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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을에서 천하를 보다 - 마을 총유라니? 다문 우물에서 놀다<신년기획>전라도 정도(定都) 천년...'동방의 등불'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강주영 편집위원  |  kjyn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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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2  1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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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은 낡아서가 아니라 아름다워서 지금도 남았나? 옛 한옥에서 사내들이 한여름 밤을 보낸다.

남쪽 별채 용마루의 부드러운 현수선 끝에 솟은 망와에 7월의 보름달이 걸렸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끼얹으니 뼈에까지 시원함이 스민다. 마음도 맑아진다. 몸에 지닌 스마트폰 따위를 내던지고 우물물로 등목을 하니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한가지가 아닐까? 무엇이 달라지고 발전했을까? 

 

   
다문 별채 용마루에 7월의 보름달이 오른다 그 아래에 빛나는 별은 화성이다. 스마트폰이라 사진이 좋지 않다.

전주 한옥마을 은행로 남쪽에서 서쪽 골목으로 꺾어 들면 '다문' 집이 보인다. 정갈한 음식으로 이름난 집이다. 운이 닿으면 월에 한 번 마당에서 국악 놀이를 만날 수 있다. 

삼합토 마당의 다문에서 연꽃 망와의 추녀 내림선을 따라 바람이 흐른다. 흰 백일홍이 한참 흐드러져 여름밤을 빛내며 바람을 맞는다. 전주의 바람통인 좁은목을 지난 바람이 오목대숲을 헤치고 와 달빛을 다문 마당에 쏟아낸다.

한벽청연(寒碧晴煙)한 전주천 물이 초록바위에 부딪혀서 부숴지며 여름밤은 깊어진다. 사내들은 다문 마당의 우물물을 길어 올려 더운 심장을 식힌다. 

"이보시게, 전녹두나 개똥 아재(김개남)가 이 우물물로 등목했다는 말은 없는가?"
"1930년쯤 다문이 지어졌으니 동학혁명 때는 이 집이 없었으나 그리 생각하면 그런 것이지 무에 따질 것이 있겠는가? 두 장군이 여기를 지나시기야 했겠지. 이제 몸을 식혔으니 담근 술이나 묵은 김치에 내오시게."

다문 주인장이 대소반에 살얼음 뜬 동치미와 호리병에 든 탁주를 내오며 한 문장을 읊는다. 

"기린의 자락이 / 왕조의 서기를 토하니 / 월암산 달빛은 / 죽도의 칼날에 베이고 / 서방바위 각시바위 애기바위 / 두물 아래 초록바위에 수장하니 / 건곤에는 동서의 모반이 서려 / 광야의 진혼은 물위에 비친 촛불이라" 

"하! 편하게 놀 일이지. 이 더운 밤에 다문이 지은 글이 역적모의하자는 소리네. 사내가 모이면 할 일이란 역적모의나 못된 계집질(?)이라더니 다문이 딱 그 짝이네. 술맛이 오르겠는데......"

 

   
정갈한 음식집 다문은 한옥마을 탄생의 산파이다. 8월 14일에는 모던 판소리 국악 공연이 열린다.

놀게라 불리는 동무가 다문에게 한마디 한다. 놀게는 섬진강 장구목 어름에서 차밭을 일구며 지낸다. 차밭을 '놀게다방'이라 불러 동무들은 그를 '놀게'라 부른다.

놀게는 20여 년 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던 전주 한옥마을에서 다문을 열고 산조축제 등의 골목축제를 하며 한목마을을 살려낸 동무 중의 동무이다. 지금의 다문 주인장에 다문을 내주고 차밭에서 지낸다. 동무들과 놀려고 종종 다문에 내려온다. 

"다문이 지은 글이 혁명가네 혁명가여. 근데 전주를 모르는 이는 무신 소리인지 모르겄네."
강목수가 말을 보탠다. 다문이 강목수에게 이른다.
"아따, 성님이 풀어보쇼. 한잔하시면서로....."

"기린은 전주의 주산이니 후백제와 조선의 본향으로 왕조를 품었지. 다문에서 십오여 리 전주천 상류에 상거한 월암산은 천하공물 정여립의 생가터가 아니던가! 기축옥사로 진안 죽도에서 정여립 선생이 자결하였다지. 그러니 '월암산 달빛은 죽도의 칼에 베이고'가 맞네. 호남 선비 천여 명이 죽임을 당했으니, 그 한들이 흐르고 흘렀겠지.  '한'이란 슬픈 애상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거나 다시개벽(후천개벽 後天開闢)이 꺾인 마음이라지."

시원한 탁주를 목울대를 떨며 마신다. 살얼음에 팽팽해진 동치미 무를 으드득 베어 무니 아삭하다. 강목수가 말을 잇는다. 

"두물 그러니까 동학과 서학이겠지. 서학인과 동학하는 이들이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려고 냇물에 급히 뛰어드는 형상인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 초록바위에서 처형되었지. 그 산이 곤지산이지. 곤지산이 전주 이씨 시조 이한 공을 모신 건지산과 서로 대칭하니 동서의 모반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흘러서 징게멩경(김제 만경) 너른 들로 나가 서해로 가니 광야의 진혼에 비친 촛불, 곧 동학혁명이지. 아니 그런가. 다문이 신동학혁명이 간절한 게지."

"하하, 성님! 아우의 뜻을 그리 헤아리니 술이 석 되요."
"인심 좀 더 쓰소. 쪼잔하게 석 되가 뭔가? 서 말은 되어야지."

 

   
등목을 한 다문 주인장이 달을 찍고 있다.

놀게가 술을 치며 혀를 찬다.
"다문 말대로 새 시대를 창업해도 시원찮을 한옥마을을 시장(market)의 아가리에 밀어넣었으니 천하공물이 울 일이여..... 마을이 어쩌다가 시장에 넘어갔을까? 구도심 재생이 마을을 상품으로 파는 일인가? 마을이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되어야 하는가?"

강목수가 말을 받는다.
"긍게, 상업은 넘치고 정여립이고 전녹두고 아름다운 옛일은 몽땅 죽었네. 우물만도 못하네. 아무때나 누구나 마시면 임자이지. 우물은 마을의 공동자산이니, 니 것 내 것이 따로 있던가?. 한옥마을이 주민의 삶이 자라는 공동자산은 무슨... 상업자본과 관광객 놀이터지. 전주시가 가진 10여 개 공공건물도 무슨 단체 것이지 주민 것은 하나도 없어. 이 마을은 돈이 권력이여. 주민들은 아무 혜택도 없고 세탁소를 갈래도 차를 타고 나가야니 살기 불편한 마을이여."
 
강목수가 어릴 때 살던 집은 네 집이 공동우물을 둘러싼 집이었다. 여름밤 하늘에 모깃불이 번득번득 오르면 어메와 아짐들은 속닥속닥하며 드르르 드르르르 홍두깨로 반죽을 밀었다. 20여 명 남짓한 네 집 식구들은 자연스레 어울려 살았다. 우물을 같이 쓰니 부침개 한 장도 나눠 먹었다. 평상과 마루에 둘러앉아 칼국수를 먹었다.

금세 더워지고 땀이 흐른다. 다시 우물물을 끼얹으니 늘어진 근육이 오그라들며 혈관이 맥놀이 친다.

우물이 네 것 내 것이 따로 있던가? 주인이나 길손이나 마을 사람이나 누구나 마시면 임자이지. 백중날 두레박을 타고 내려가 청소를 하고 관리를 했다.

 

   
다문의 우물은 주인이 따로 없다.

민주와 평등의 토대로 마을공동체가 말해지고 있다. 공동체정신도 필요하지만 공동체의 물적 토대도 필요하다. 마을이 항상 생산하고 그로써 마을을 항상 안민하는 항산항심(恒産恒心)의 마을을 생각해본다. 모든 도시마을의 일정 구획마다 마을 주민이 자유로이 어떤 용도로도 사용가능한 마을공유지를 꿈꾼다.

마을공유지가 있으면 비싼 임대료도 원주민 추방도 없다. 경쟁과 배제도 없다. 부동산 공화국도 약해진다. 국가복지가 아닌 마을 자치복지가 가능하다. 

마을의 공동림, 공동 논밭 등이 새마을 운동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군유지나 국유지로 무보상 편입돼왔다. 신민법(1958년)에서는 공동소유 유형으로 공유, 합유와 함께 ‘총유’ 형태가 신설되어 관습적 마을재산권에 대한  민법적 근거가 확립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편입된 마을재산이 상당히 복원되었으나 이것이 1961년의 군사쿠데타로 지방자치가 사라지면서 다시 지방자치단체로 귀속되고 말았다.

이병천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등을 시행함으로써 신민법(1958)이 보장한 마을재산권을 짓밟고 마을재산을 시군으로 이전시켰다. 이로써 마을주민들은 그들의 총유에 속하는 마을재산권을 박탈당했다. 새마을운동은 이렇게 전통적 마을재산권의 박탈 위에서 진행되었다. 이런 사정은 제주의 경우도 다를 바 없었다. 제주의 경우, 소유권이 박탈된 마을재산은 당시까지 마을공동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재산에 한정해도 제주도 전체 공(公)유재산의 약 18%로 추정된다. 상상 이상의 규모다.

 

   
옥류동 구강재에서 바라본 한옥마을 남쪽과 전주천 서학동 야경.

박탈당한 마을재산권의 환원은 민주화 시대 정부가 해결해야 할 기본과제였음에도 그 의무는 방기되었고 마을 주민들은 개개별별 민사소송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놀랍게도 제주만이 도 차원에서 "시군 귀속 리동유재산 환원 처리 지침"(1994년 8월)을 마련해 귀속마을재산 환원조치를 단행했다."(이병천,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프레시안 <핏빛 제주, 누가 마을 공동체를 망가뜨렸나 2018.04.03>)

국가의 국유, 자치단체의 공유, 개인의 사유와 함께 마을의 총유도 다시 복원되어야 한다. '마을공동체기본법"을 제정하고 마을총유를 명기하고, 민법에도 마을총유를 넣어야 한다. 

예컨대 마을 학교를 위해 배움의 열망으로 학교에 땅을 기증한 게 적지 않다. 폐교가 되면 응당 되돌려 주어야 하는데 여전히 교육청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거나 외지의 단체나 개인에게 판다. 

제주도만이 도 차원에서 "시군 귀속 리동유재산 환원 처리 지침"(1994년 8월)을 마련해 귀속마을재산 환원조치를 단행했다. 

지금이라도 마을공동체운동에서 이 점을 주목했으면 한다.

민법에서는 262조 수인의 소유는 공유로 271조에서는 수인이 조합체로 소유할 때는 합유로 275조는 법인이 아닌 사단의 사원이 집합체로서 물건을 소유할 때에는 총유로 하고 있다. 민법대로라면 마을사단을  별도로 등록해야 한다. 정확히는 마을은 소유권의 주체로 성립되어 있지 않다. 마을총유를 별도의 사단을 형성하지 않아도 주민등록상 마을 주민이면 마을 공유지, 공유건물에 대해 소유권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마을총유는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건강한 공동체의 핵심이기도 하다. 오늘날 갯벌은 어촌계 등을 통해 마을총유지로 기능하고 있다. 하딩은 '공유지의 비극'을 말했지만 훗날 하딩은 이를 '관리되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으로 수정했다. 엘리너 오스트롬 여사는 하딩과는 달리 '자치관리된 공유지'의 성공 사례에 대한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다문의 우물 네 방향으로 정자석을 얹고 동쪽으로 물이 넘치게 하였다.

갯벌은 공유수면으로 국가의 소유이지만 어민들이 수천년 자치 관리해 왔다. 어느 누구도 갯벌에서의 노동을 강제하지 않지만 삶의 조건과 마을의 자치관습에 의해 자치 노동을 한다. 소득 분배는 당연히 일한 만큼이다.

사장이 있어 이윤을 챙겨가는 것도 아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하딩은 틀렸다. 전라북도의 '새만금'은 마을의 자치와 마을의 민주주의와 공유지를 국가와 자본의 것으로 약탈한 자본의 만리장성이다.

우리 풍속에서 마을총유는 훌륭히 관리되어 마을의 공동이익에 기여했다. 갯벌, 공동 보메기 하던 농업수로, 마을의 하수처리장인 마을 연못, 마을 저수지, 문중산, 마을 정자, 서원, 향교 등......

한옥마을에 모든 주민이 권리를 가지는 마을총유지가 있으면 한다. 마을총유지는 항산항심하는, 문화의 향기가 나는 공동체의 토대가 될 것이다. / 강주영 편집위원

 

   
글쓴이 강주영 전북포스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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