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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마을에서 천하를 보다 - 낡은 백년의 마지막 인간인가 새 백년의 첫 인간인가<신년기획>전라도 정도(定都) 천년...'동방의 등불'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강주영 편집위원  |  kjyn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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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7  14: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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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를 사색하다>라는 제호로 18편의 글을 썼다. 세 달 가까이 연재를 쉬었다. 19편부터 제호를 <마을에서 천하를 보다>로 고친다. 사는 '장소의 혼'으로 천하를 생각해보는 것이지 그 장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가 아니고 천하이다. 세계가 지리학이라면 천하는 지문학(地文學)이다. 천하는 천명이, 즉 하늘의 뜻이 있는 곳이다. 하늘의 뜻이란 '민심이 천심이다.'라는 말처럼 민들이 살아내는 곳이다.

동방은 천하라 하고 서방은 세계(world)라 한다. 천하(天下)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만물에 경계가 없다. 천하일가(天下一家)이다. 세계(世界)는 글자 그대로 경계를 가진 것들의 집합체이다. 경계를 가진 세력들은 서로 다툰다.

하늘 아래 하나인 천하는 다투지 않는다. 세계라 하지 않고 천하라 하는 까닭이다. 마을에서 천하를  사색하며 다른 백년을 꿈꾼다. 

 

   
남북 관계 획기적 전환점이 된 남북정상회담 / 뉴스1

다시 시작한 글을 6.13지방선거와 남북문제로 연다. 

"회장님을 뵙는 날, 자꾸만 떨리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었죠. 이제야 회장님께 감사하단 말 대신 한송이 빨간 장미를 두 손 모아 드려요.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 가슴이 터질 듯한 이 마음 아는지." 항공사 여승무원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왕조 시대의 관기도 고을 수령에게 이리 노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 자유, 정의가 모두 일장춘몽이다. 

신분제를 빼고 보면 태평세의 봉건시대에는 충성과 보호라는 상호주의가 있었다. 지주라 하더라도 소작권을 함부로 빼앗을 수 없었다. 소작권은 세습되었다. 소작의 변경도 소작인 회의에서 결정되었지 지주가 결정할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 보는 지주의 횡포는 나라가 망하는 말세에서나 있었던 일이다. 근대는 계약의 자유라는 선택권이 있지만 일단 계약이 이루어지면 항공사 승무원 사례처럼 노예가 되고 만다. 봉건시대의 소작인은 지대만 내면 모든 게 자유로웠다. 자본시대의 노동자 지위는 봉건시대에 상호주의를 가진 소작인만도 못하다. 오늘날의 자본가는 봉건 영주보다도 더 악랄하다.

 

   
장미꽃을 들고 회장님 찬가를 부르는 여승무원들, 왕조 시대의 관기도 이런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민주당이 6.13 지방선거의 승리자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재벌이 최대 승리자이다. 그 어떤 세력도 새로운 사회 비전을 내놓지 못했다. 유일한 성과는 자유한국당의 완패뿐이다. 새로운 사회 비전이 등장하지 않으면 기득권 세력에게 제일 좋다. 하니 최대 승자는 재벌당이다. 민주당의 싹쓸이 승리가 아니다. 정의당이 약진했다고는 하나 수구와 민주의 팽팽한 접전이 사라져 열린 공간에서의 여유표이다 

최대 패자는 서민이다. 빚을 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최저임금 노동자,  창업 80%가 6개월 만에 망한다는 골목길 자영업자, 자포자기 하늘만 바라보는 소농, 여전히 3포(취직 포기, 혼인 포기, 출산 포기)인 청년들이 최대 패자이다.

90%의 패배 10%의 승리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60% 투표에 과반수 지지라면 유권자의 30%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투표권이 없는 아동, 청소년을 포함한다면 선거민주주의라는 것은 허구이다.

 

민주와 인권이란 그것을 누릴 힘이 있는 자에게만 미소를 짓는다. 회장님 찬가를 불러야 하는 비행기 승무원 노동자들에게 민주와 인권이 어디 있는가? 민주당의 승리는 비행기 승무원들의 민주 승리가 아니다. 호남이 민주 성지라 하지만 그 민주는 노동 현장의 민주와 인권이 아니다.

수구반동과 겨룰 때 호남은 민주성지라 할 수 있지만 수구반동이 사라졌을 때 호남의 민주는 보수민주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당의 민주는 정확히 말하면 자본민주이지 민중민주는 아니다. 영국 보수당보다도 훨씬 더 보수적이다. 그런 당이 진보 대접을 받은 것은 분단에 기생한 수구반동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를 보면서 집권당의 지속가능성에 의심을 품었다. 미래 비전을 주지 않는 집권당이란 백일홍이 아니라 바람 불면 훅 떨어지는 '벚꽃'이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인기에 의존했다는 것은 민주당의 취약성을 말할 뿐이다. 사회•문화•정치•경제구조의 그 어떤 개혁 전망도 나오지 않았다. 

수구 반동이 사멸해가는 시대에 새로운 비전 없는 민주당은 건전보수로 자리잡고 정의당, 민중당, 녹색당 등이 왼쪽에 자리잡는 정치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꾼다. 그리 된다면 민주당류는 낡은 세기의 마지막 인간이고 정의당류는 새 세기의 첫 인간이 된다. 

그렇지만 낡은 것은 죽지 않고 새것은 태어나지 않는 수상한 시대이다.  어느 세력도 논객도 지성도 명쾌한 시대정신을 내놓지 못하는 만인지쟁의 시대이다. 남북평화를 말하지만 노동평화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내 배 고프면 민족 따위를 생각하겠는가? 

 

   
천하무인! 천하에는 너와 나가 따로 없다. 천하에는 경계가 없다. 인위가 만든 경계는 질곡이다.

80년대에는 민주화가 있었다. 독재자의 구호였을망정 70년대는 '조국근대화'가 있었다. 2017 촛불은 마지막 민주대연합이었다. 촛불은 낡은 시대의 어두운 밤을 밝혔지만 새벽의 여명은 아니다. 

민주대연합은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확인되었다. 민주대연합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옮겨가지 않았다. 민주대연합은 이제 반독점공유생태로 옮겨가야 한다는 화두만을 던진다. 자본주의 사적소유와 사회주의 국유화에서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취한다. 공유이다.

민법에는 총유, 합유도 있다. 대한민국 정치인이 말하는 중도란 수구반동과 민주당 같은 건전 보수의 중도이다. 그들의 중도는 보수화일 뿐이다. 

사람들은 가슴이 설렌다고 한다. 남북평화가 새로운 구호도 아닌데 대한민국과 조선의 최고지도자가 격 없이 서로 만나니 남북평화가 다른 모든 것을 삼키는 불가사리가 되었다.  

부산이나 목포에서 열차를 타고 개성, 평양, 신의주, 단동, 장춘, 하얼삔, 이르츠크, 모스크바, 헬싱키, 파리, 마드리드까지 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환상적이다. 가문의 꿈보다는 혼자의 꿈을 꾸는 개인주의의 모습이다. 조선이 내가 모스크바 가는데 기찻길이나 빌려주어야 하는 형제는 아니다. 

 

조선은 자원부국이자 잘 교육된 인재가 많은 나라이다. 조선이 평화체제 속에서 기존의 사회 경제 개념으로는 무엇이라 정명할 수 없는 조선식 경제 개발을 한다면 한때의 중국처럼, 80년대의 대한민국처럼 10% 가까운 고도 성장을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 기간에 2~3% 성장을 할 것이다. 

조선의 성장은 인류에게 아직 실현되지 않은 다른 백년을 보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필자는 가슴이 설렌다. 그렇다면 회장님 찬가를 부르는 대한민국은 과연 다른 백년을 열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우리가 할 일이 아니던가?

혼용무도한 여제가 '통일은 대박이다.'이라고 했을 때 "(자본병합) 통일은 불행이다."라고 여겼다. 필자는 인종, 사회, 권력, 민족, 경제의 경계인 국경을 인정하지 않았다. 북방일가, 아시아일가, 지구일가라고 여겼다. 너와 나가 따로 없다는 천하무인을 받아들였다. 경계 - 빈부의 경계, 자본과 권력의 경계인 국경, 자본과 노동의 경계를 넘어야 한다고 여겼다. 경계가 있으니 난민이 있지 않던가? 

 

   
통일은 경계를 허무는 일이지 같아지는 게 아니다. 동질화가 아니라 이질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통일이란 경계를 허무는 일이지 같아지는 게 아니다. 나에게로 통일, 대한민국으로의 통일이 아니다. 조선으로의 통일도 아니다. 다른 백년으로의 통일이다. 연인이 사랑하면 한쪽으로의 구속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다.

사랑은 구속이 아니다. 통일은 동질화가 아니라 이질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동이상보(同異相輔)이다. 다름이 서로를 도와 새로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체제도 생각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통일은 하나의 국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유왕래면 충분하다. 다방면의 자유교류협력이면 된다.

연방제고 국가연합이고 통일체제를 논의할 필요도 없다. 경계를 허물면 될 뿐이다. 그러면 스스로 동이상보하는 통섭 작용이 일어난다. 통섭이 스스로 성장한다. '냅싸두면' 된다. 인위는 질곡을 만든다. 통일은 무위이다. 

통일부의 승인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인권과 자유가 있다는 나라에서 어찌 사전 승인 따위가 필요하단 말인가? 승인이란 여전히 조선을 적대국가로 본다는 것이지 않던가.

인권이란 체제 선택의 자유와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국경 따위로 그 자유를 막을 수 없다. 세계의 부는 나눠져야 하는 것이기에 부자 나라에 난민(?)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부자 나라가 싫어 몽골 초원에서 양과 더불어 살 수도 있다. 다 자기가 선택할 문제이다. 국민이 되라고 강요할 권리는 어떤 국가도 없다. 

 

당신이 통일을 원한다면 먼저 북한이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승인해야 한다. 헌법의 자유민주적 통일 따위는 시궁창에 버려야 한다. 조선식 사회주의 통일 따위도 버려야 한다. 경계를 없애야 한다.

이리 생각하면 만주의 임시정부와(신민부, 동북항일연군) 4만 무장독립군은 내팽개치고 장제스에게 용돈이나 얻어 쓰던 상해 임시정부를 유일 법통으로 하는 헌법 전문도 참으로 옹졸하다.

 

   
글쓴이 / 강주영 전북포스트 편집위원

프랑스 헌법이 프랑스 혁명을 명기하지는 않았다. 그냥 자유와 정의, 독립을 위해 싸운 조상의 얼을 계승하고 정도로 해야한다. 임시정부 법통론은 역사의 다양한 해석과 사실을 막아 버린다. 민주적 사고가 아니다.

내가 정통성을 만주에 두든 상해임시정부에 두든 내 양심의 자유이다. 국가가 어떤  하나를 강요할 권리가 없다. 그런 나라에서 진정한 통일이란 오지 않는다. 병합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낡은 세기의 마지막 인간인가? 새 세기의 첫 인간인가? 낡은 20세기일랑 봉쇄하고 새 백년을 열어가는 꿈을 꾼다. / 강주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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