중구, 군산시, 서울시, 광주시, 진주시 등을 나열해 놓았다. 최근 여러 기사를 통해 익산시가 함께 노출되긴 해도 여전히 파고들 장벽은 높다.

▲ 익산의 풍경

♦ 머뭇거리다가 백제의 변방이 된다

익산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유산을 품은 고도다. 세계유산 등재는 지역의 브랜드 가치와 주민의 자긍심을 높였다. 이는 관광객 증가와 관광 사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져야 한다. 백제문화유산의 학술적 의의와 문화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 관광자원 홍보와 활용 방안 등 연구와 논의가 더 필요한 이유다.

세계문화유산을 활용하고 다양한 홍보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그러나 그리 힘든 일도 아니다. 몰라서 못 하는 것도 아니다. 나와야 할 것은 이미 다 나왔다.

볼거리, 잘 거리, 놀 거리, 먹을거리, 감동거리 등 재미 요소를 살리면 된다.

흥미를 끄는 문장과 불편함 없는 안내판·홍보물, 전북 지역 백제문화유산 연계 관광, 서동·무왕·사랑·탑 등 문화유산들의 연계시스템, 익산의 특색을 살린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각각의 문화유산을 연계한 감동적인 스토리텔링, 식당·숙소·화장실·장애인 등 편의시설, 편리한 교통과 주차시스템,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노력, 시민의 자각과 자긍… 비슷한 자원을 가진 시·군의 성공과 실패 사례도 이미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부터 갖추는 것’이라는 것도 모두 안다.

무엇보다 익산의 세계문화유산은 지역의 자산을 넘어 세계의 유산이라는 자각이 우선이다. “타지에 사는 지인들의 나들이로 ‘익산’을 권한 적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주목해보자. 전주도 관광도시가 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결국은 와야 하고, 오게 해야 한다. 자각하면, 자긍이 생긴다. 자극은 자긍으로 자긍은 의지로 이어진다.

마한과 백제 역사의 잃어버린 한 축을 받쳐줄 많은 유물과 유적은 여전히 자신의 깊은 내력이 더 명확히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 최기우(극작가·전주대 겸임교수)

*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문단에 나왔다. 희곡집 『상봉』, 창극집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인문서 『전주, 느리게 걷기』, 『꽃심 전주』, 『전북의 재발견』 등을 냈다. 전국연극제 희곡상(2회), 전북연극제 희곡상(3회), 불꽃문학상, 천인갈채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 학예연구실장과 전주대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