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대형 유통업체 구조조정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문제로 납품업체에서 파견된 직원들을 줄이더니 최근에는 용역업체 직원감축으로 이어졌다.

대기업의 용역업체 직원감축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절감차원으로 풀이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전형적인 길들이기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덜지 못한다. 5-6년 주기로 되풀이 되는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박장우 전북포스트 주필

대기업의 용역업체 길들이기는 몇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업체평가이고 둘째는 일감조정이며 셋째는 도급구역 재편이다.

업체평가의 경우 매년 분기별로 실시되는 것이지만 좀 길게 보면 3-4년 단위로 종합평가해서 최하위 점수를 받은 업체를 탈락시키는 기본 자료가 된다. 용역업체들에게는 그야말로 목숨 줄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둘째 일감조정은 도급하는 일감을 줄였다 늘였다 하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도 5년 정도 주기로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용역업체 입장에서는 매출 자체에 큰 영향을 받는 일이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도급구역 재편은 전라도 지역 일을 하던 업체를 경상도 지역 용역업체로 바꾸고 경상도 지역 일을 하던 업체는 수도권으로, 그리고 수도권 지역 일을 하던 업체는 전라도 지역 용역업체로 변경하는 식이다. 관리하는 지역이 바뀌는 만큼 용역업체들은 새로운 장비 구입 등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대기업의 용역업체 길들이기는 근본적으로 도급가격을 최대한 낮추고 관리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려는 의도로 보인다. 쉽게 이야기해서 갑을 관계를 더욱 강화하려는 포석인 셈이다.

이러다보니 용역업체 직원들은 언제나 알바 개념을 벗어날 수가 없다. 호봉도 없다. 관리소장이나 주임 등과 같은 직책 수당이 좀 더 주어질 뿐 기본적인 보수는 항상 최저임금 수준이다.

하청업체도 사정은 비슷한 것 같다. 최근 전국적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 조선업종 근로자들의 경우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

조선업 하청업체 근로자들도 처음 입사한 사람이나 정년이 다된 사람이나 월급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고 한다. 숙련공이 대접받는 조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텔레비전에 출연한 어떤 하청업체 근로자는 “열심히 노력해서 1등 장인이 되면 괜찮아 지겠지 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직급 수당이 좀 더 주어질 뿐이다”고 하소연한다.

더욱 비참한 것은 구조조정 시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아무런 지원대책도 없다. 본사 정규직들에게는 희망퇴직으로 목돈이라도 주어지지만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도급계약이 해제되면 그것으로 일자리를 떠나야 한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은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일자리 찾기에 나섰다는데 설혹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해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알바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청년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소기업 취업자들에게는 대기업 종사자와의 임금차액을 보전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중소기업이 하청업체나 용역업체인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내부적인 모순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젊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싶지 않은 것이다.

원청업체나 하청업체, 그리고 도급과 수급업체 모두 사람이 가장 소중한 재산일 수밖에 없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개발되고 향상돼야 제품이나 서비스 품질도 나아질 수 있다.

그런데 대기업들의 상습적인 길들이기로 하청업체나 용역업체들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대기업 자체도 발전해나갈 수 없게 되고 말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조선업의 불황이 정말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는데 하청업체 근로자의 절규처럼 그들의 절망적인 현실, 아무리 노력해도 전혀 나아기지 않는 생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은 것이다.

대기업 하청업체나 용역업체들도 근로자들이 오래 종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숙련된 일꾼들이 대접받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대기업의 하청업체 또는 용역업체 길들이기가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 박장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