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이면 결혼 25주년을 맞게 되는 우리 부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선 어느 작가에 의하면 어쩌다 같은 언어를 쓸 뿐이지 태어난 행성이 다른 서로 외계인인 남.여라는 가장 큰 차이를 차치하더라도 자라온 환경, 취미, 가치관 어느 것 하나 일치하는 게 없는, 우리는 평행선 부부다.

Jiworl Seok은 현재 미국 애틀랜타에 살고 있다. 전주 성심여고와 전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이름은 정지월.

첫 데이트 때 나의 첫 질문이 "책 많이 읽으세요?" 였고 거기에 대한 남편의 대답은 "교과서외엔 전혀 안 읽습니다." 였으니 시작부터 맞는 게 없었고, 이 첫 대화가 우리 부부를 제일 잘 설명해주는 상징적, 대표적 문장이 된다.

나는 "열 재주 가진 사람 밥 빌어먹는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돈으로 창출될 수 없는 지식만 가득한 인간이고, 남편은 경제가치가 없는 지식은 철저히 외면하며 외길 인생을 걸어온 유형이다.(실제로 가방끈은 더 짧은 내가 박사인 남편보다 퀴즈프로그램을 보면 문제를 더 잘 맞힌다. 영어로 하는데도...).

영화도 남편은 SF나 호러물, 전쟁영화만 본다. 오죽하면 그가 평생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가 Matrix(메트릭스) 와 Avatar(아바타)이겠는가! 우리 불문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취향이다.( 불문학을 전공한다는 것도 남편은 이해 못한다. 프랑스는 지는 해도 아닌 이미 진 해다. 남편에 의하면.. 쩝)

호기심 많고 다양함을 추구하는 나에 비해 남편은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인생의 목표다. 음식도 아는 음식, 여행도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보다 한군데서 푹 쉬는 스타일이다. 또 정신세계는 바쁘나 몸이 게으른 나와 정신세계는 빈약하나 몸이 부지런한 남편은, 또 인생을 달리는 속도가 다르다 보니 매사에 채근해 대서 힘에 부친다.

혼자 가면 될 텐데... 끊임없이 뒤돌아보며 "나는 지금 시속 60마일로 달리고 있는데 자긴 시속 몇 마일?" 하고 있는 꼴이다. 내가 "자긴 원래 포르쉐고 난 프라이드야! 성능이 달라, 태생적으로... 그러니 혼자 쌔~앵 달려!"하고 아무리 얘기해도 남편은 나를 사람 만들겠다고 포기를 안 한다. 그럼 지금 나는 사람 아니고 요괴인간?

이렇게 맞지 않는 우리가 어쩌다 결혼했을까? 무엇이 서로를 끌리게 했을까? 어쩌면 서로의 이런 다름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살다보니 나의 실속 없는 팔방미인성은 평가 절하되고,(신혼 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귀여워하고 신기해했다) 또 너무 현실적인 남편의 초지일관은 나를 질리게 한다.(연애시엔 그게 생활력으로 보였다)그래서 우리는 이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여지껏 찌그락짜그락, 때로는 치열하게 다퉈가며 살고 있다.

왜 부부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이 사람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그 고유한 매력을 쉽게 잊게 되는 건지... 그 장점들은 언제부턴가 기본 점수가 되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왜 단점들만이 망원경을 댄 듯 클로즈업 되는 건지...

도대체 어디까지가 행복한 중간지점 (happy medium)을 만나는 조율이고, 어디서부터가 포기인지...... 포기는 결혼의 순항을 위한 현명한 선택인지 사랑의 마침표인지.....또 잠자리에 예민한 사람이 방이 떠나가도록 코를 골아대거나 유난히도 뒤척이는 배우자 땜에 밤새도록 고문을 당해도 한방을 쓴다는 것만으로 정말 부부금슬이 좋아지는지...... 과연 부부는 어느 만큼 친밀해야 되고 어느 만큼의 자기공간이 필요한 건지..... 25년을 해왔는데도 결혼은 어렵다, 참 어렵다!

인생에 정답이 없을진대 결혼인들 정답이 있으랴? 사람이 모두 다르듯, 모든 결혼은 다를 것이다. 그리고 완벽한 결혼이란 없다. 완벽한 사람이 없는고로... 그래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결혼생활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아마도 창조, 창작의 영역인 듯싶다. 가장 이상적인 결혼이란 불완전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부족함은 메워주고 장점은 서로 흡수해 가며 더 나은 사람으로 자라나가는 결혼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물밑에서는 쉼 없는 발장구가 있듯이,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가정도 나름 헤게모니를 위한 암암리의 투쟁과 피지배계급의 반발과 저항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결혼은 전쟁이다.

부부사이도 이미 권력다툼인데 거기에 끊임없이 인생의 복병들이 튀어 나와 전시상황을 만들고 그것들에 대처해가며 한바탕 전투를 치르다 보면 달달했던 사랑은 어느덧 전우애로 변하고 만다. 그래서 <연인-전우-간병인>의 수순을 겪으며 그럭저럭 해로하게 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각자 꾸려가는 모습이 다를지라도, 오래 사는 부부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금세 자취도 없이 증발해 버릴 사랑에 목매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희미하나마 존경이 기초가 되는 관계이다. 살다보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믿음 말이다. 그러니 결혼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사랑했었느냐가 아니라 항상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꺼져가는 불씨를 끝까지 되살리려는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 수련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처럼 이혼율이 급증하는 세대에 살면서 과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본다. 이혼에 대한 세상의 인식 전환? 아무리 이혼이 흔해도 그 누구도 이혼하기 위해 결혼하지는 않는다. 모두 부푼 꿈을 안고 잘 살아 보겠다고 결혼하지만 그저 예전 세대에 비해 참을성이 조금 없고, 조금 더 이기적이며, 도덕 관념이 살짝 희미하고, 눈이 높고, 씀씀이가 더 헤플 뿐이다.

이 시점에서 돌발퀴즈!

과연 나는, 나의 배우자는 이 결혼에 최선을 다하고 있나? 나는 내 아이를 결혼이라는 마라톤을 완주할만한 건강한 인격체로 길러내고 있는가? 이젠 내 결혼뿐 아니라 자식들 결혼까지 걱정할 나이가 됐다! 에고 에고 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