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기간에 영화를 봤다. 평균 평점 9.45의 높은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택시운전사’다. 거대자본이 돈을 무기로 언론 광고기사를 싹쓸이하고 스크린을 독점하여 억지흥행을 몰아가는 영화는 공짜로 보여준다 해도 안보지만, 사람 대 사람의 입으로 호평이 전달되어 자연스레 작품성을 인정받는 영화는 어떻게든 보게 된다. ‘택시운전사’는 후자여서 보게 되었는데 역시 여운이 깊게 남는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은 독일 ADR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서울 택시기사 김사복이다. 위르겐 힌츠펜터는 일본 체류 중, 광주에서 시민과 계엄군이 충돌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평범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한국으로 오게 된다. 김사복은 당장의 밀린 월세를 마련하고자 왕복 택시비 10만원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당일치기 광주행을 나서게 된다. 물론, 그 둘은 광주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지 못한다.

안상현 자유기고가

재치와 기지로 어렵게 광주에 들어오지만 실상은 생명을 빼앗길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현장. 안전을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기자와 택시기사는 특별한 직업의식을 발휘하여 광주의 진실을 담는데 성공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류애로 광주의 참상을 알려야 하고 정의는 진실을 밝혀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자정신’과 ‘택시비를 받았으면 약속을 어기지 않고 어떻게든 손님을 목적지까지 무사히 모셔드려야 한다는 운전사로서의 투철한 사명감’.

만약, 한 사람이라도 직업의식이 없었더라면 당시 광주의 참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을 것이고, 그 결과 더 많은 희생과 고통이 이어졌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5월 22일 독일 공영방송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첫 보도하였고 이후 수많은 외국 언론사가 광주 민주화운동을 취재·보도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외신 보도들은 군인들의 광주철수를 앞당기는 촉매제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아! 정말 어떻게 그 두 분에게 우리는 감사를 표해야 할까? 양심과 용기와 사명감과 직업정신을 다 함께 지켜내기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죽을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고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을 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거룩한 사명감과 직업정신’은 돈과 권력을 동원해서도 못해내는 실로 위대한 일을 해내게 된다. 그리고 그 위대한 인물의 위대한 일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게 된다.

훗날 인터뷰에서 위르겐 힌츠페터는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 전쟁도 종군기자로 다녀왔지만 본인에게는 광주의 참상이 더 슬펐으며 진실을 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 수 있었다.” 영화에서 당시 광주의 참상을 잘 그려냈지만 실제 80년 5월의 광주는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언제 시간 내서 광주 5.18 묘역에 있는 위르겐 힌츠페터 추모비에 헌화해야겠다. 당시 군부정권의 보복을 피하고자 부득이하게 기자에게 가명과 가짜 전화번호를 남길 수밖에 없었던 김사복 님은 살아 계시다면 꼭 당신의 존재를 밝히셨으면 좋겠고, 돌아가셨다면 명복을 빌고 다시금 후대인으로서 깊이 존경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몇몇 이들이 수년간 국가권력을 사유화하여 온갖 국정농단을 자행할 때 대한민국에 제2, 제3의 위르겐 힌츠페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가져본다.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제대로 알리는 기자정신이 발휘된다면 그 어떤 국정농단도 시도하지 못하리라.

문득 나의 직업정신을 돌아보게 된다. 범죄예방과 청소년 선도 봉사활동을 하는 이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쓰는 작가로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직업적 사명감을 잘 지켜내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많이 부족하다. 많이 부끄럽다.

40년을 살았으니 반평생을 산 셈이다. 인생 후반은 언제 돌아봐도 부끄러움이 느껴지지 않게 나만의 양심과 용기를 잘 지켜내고 사명감과 직업정신을 잘 발휘해야겠다. 김사복 님이나 위르겐 힌츠페터 님처럼 역사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밝은 빛을 뿌리고 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 안상현 전주시 법사랑(구 범죄예방) 위원, 자유기고가