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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로 회자되는 80년 광주와 김훈 - 강찬구
강찬구 기자  |  phil6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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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0  17: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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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이 먹을 갈았다. 남포석 벼루는 매끄러웠다. 최명길의 시선이 벼루와 먹 사이에서 갈렸다. 새카만 묵즙이 눈에서 나오는가 싶었다. 묵즙이 흘러서 연지에 고였다. 최명길이 붓을 들었다. 최명길이 붓을 적셨다. 최명길이 젖은 붓을 종이 위에 가져갔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한 대목이다. 왕이 내몰려 피신한 남한산성 아래 진을 치고 위협하는 청나라의 칸을 대신한 용골대에게 전해 줄 항복문서를 최명길이 작성하는 장면이다. ‘슬로우 모션’으로 그려지는 문장에서 비장함과 진중함과 고뇌가 흐른다.

 

   
강찬구 전북포스트 발행인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80년대 신군부독재 시대를 떠올렸다. 요즘 화제가 되는 영화 ‘택시운전사’ 때문일 것이다. ‘남한산성’에서 청나라 군대 앞에 몰린 이 나라는 총으로 무장한 군부 앞의 언론사로 대치된다. 붓과 펜을 총과 칼로 유린하던 그 시절. 그들은 총칼을 앞세워 국민을 해치고, 그 피묻은 칼을 내보이며 펜을 위협했다.

당시 신군부는 언론사에 자신들을 미화하도록 강요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무조건 잡아다 패고, 밥줄을 자르고... 그래서 언론사마다 ‘울며겨자먹기’로 ‘전두환 용비어천가’를 쓰게 했고, 당시 한국일보의 7년차 기자로서, 글발 좋기로 소문난 김훈에게 이 역사적 '사명'이 주어진 것이다.

 

이 젊은 기자가 ‘용비어천가’를 쓰게 된 정황은 ‘남한산성’을 통해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눈앞에서 보는 듯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 부분을 올린다. 맨 위의 문장의 바로 앞 대목이다.

“밤중에 임금이 최명길을 침소로 불러들였다. 늙은 당하관 세 명이 내행전 마루에 먼저 와 있었다. 정오품 교리, 정오품 정랑, 정육품 수찬 들이었다. 나이 들어서 급제한 뒤 유배와 좌천과 파직을 거듭해 온 노신들이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품계는 당하에 머물렀으나 벼슬길이 험난할수록 그들의 문장은 말을 다져서 단아하고 명료했다.

...

임금은 사흘 안으로 칸에게 올릴 국서를 지어서 올리라고 명했다. 당하관 세 명이 각각 글을 짓고, 최명길이 당하관들의 일을 독찰해서 마무리 짓고, 최명길 자신도 답서를 지어 올리라고 했다.

...

정육품 수찬이 말했다.

-신들은 늙고 병들어 사리에 어두우니 막중한 국사를 면하여 주소서.

-아니다. 경들은 이미 늙고 병들어 살날이 많지 않으니 스스로 욕됨을 감당하라.

정오품 교리가 말했다.

-문장은 여러 사람의 것을 뒤섞을 수 없는 것이옵니다. 당상들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 분부하옵소서. 소신들은 당하로서 경륜이 천하고 글이 각져서 감당할 수 없나이다.

-아니다. 여럿이 해야 할 일이다. 내가 여럿의 글을 보고 하나를 취하려 한다. 재론하지 않겠다. 이판이 두루 챙겨서 시행하라.“

정육품 수찬은 거부하는 내용의 차자를 올렸다가 곤장을 맞고 일을 면제받는다. 왕이 항복하고 서울로 돌아가던 날 그는 자진했다. 정오품 교리는 수찬이 곤장을 맞던 그날 심장이 터져 죽었다. 정오품 정랑은 간택되지 않을 글을 지어서 바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살 길이었고, 달리 길은 없었다. 결국 최명길이 글을 쓰게 된다.

 

김훈은 이 사건에 대해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그의 심저에는 이 일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한겨레신문 권태호 기자는 ‘김훈이 한겨레를 떠난 이유’라는 글에서 “누군가는 써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쓰고 말겠다.”라고 김훈이 말했노라고 밝혔다.

김훈에게도 그 일은 평생 깊은 상처로 남았고, 그의 글들이 가슴 저미게 아픈 것은 그 상처 때문일 것이다. 이는 그에게 평생 ‘트라우마’가 됐고, 그의 작품 전반에는 방관자적 태도가 깔려 있다. 능동적인 방관. 애써 회피하고 외면하는 억지. 방관자적 태도가 강할수록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강렬한 이중적 모습을 읽게 한다.

80년 당시 광주는 광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전반에 돌이킬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택시운전사’의 배경인 80년 광주가 다시 회자되면서 기자 선배인 김훈의 고뇌와 평생 감당할 멍에, 그리고 그 처절한 '남한산성'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 강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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