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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역에서 부르는 두 노래 <강주영의 '회상'>
강주영 편집위원  |  kjyn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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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9  13: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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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손인호가 부른 '비 내리는 호남선'의 한 대목이다.

이 역은 익산역이다. 님이 떠나서도, 부모형제가 떠나서도 아니다. 이승만 정권 교체를 실현해주리라 믿었던 신익희 선생이 이곳에서 급서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절절하고 서러웠으면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았을까!

배경은 그랬지만 이 노래는 70~80년대 서울로 노동하러 올라가는 노동난민의 서러움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별과 실향의 정한을 가진 호남선이다. 목포에서 올라온 완행열차는 익산역에서 길게 쉬었다. 추운 겨울날 익산역의 풀랫폼 매점에서 콧김을 헤치며 먹는 가락국수 맛이라니.... 

 

   
2018년 7월 19일 오전의 익산역. / 강주영

정읍에서 열차를 타고 올라간 14살 소년이었던 나는 동전을 내고 익산역에서 가락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기적소리를 들으며 먹는 가락국수를 낭만적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4살 소년에게 가락국수는 고향을 떠나는 슬픔이고 굶주림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올라간 용산역에는 가출 소년 노동자를 데려가기 위해 나온 인력모집인들이 득시글거렸다. 소년, 소녀들은 누구인가의 손에 이끌려 어디엔가로 팔려갔다. 구로동 섬유공장이나 전자공장으로 간 소년, 소녀들(당시 말로 공돌이, 공순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그때 용산역에서 누구를 우연히 만난 것은 인생의 한시절을 좌지우지했을 것이다. 필연은 우연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왜 하필이면 '짱께(중국음식 종사자의 속어)'를 만난 것인가? 미아리의 한 짜장면집으로 팔려간 나는 짱께 배달원이 됐다. '베니다'로 상자를 짜서 2층으로 쌓으면 16그릇이 된다. 이게 '짱께하꼬짝'이다. (일본어를 써서 죄송...당시에 그렇게 불렀으니)

70년대 후반 미아리 일대의 공장에서는 점심이나 야식을 짱께로 주었다. 짐바리(짐자전거)에 짱께하꼬짝을 5~6개 싣고, 짬뽕 국물과 짜장소스를 찜통에 담아 공돌이 공순이에게 배달하는 게 일이었다.  한겨울에 아직 새가슴인 소년이 3~4층 옥외 계단으로 하꼬짝을 들고 올라가는 일은 힘에 부쳤다. 

소년노동자는 가난뿐인 고향이라도 늘 그리웠다. 나훈아가 부른 '고향역'은 실향민들의 정서를 참으로 잘 읊었다. 익산역에서 서울 쪽으로 한 역을 올라가면 황등역이 있다. 황등역은 1943년 3월 6일 영업을 개시하고, 2008년 12월 1일 여객 업무를 중지했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들은 나의 고향역......' 가사로 시작되는 '고향역' 은 작곡가 임종수씨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황등역과 익산역을 통학하며 느낀 정서가 배경이 됐다. 1972년 발표되었다. 

조세희 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분위기의 미아리 소년 노동자는 '고향역' 노래를 좋아했다. 지금도 노래방 가면 18번이다. 중년이라도 최신곡을 부르는 벗들이 핀잔도 주지만 이 노래를 어찌 버리겠는가! 

 

   
2018년 7월 19일 서울로 올라가는 KTX 내부. / 강주영

어느날 짱께집을 '시마이(당일 영업 마무리)'하는데 흑백테레비에서 난리가 났다. 잘 아는 이리역 폭발 사고가 난 것이다. 그 뉴스를 서울 미아리에서 들었다. 주인도 호남사람인지라 뉴스를 혀를 차며 들었다. 손님이 남긴 고량주를 짬뽕국에 마신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원수와 같던 소년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갔으면 판검사나 할 일이지 데모는 왜 했느냐고, 그러는 이도 있지만 판검사보다 대통령보다 높은 게 혁명가이다.

무슨 혁명이냐 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느린 혁명 정세일 뿐이다. 세상은 반드시 바뀐다. 한 50년 걸릴까? 혁명가는 역사투쟁가이니 최고로 멋진 직업이다. 

기실 건설기술 분야의  판검사인 수석감리사와 건축기술사도 있으니 그리 안 풀린 인생도 아니다. 다만 자유로이 살고 싶어 스스로 가난한 목수로 살 뿐이다. 

모처럼 익산역에서 서울 가는 열차를 타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 강주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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