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은 하비 와인스틴이라는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의 성희롱 스캔들로 시끌벅적했다. 성희롱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 왔고, 한국도 요즘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하비 와인스틴이 워낙 거물이고, 피해자들이 안젤리나 졸리나 기네스 펠트로 같은 세계적인 톱스타까지 언급되다 보니, 그 후폭풍이 일파만파 커져 지금은 자신이 세운 회사 대표자리에서 물러나고, 아내도 떠났다.  

하비 자신은 반성하고 심리치료를 받을 거란다. 그리고 지금 하비 와인스틴 파동으로 비슷한 전력을 가진 다른 감독들의 행적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몇년 전엔 코미디계의 거장 빌 코스비가 같은 죄목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정지월(Jiworl Seok) 은 현재 미국 애틀랜타에 살고 있다. 전주 성심여고와 전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에 건너가 필라델피아 무어 예술 디자인 대학(Philadelphia Moore College of Art & Design)을 졸업했다.

이 남자들의 공통점은 연예계에서 막강 파워를 가진 '갑'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선택의 열쇠를 손안에 쥐고 있었다. 누군가를 고를 수 있는 힘, 판을 짤 수도 뒤엎을 수도 있는 힘. 그 무소불위의 힘 앞에서 피해자들은 수치스러웠지만 침묵했고, 어떤 이들은 합의해 왔다.

성폭력은 헤게모니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류 역사 이래 힘있는 자들은 약자를 끊임없이 갈취해 왔고, 성 착취도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중세의 유럽에서는 영주가 초야권이라는 것을 발제해서 자기 영내 신혼부부의 첫날밤을 합법적으로 망칠 권한이 있었으며, 전세계의 셀 수도 없이 많은 피지배계급의 여인들은 지배계급 남자들의 성노리개가 되어야 했으며, 그들의 힘없는 남편들은 알면서도 아내의 등을 떠밀기도 했고, 자기 자식이 아닐 수도 있는 아이들을 키우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 신분사회가 없어지고 만인이 평등한 사회가 된 듯하나 생존이라는 절체절명의 명제 앞에서, 또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부조리와 착취 속에서 성피해는 주로 여성의 몫이었다. 

약육강식이 진리가 되고 용납이 되는 사회는 미개하고 부조리한 사회이며, 그 민낯의 욕망을 드러내고 사는 사람을 우리는 파렴치한이라 부른다.

데이비드 에쉬호프가 쓴 '열아홉번째 아내'라는 소설은 일부다처제의 모르몬교 안에서 순수했던 한 남자의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일부다처가 허용되는 그 사회에서 모든 여성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적 대상이고, 모든 남자는 연적일 뿐이다. 탐욕이 허용되는 순간 모든 인간은 자신 속의 동물성을 들킬 위험이 있다. 

언젠가 어떤 재벌2세의 인터뷰 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에게 기자가 물었다. "태어나실 때부터 모든 것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래도 힘든 게 있으십니까?" 그가 대답했다.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게 힘들지요."

어줍잖은 노블리스 오블리쥐(Noblesse Oblige)를 입에 올리는 전혀 노블하지 않은 자들이여, 진정한 가진 자의 특권이란 바로 그런거다! 

'할 수 있지만 안하는 것, 가질 수 있지만 안갖는 것'

우린 가진 자들이 약자를 위해 무얼 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더이상 누르지만, 끌어내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 같잖은 힘을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섣부르고 자잘한 '잽'을 날리는데 사용하기 보다는, 너절하고 구질구질한 세상을 향해 결정적 '어퍼컷'을 한 방 먹이는데 쓰란 말이다. 

우리는 더이상 그 추악한 욕심을 대면하고 싶지 않고, 낮은 곳에서나마 나름 노블하게 살고 싶으니 말이다. / 정지월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